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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데드 Jul 08. 2024

自利利他 자리이타(1)

자신이 먼저 이로운 후에 남에게도 베푼다

저는 바닥 곳곳에 신문이 즐비한 거리를 걸었어요. 모양이 제각각인 둥그스름한 진회색 타일 사이로 물이 고여있었죠.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우연히 위를 올려다봤어요. 빨래를 걷는 아낙네들이 듣기 거북한 소리를 뱉는 게 기분 나빴어요. 왠지 제 때 일기예보를 안 챙겨보는 저 같아 고개가 저어졌죠.

거긴 내내 비가 내리는 도시였어요. 굉장히 습하고 꿉꿉해서 숨을 제대로 쉬기조차 힘들었어요. 마치 곰팡이가 집 구석지에서 틀어박히는 것도 모자라 거리로 뛰쳐나온 것 같았어요.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숨 못 쉬는 건 물론이고, 호흡기관이 연결된 신체부위를 가려야 이상한 현실을 마주하는 게 마땅했으니까요. 그들이 인간을 흉내 내면서 거리를 활보하는 건가 싶었죠.

거 봐요. 아무리 옷을 빨아도 곰팡이가 계속해서 피어난다니까요? 아으! 가렵단말예요. 긁는 게 지긋지긋하다 못해 괴로워요. 뒷목도, 등도, 다리와 발바닥도 미친 듯이 따끔거려서 이젠 잠도 제대로 못 자겠어요. 완전히 젖은 신문에 발이라도 달린 걸까요? 축축한 것들이 온몸을 덮으려 하고 있어요. 게다가 제 입 밖으로 어둡고 침침한 곰팡이가 새어 나가는 것 같아요! 멈출 수 없어! 맙소사, 마치 그림자가 자기 두 팔을 광대뼈를 짚고 제 몸에서 빠져나오려나 봐요. 또 긁어야겠어요. 아주 피칠갑이 되도록요. 이해해 주실 거죠?


제가 곰팡이인 걸까요?

곰팡이가 저인 걸까요?



'또 또 그런다. 그런 생각은 일말이래도 하지 말랬어.'


어쩌다 보니 거리에서 산이 있는 방향을 보았을 때, 짙은 안개 너머로 지붕이 뾰족한 성이 보였어요. 아마 보랏빛 안개로 가려졌던 그 성이 맞았을 거예요. 어... 그냥 침대에서 눈을 뜨게 되었어요. 제가 원했던 바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엔틱 한 서랍에 엔틱 한 침대, 하얀 레이스가 달린 보가 덮인 엔틱 한 테이블과 엔틱 한 디자인의 의자가 보였어요. 모두 붉고 검은 디자인이었고요. 포도주를 들이부은 빛 같아서 아름다웠지만 왠지 무서웠죠. 바닥은 흰색의 깔끔한 타일로 열 종대가 틀어짐 없이 정확히 맞춰져 있었고요. 어디엔가 사람이 흥얼거리는 소리가 났어요. 도통 누군지 모르겠거든요! 워. 무섭네요.

전 분명히 비를 맞으면서 거리를 걷고 있었죠. 별 것도 아닌 사소한 일에 굉장한 의미부여를 해 그것을 나쁘게 보는 습관이 있었다고요. 그런데 여길 오고 나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거예요! 뒤통수를 갈기고 수면약을 투여했을까요? 누가 절 여기에 데려다 놨죠? 대체 흥얼거리는 저 아줌마 누구냐고요. 일단 잠자는 척이라도 해야겠어요. 쉿, 들어온다.


벌컥


콧노래의 주인공이 이 방으로 들어왔어요. 남자는 아니고 여자예요. 발을 질질 끄는 습관 없이 탁탁거리는 소리가 났어요. 둔탁한 사운드와 함께요. 전 그 사람이 이 방으로 들어오기 전에 창 쪽으로 몸을 돌렸어요. 두툼한 솜이불을 어깨까지 둘러서 최대한 몸을 가렸지만, 왠지 그녀가 눈앞에 서 있다는 느낌에 발가벗은 것 같았어요.

근데 대체 누가 절 데려온 걸까요? 어이없고 무서워서 참. 아무 말도 나오네요. 아차, 작게 속삭이거나 쓸데없이 말했다간 홧김에 저이가  당장에  죽여버릴지도 몰라요. 아님, 누군가에게 알린다거나. 등이 서늘한 게 정말 싸한데요.  사람이 거의 왔나 봐요. 문을 열자마자 콧노래는 이미 멈췄고요. 타일에 구두소리가 부딪힐 때마다 심장이 죄여와요. 숨쉬기도 어렵고. 이번에야 말로 숨이 끊어질 것 같아요. 식은땀이 콧잔등에 맺혀 왼쪽 볼을 모두 적셨어요. 베개에 짠 눈물이 스며드네요. 제길, 어떻게 해야 한담! 당장에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러나 아무것도 수 없어요. 무언갈 해야만 해요. 떨려서 뭔가 시도할 힘조차 나지 않아요. 굶은 되었나 봐요. 그래도 뭔갈 해야겠죠? 그럴 수조차 으면... 그냥 여기서 붙잡힐까 봐요.

