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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사람 Jul 26. 2024

다섯 번째 집: 서울의 덜 작은 전셋집 (3)

나 빼고 다 집이 있다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 후, 2022년 1월부터 나는 옆 동네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우리 부서에는 총 6명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이야기를 하다가 나 빼고 다 자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참 선배인 4, 50대는 그럴 수 있다 쳐도 나보다 한 살 어린 5년 차 선배까지 집이 있다니,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래서 세상 사람 다 아는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면서도 여유로울 수 있었던 거였나!




안 그래도 우리가 살던 집 보증금도 3년 사이에 1억이나 오른 마당에 나만 빼고 모두 집이 있다는 사실은 부동산 공부를 당장 시작하게 만들었다. 나는 매일 책과 유튜브로 부동산 투자 이론 공부를 하고 시간이 될 때마다 우리에게 맞는 금액대의 아파트를 검색하고 직접 임장을 다녔다. 숭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2023년 3월 전에 이사한다는 목표로 열심히 찾아다닌 끝에 경기도 수지의 한 아파트를 잠정적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멀어지고 구축이기는 했지만 우리가 생각한 조건에 맞는 집이었다. 혼자 임장을 다녀온 후 우탄이와 숭이와도 함께 가서 두 사람의 동의까지 얻었을 때쯤 부동산 시장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집값이 갑자기 뚝 뚝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 종식을 앞두고 금리가 인상되고 부동산 규제까지 강화된 탓이라고 했다. 갑자기 모두가 집값의 거품이 드디어 빠진 거라며 앞으로 계속해서 하락할 거라고 말했다. 심지어 늘 몇백 대 일의 경쟁률을 자랑하던 청약시장도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지금이 신이 주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청약을 넣어보자고 했더니 확신이 없는지 회사의 부동산 고수 형님께 메신저를 보냈다고 한다. 잘 지내시냐는 인사를 받자마자 그 형님은 'ㅇㅇㅇㅇ 청약 넣어라'라고 하셨다. 비교적 저렴한 다른 곳을 고민하던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라는 바로 그곳의 초소형 평수에 청약을 넣었다. 그렇게 우리는 청약 점수 40점으로 서울 대단지 아파트에 당첨되었다.




일부 이루어진 소원 / 야수의 심장으로 얻은 분양권

내 집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정감은 엄청났다. 세 식구가 살기에 비좁은 평수였음에도, 분양가를 감당하려면 영끌을 해야 했음에도, 입주까지 친정집에 얹혀살아야 했음에도 마냥 든든하고 행복했다. 그래서 입주하기까지 남은 1년 반의 시간이 아무리 힘들어도 버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전세 만기가 다가오는데 임대인이 연락을 받지 않았다.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계약금을 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전까지 연락이 잘 되던 임대인이 우리가 전세 만기 날짜가 되면 나가겠다는 문자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두어 번 문자를 더 보내도 답장이 오지 않아 전화를 했더니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안내음이 들려왔다. 순간 분당 집에서의 악몽이 떠오르며 다시 흰머리가 돋아나는 것 같았다. 그날로 내용증명을 보내고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부동산에도 알리는 게 나을 것 같아 사장님에게 연락을 했다. 본인도 한 번 알아보겠다고 한 사장님이 이틀 뒤 전혀 예상 밖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공동명의인 남편에게 전화를 해보니 집주인이 얼마 전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전화해서 사정을 몰라서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죄송하다며 위로 인사를 드렸다.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엔딩으로 4년 간의 언덕 위 작은 집 전세살이를 끝내고 우리는 친정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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