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7 2020년 4월 7일
#허리병이찾아왔다
미국 여행 갔을 때에서도 갑자기 허리가 아파 한참을 고생했다. 아이와 레고랜드를 다녀와 밤늦게까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레고를 만들었다. 다음날 일어나니 허리에 문제가 생겼다. 얼마 전 그때와 같은 위치에 통증이 시작되었다. 코로나19로 집콕하다 보니 바닥에 앉아 아이와 그리고 만들고 놀고, 집을 수시로 치우고, 주방에 오래 서서 음식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자전거와 킥보드를 차 트렁크에 실었다 꺼냈다를 무한 반복 중이다. 그러면서 산책도 해야 하고.
며칠 가진통처럼 왔다가 사라지더니 진진통이 시작되었다. 평일엔 아이를 데리고 갈 수가 없어 토요일 신랑 찬스를 이용해 한의원을 찾아갔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인근 루프탑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화장품 샵에서 핸드크림과 클렌징 티슈도 골랐다. 침을 맞고 나니 허리가 부드러워졌다. 허리 치료보다 잠깐의 자유... 나는 이걸 원한 거 같았다.
#코로나피로도
나 역시 오랜 집콕 생활에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친구들에게 호소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4월 20일 온라인 개학이 결정 났음에도 엄마들은 한숨을 쉬고 있다. 나름 첫 초등학교 입학식도 패스한 개학인데 담임 선생님 얼굴과 친구들 이름은 알고서 시작하는 초등학교 생활일까... 원격수업 대신 하루 3시간씩 EBS를 보는 온라인 개학으로 진행하겠다는 뉴스에도 짜증이 올라왔다. TV 편성표로 대체된 학교 시간표가 과연 아이에게, 엄마에게 도움이 될까? 이런 짜증들이 자꾸 아이에게 간다. 같이 노는 아이의 친구에게도 평소와 다르게 크게 주의를 준다. 나 왜 이럴까.
나에게도 산후우울증이 왔었다. 생각해보니 아이와 단 둘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신생아 때 이후 오랜만이다. 아이폰 사진에는 그때의 행복했던 모습들만 남아 있지만 일기장엔 우울하고, 두렵고, 짜증스러운 단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모성애는 선천적이 아니라 후천적인 것임을 깨달으며 아기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잘 못 먹고 온 몸이 아팠지만 그것보다 주변에 육아 친구나 친정 엄마가 없어 독박 육아하던 시절이 자꾸 오버랩된다. 신랑이 있는 토요일에 짬을 내어 병원도 다녀오고 볼일도 보고 그렇지 않으면 아이와 나 둘만의 고요하고 외롭던 시간들이었다. 어렵게 찾아간 정신과 전문의는 흔한 산후우울증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수면제 몇 알을 처방해줬다. 잠을 푹 자면 나아질 거라며.
나는 밤새 자주 깨서 보채는 아기가 걱정되어 수면제 한 알을 먹기도 무서웠다. 그래서 사람이 있는 문센을 찾았고, 그러던 중 우연찮게 재취업의 문이 열렸다. 멀리 계신 친정 엄마에게 돌 된 아기를 봐달라고 울며 부탁하곤 회사로 뛰쳐나갔다. 아침마다 우는 아기 때문에 맘이 아팠지만 어쩌면 워킹맘을 선택한 건 업무 스트레스보다 산후우울증이 크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오비이락? #퇴사하니코로나19
지난여름부터 육아휴직 중이었다. 미국 한달살기도 다녀오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시간 동안 요가도 하고, 책도 읽고, 브런치에 글도 쓰고, 워드프레스로 나만의 블로그도 개설했다. 한 직장을 10년 넘게 다녔으니 독소가 쌓이고 쌓여 너덜너덜해진 나의 몸과 마음을 디톡스 하는 기간이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서 적응이 되면 4월쯤 새로운 일도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2020년 2월 20일, 숫자 0과 2만이 모인 원더 키디스러운 날 나는 아침 일찍 세무서에 가서 개인사업자 등록을 했다. 나의 퇴사 선물로.
코로나19가 심각해지는 동안 퇴사 관련 프로세스가 진행되었고 나는 사직서를 결재 올렸다. 3월 마지막 날 퇴직금이 입금되었고 하필 그날 오후 신랑은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통보받았다. 개학 또한 연기되자 온갖 감정들이 다시 혼란스럽게 뒤엉키기 시작했다. 휴직이 아닌 퇴사가 주는 상실감, 더 이상 급여가 없는 내 통장이 주는 허망함, 장기간의 온라인 수업에 답 없는 짜증감... 갱년기에도 이런 기분일까?
신랑에게 권고사직 대신 급여 감봉을 다시 얘기해보라고 하고, 나는 국민연금을 유예하겠다고 전화했다. 그리고 지인이 보내준 구직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했다. 백만 년 만에 써야 하는 이력서, 유연근무로 일할 수 있는 회사 서치...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동제한명령 (by친정)
나의 본적은 경북 영해이고, 태어나서 초중고 학창 시절을 보낸 곳은 부산이다. 지금 아버지는 영해 고택과 부산 집을 오가고 계시고 어머니는 부산에 계속 계신다. 즉 내가 갈 수 있는 친정은 두 곳인 셈. 이 두 집을 여행자처럼 다닐 수 있다는 건 나의 복이다. 하지만 이동제한명령이 떨어졌다. 주체는 부모님.
대구에 이어 부산 확진자가 급증하자 부산에 오지 말라 하셨다. 부산이 잠잠해지고 대구 경북도 안정권에 들어섰는데도 고택에도 오지 말라 신다. 집에, 산에, 바다에... 바람 쐬면 좋을 거 같은데 말이다. 어차피 입학도 늦춰지고 개학도 ebs이니 이 참에 고택에 오는 봄도 느끼고 싶은데.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갈 곳이 없다는 것도 우울감을 증폭시키는 원인이다. 호텔 패키지 가격이 턱없이 내려가고 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에 호캉스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인스타그램 피드에는 숲 속이나 시골의 자발적 고립 숙소를 보여준다. 그래서 템플스테이를 검색했다. ‘아이를 시댁에라도 맡기고 혼자 갈까, 아니면 데리고 같이 다녀올까.’ 실내 프로그램은 없이 걷기 명상 프로그램을 한단다. 티브이도 인터넷도 없는 숲 속 집에서 둘이 이너 피스를 찾을 수 있을까?
#EBS입학때문이다
나는 왜 우울할까? 이 글을 처음 쓸 때만해도 개나리입학 보다 벚꽃입학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처럼 4월에 벚꽃이 흩날리는 길을 걸어 학교를 가는 걸 꿈꿔봤다.
지금 베란다와 방 창문 너머로 만개한 하얀 벚꽃들. 이 집에 십년 가까이 살면서 숨겨진 벚꽃 산책로가 이리도 많은지 알지 못했다. 이 벚꽃이 떨어지는 걸 보며 내 아이가 벚꽃입학생이 되지 못한 게 화가 난다.
그 화가 결국 우울의 원인인거 같다. 참나 EBS 입학이라니... 지금이야 보든 말든 상관 안하는데 앞으론 TV를 보는 아이의 수업태도를 질책해야 한다. 똑바로! 집중해! 이런 말들로.
얼마전 생일이었던 한 엄마는 코로나 때문에 친구를 만날 수 없어 저녁에 각자 맥주와 안주 준비한 뒤 영상 통화하며 술을 마셨단다. 영통 안에서라도 오랜만에 수다를 나눌 수 있었다니 나도 해보고 싶다. 우울한 학부모 친구들아, 랜선개학 후에 모여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