손이 등에 닿을 때쯤 뒤를 홱 돌아봤어요. 그 사람은 생각보다 무난했어요. 무슨 말이냐면, 안면이 완전히 함몰돼 있다거나, 눈이 없다거나, 혀가 길다거나, 피부가 썩어 문드러져서 벌레로 곪았다거나 하는 특이점이 없었죠. 청결했습니다. 하얀 이마와 가지런히 정리된 눈썹, 뭉툭한 광대, 적당히 트인 입술. 약간 꺼림칙한 기분은 들었지만 그도 저만큼 특이한 사람이란 건 알았죠.

전 말이에요.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을 보는 게 너무 익숙해요. 적어도 멀쩡한 일을 하고 다니는 현실세계가 아니라면 말이죠. 지겹지 않나요? 평범하고 익숙한... 똑같은 반복적인 일에 종속되어 기계 태엽처럼 따박따박 사는 거. 뮤비 스타도 아니고 왜 그렇게 욕먹을 만한 헛짓거릴 벌이냐고 묻는다면요. 전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요.

 

'서걱'


이런, 사람을 죽였네요.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아메바가 정신을 갉아먹도록 유지했어야 하는 건데. 흠... 그게 잘 안 됐나 봐요. 베개 밑에 식칼을 숨겨두길 잘했어요. 정당방위가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선승 필승 아닌가요? 여하튼 이 좁아터진 곳에 오래 못 있겠으니 어서 이 방을 나가야겠어요.

복도에 누가 있나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없었어요. 조금 걸어 나와서 옻나무로 된 난관을 짚고 아래층을 내려다봤어요. 아찔. 아하하. 팔 튀어나온 핏줄을 보아하니 아이의 몸에서 청년으로 자란 것 같아요. 이 저택으로 오다가 몸이 성장했다거나, 절 납치한 누군가가 약을 주입했을 텐데. 글쎄 그걸 알 길이 없네요. 물어볼 만한 사람은 저렇게 널브러져 있고. 뭐, 누군가 오겠죠.


그렇게 10분가량을 기다렸어요. 두 명의 메이드복 여성이 위층으로 올라오는 게 보였어요. 저는 뒤를 돌아 방문을 닫고 화장실로 향했죠. 화장실은 남과 여 구분이 없었어요. 변기는 멀쩡했지만 바닥의 배수구가 막혀 있어서 물이 넘쳤죠. 종아리까지 걷어올린 바지를 조금씩 젖혀 가며 쓰게 되었는데 때마침 아까 보았던 메이드 복장의 두 여성이 들어왔습니다. 메이드 복장은 청소 복장으로 단숨에 바뀌었습니다. 놀란 기색 하나 없이 그녀들이 다가왔어요. 표정이 없더군요. 느슨하게 늘어진 하얀 셔츠에 왜 피가 튀었는지도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일 보는데 집중해야 해서 다시 앞을 돌아봤습니다. 안 본 척 어깨너머로 흘깃 훔쳐보았죠. 가슴팍에 달린 바랜 금색 명함은 태국어로 쓰여 있었습니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태국 사람인 것 같았어요.

둘의 특징은 뚜렷했습니다. 한 여성은 키가 작았고 다른 한 여성은 평균적인 신장에 호탕한 여자였어요. 무어라 서로에게 말했지만 제겐 닿지 않았습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마무리를 지으며 화장실을 나서려는 그때였어요. 작은 여성이 저를 불러 세웠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이에요. 할 게 뭐가 더 있을까요?

발목이 축축했습니다. 화장실 바닥은 문턱 높이까지 푸른색의 락스로 가득 메워져 있었습니다. 두 여성은 집을 관리하는 직원인데 이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더군요. 우선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낮은 자세로 배수구 카바를 열고 내부까지 아주 불이 날 때까지 솔을 비볐어요. 머리카락이 너무 엉켜서 락스물이 안 빠졌던 거였죠. 조금 기다렸습니다. 락스는 소용돌이를 그리면서 금세 빠졌습니다. 두 여성이 속이 뻥 뚫린 듯이 경박하게 웃더군요. 어떤 이끌림이 원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래층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저택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 같네요.


두 여자는 저를 아래층으로 안내했습니다. 드디어 나가나 싶었죠. 하지만 기쁜 마음도 잠시였습니다. 이번엔 방 청소를 하라고 친절하게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갖다 주었습니다. 제가 왜 여기서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역시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택에서 청소는 제게 주어진 일이었고,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보수는 일절 받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얘기가 나오거든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도구가 손에 들렸으니 일단 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때 문득. 고등학생 시절에 엄마 수녀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얘가 노예근성이 있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별 일 없이 끝나는 아무렇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사건은 그날에 터졌습니다. 보육시설의 원생들은 저녁 기도를 마치고 침실로 가 잠을 잘 준비를 했고, 저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과자부스러기가 보기 싫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꺼내 들어 청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래 청소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만 (식후 30분) 더러움을 참을 수 없어 대뜸 청소를 했단 이유로 좋지 못한 말을 들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 친구는 침대 위에서 비아냥대며 시비를 걸었습니다. 네가 뭔데 청소를 하냐 마냐는 식의 어투였죠.

