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스며드는 가을의 온도
계절이 변하는 길목에 서 있습니다.
매번 오는 계절인데, 이상하게도 매번 느낌이 다릅니다.
공기의 결, 빛의 방향, 바람의 냄새가 미묘하게 달라져서
“아, 이번 가을은 이런 얼굴이구나” 싶습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계절의 변화를 온전히 인식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전에는 그저 달력의 숫자로 계절을 구분했거든요.
단풍은 생각보다 늦게 들었습니다.
10월이면 붉게 물드는 줄 알았는데,
거의 11월이 다 되어야,
정확히는 5일, 7일쯤 지나야
비로소 가을이 제 색을 보여주더군요.
그걸 알고 나니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지나쳐버린
수많은 풍경들이 생각났습니다.
그 시간들이 아까워서,
조금은 씁쓸했습니다.
요즘은 가능한 한
이 변화들을 눈에 담아두려 합니다.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빛날 수 있도록요.
비록 제 몸은 늘 약국 안에 머물러 있지만,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햇살과
살짝 흔들리는 은행잎을 바라보며
저만의 속도로 가을을 느끼고 있습니다.
가을이란,
세상이 잠시 느려지는 시간 같아요.
그 속도에 맞춰
저도 잠시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