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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사람 Jul 19. 2024

다섯 번째 집: 서울의 덜 작은 전셋집 (2)

코시국 3년, 공시 준비 2년을 버티게 해 준 집

언덕 위의 작은 집으로 이사한 지 몇 개월 후, 전 세계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감염자 한 명 한 명의 이동경로를 뉴스에서 보여주더니 곧 감염자 수만 집계하기도 벅찰 정도로 심각해졌다.


그 무렵 나는 공무원 시험공부를 시작한 지 반년이 채 안 된 상황이었다. 공부를 하려면 숭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지만 불안함에 못 이겨 가정보육을 하기로 했다. 반년 간 겨우 욱여넣은 지식들은 가정보육과 함께 휘발되었다.


나의 수험생활을 함께해 준 거실의 하얀 테이블

그러다 2020년 6월, 두 번째 시험에 떨어지고 더 이상 꾸물거릴 수는 없다는 생각에 독하게 마음먹고 숭이를 다시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독서실에 가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무조건 집에서 공부했다. 새벽에 숭이가 자는 작은 방과 우탄이가 자는 안방을 피해 거실 식탁에서 공부를 했는데 생각보다 집중이 잘 돼서 그곳이 내 독서실이 되었다. 하얀 테이블에 기본서와 기출문제집들을 펼쳐놓고 보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책들을 지그재그로 겹쳐서 옆에 밀어놓고 밥을 먹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나면 먹은 것들을 치우고 커피 한 잔을 내려와 다시 책을 착착 펼쳤다. 이렇게 1년을 꼬박 공부하고 다음 해에 나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면접날 현관 앞에서

다섯 번째 집은 거실 테이블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기억, 현관에서 면접 날 씩씩하게 집을 나서던 기억, 엘리베이터에서 첫 출근 날 숭이가 배웅해 주던 기억 등 한 곳 한 곳 애틋함이 많이 묻어있는 장소이다.




2022년 1월 임용된 후에도 코로나는 여전히 기승이었고 우리 가족 역시 바이러스를 피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한 명만 걸리면 화장실도 하나뿐인 집에서 어떻게 격리를 하나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세 명이 동시에 코로나에 걸렸다. 1주일의 격리 기간 중 숭이는 이틀 만에 살아나 집안을 누비고 다녔고, 우탄이는 목이 너무 아파 침대에 내내 누워 있었다. 비교적 증상이 약한 나는 자연스레 두 사람의 식사를 챙기고 숭이를 밀착 마크해야 했다. 친정 부모님과 어머님이 문고리에 걸어두고 가주신 보양식들이 아니었다면 코로나가 아니라 과로로 먼저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염자라 병원에도 못 들어갔겠지?)


격리 기간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이 감염되는 등의 이유로 재택근무를 할 때도 종종 있어서 우리 가족에게 '집'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게다가 집값과 함께 전세가가 어마무시하게 오르는 것을 보며 나는 본격적으로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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