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란 무엇인가
‘집’ 하면 떠오르는 건 내가 살아온 그 어느 아파트가 아닌 친할아버지의 오래된 주택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누나들에 비해 너무 공부를 안 해 걱정이던 할아버지가 "서울대에 가면 그쪽으로 집을 지어 이사하겠다"라고 한 말이 현실이 되어 지어진 40살짜리 집. 그 아들의 큰 딸로 태어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매주 그 집에 가서 6명의 사촌들과 부대끼며 자랐다.
우리는 집 안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마당에서 물놀이를 하며 함께 자라났다. 거실에 모여 다 같이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끄던 기억, 2층에 올라가 먼지 쌓인 물건을 꺼내며 놀던 기억, 지하 석실에서 놀다가 사촌동생 하나가 넘어져 이마가 깨진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무렵 여러 가지 이유로 그곳에 매주 모이는 것을 그만두었지만 여전히 명절이나 가족 행사가 있을 때면 할아버지 댁에 모였고 내 딸이자 할아버지의 증손녀까지 그 집을 사랑하게 되었다.
9년 전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신 후에도 할아버지는 홀로 그 집에 살고 계신다. 작년에 마당에서 할아버지가 쓰러지는 큰 사고가 있었는데 그때 바닥에 누워 집을 보면서 ‘저기가 내 집이구나, 저기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병실에 입원해서도 할아버지가 원한 건 단 한 가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평생을 노력해서 번 돈으로 짓고 후손들이 모여 자라온 그곳이 할아버지의 집이자 고향이었다.
반면 우리 부모님은 내가 중학교 때까지 살던 집을 팔고 무작정 이민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이후로 6번이나 집을 옮겨야 했다. 특히 최근에는 원치 않는 시기에 떠밀려 나오듯 이사를 해서 지금의 친정 집에 살게 되었다. 이러니 엄마, 아빠가 집에 애착이 없는 것은 물론 우리 3남매도 각자 독립한 공간을 더 편하게 생각하고 좀처럼 잘 모여지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내 집 마련의 이유로 흔히 꼽는 것 중에 하나가 ‘집이 있음에서 오는 심리적 안정감’이다. 사춘기 이후로 가져본 적이 없는 것이라 간과했었는데 실제로 내 집이 생기고 나니 그 안정감이 생각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아직 분양권만 있을 뿐 가본 적도 없는 집인데도 말이다. 평수가 작아 걱정이고 갚아야 할 빚이 산더미지만 마음속 깊이 든든하다. 우리 가족이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안도감은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에도 큰 힘이 되었다.
한 아이를 책임지는 부모로서 내 집 마련이 주는 안정감이 이렇게나 큰데 고향을 떠나 네 아이를 키워내고 지은 집이 할아버지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또 부푼 꿈을 가지고 도전했다가 우리 셋을 데리고 당장 살 곳도 없이 한국에 돌아온 38세의 부모님은 얼마나 막막했을까? 집을 소재로 글을 쓰면서 매번 가족에 대한 생각으로 뻗어나가는 걸 보니 역시 집은 곧 가족인가 보다. 앞으로 내가 몇 개의 집에 더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 있는 한 몇 번째 집이든 모두 즐거운 에피소드가 가득할 것이고 분량이 채워지는 대로 새로운 글을 써 내려갈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집'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입주할 '일곱 번째 집: 서울 대단지의 초소형 아파트'에 관련한 분양, 입주 관련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