위하는 척도 그만, 칭찬도 필요 없었습니다. 단 5분만 더러운 곳을 치운 게 그날의 화근이었습니다. 수녀님의 말뜻을 어리숙하게 해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사는 흑인인지라 그 말이 괜히 기분이 나빴을지도요.


대화동에 어느 성당에서 한 신부님께서 소개하신 <빗자루 수사님>의 마르티노 성인이 좋습니다. 그런 진정성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려 하고, 당장의 불편함과 더러운 마음을 정화하려는 마음이 큰 인상으로 남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저택에 오기 전의 거리를 보세요. 눈물인지 모를 비가 멈추지 않고, 글이 빼곡히 적힌 신문이 모두 젖어 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답니다. 자발적으로 사랑합시다. 더러운 마음을 청결히 유지하는 대수롭지 않은 작은 열성에 심혈을 가해보자는 겁니다. 보수를 대가로 '착한 일'이라 치부되는 일에 수동적으로 움직여진다면, 그 일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돈은 욕심을 폭파시키는 욕망의 유일한 경로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돈에 종속된 동물 따위가 된다면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질 것입니다. 돈 때문에 옳은 일을 못하다니요? 옳은 일은 선택하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베풀 줄 알아야 나눔의 값어치는 어떤 가치로도 매길 수 없어지는 신성한 영역의 것입니다. 참으로 비통한 일이지요.

말을 예쁘게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향이 나는 말을 그만두면 더 이상 새로운 아름다움은 발현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아름답게 변형시키는 것을 좋아한다면 후천의 고집으로 그 일을 직접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은 변해가는 겁니다. 친절함을 배우는 건 모두 할 수 있습니다. 학업을 성취하는 데 난을 겪고 있다면 뼈를 깎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할 테지요. 인생은 등가교환의 법칙입니다. 뭐든지 잘 나야 돼 고, 하는 일을 특출 나게 잘할 필요 없습니다. 다만 최소한의 인성을 거스르는 바보 같은 말은 누적이 되어 인생 전체를 썩게 만듭니다. 조금은 이해가 되셨는지요?


나이가 먹도록 하수구에 푹 담겼다가 나온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길 주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남들 보기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아름다움을 갖췄다해서 그것이 영원히 아름다워지는 건 아닙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지나온 감정들은 성숙해진 스스로가 다듬을 수 있습니다. 성숙함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적된 미숙함'이 쌓인 자신만의 신문을 펼쳐 들어 일을 하지 않은 때 새로 편집을 한 빈도가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을 케어할만한 능력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습관을 변형시키고자 하는 자세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노예근성이 있습니다. 지겹도록 일만 하다 죽고 싶을 정도입니다. 굳이 짚자면 집에 눌러앉아 글을 쓰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솔직하면 타인에게 피해가 간다고요? 나이를 꽤 먹도록 자신이 불편하다고 드는 감정을 어떻게 하면 더 유순한 상태로 받아들일까에 대한 연구는 해 보셨나요? 내 감정은 남이 챙겨주지 않습니다. 당신의 불안함은 제게 더 이상 닿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더 멀리 저만의 세상으로 빠져들 것입니다. 주호 씨, 주호친구, 주호, 주호야, 주호형. 야! 야, 야... 어이....!


친절과 호의를 바라고 화장실 배수구를 뚫은 건 아닌데, 어째선지 대저택 주인은 식탁에 앉아 저를 환대했습니다. 이 사람이 절 납치했을까란 생각은 전혀요. 들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모님 역시 저택의 주인이신 대부님의 사이드에 앉아계셨고, 그들의 어리고 성숙한 많은 자녀들 역시 다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침 식사는 통밀빵과 계란 프라이, 그리고 버터로 구운 딸기 잼 토스트였습니다.

눈물이 났을까요. 그들은 정말 올바르고 깔끔했기 때문입니다. 단 번에 알 수 있습니다. 대화를 하지 않아도 사소한 행동에서 묻어나는 저 교양, 그리고 자태.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것 중에 '맞는 것'보다 '옳은 것'이 먼저 아닐까요? 저는 고집불통인 데다 제 자신조차 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망나니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옳은 일을 해야 할 때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가는 충동 풍선이기도 하죠. 마치 제 욕망이 한 장면에 들어가 멋들어진 청사진으로 제작된듯한 이 아름다운 가족을 보세요. 대신 있는 그대로 보셔야 합니다.

피 묻은 옷을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겠습니다. 다른 옷으로 바꿔주세요, 아가씨들.

아, 마침 저기 빈자리가 있군요.  


덜컥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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