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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사람 Aug 02. 2024

여섯 번째 집: 서울의 친정 살이 (1)

캥거루족의 다짐

사실 청약을 신청할 때부터 나와 우탄이는 당첨이 되면 친정에 들어가 살 생각이었다. 친정 집이 차로 10분 거리에 있었고 동생들도 다 독립을 해 부모님 두 분만 살고 계셔서 부모님만 OK 해주시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다행히 부모님은 흔쾌히 들어와 살라고 해주셨다. 덕분에 입주 전까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거주비용을 크게 줄이고 숭이도 전학을 가지 않아도 됐다.




가장 큰 경제적인 문제와 아이 전학 문제가 해결됐지만 결코 작지 않은 걸림돌이 하나 남아있었다. 바로 두 집의 살림을 합치는 것!

우리 엄마는 맥시멀리스트 중에 맥시멀리스트이다. 그래서 이미 방 세 개 중 하나는 창고로 쓰이고 있었고 아일랜드장과 그릇장, 수납장은 속은 물론 위에까지 짐이 가득했다. 부모님은 상의 끝에 남은 두 방 중 화장실과 에어컨이 있는 안방을 우리 세 식구에게 양보해 주셨다. 안방의 장롱에도 옷이 가득해서 우리에게 허락된 수납공간은 행거 두 개와 서랍장 하나, 침대 아래 서랍장 한 칸이 전부였다. 당연히 가전과 가구 같은 큰 짐은 가져갈 수 없었다.


드레스룸이었던 창고방 / 수집용 식기가 가득한 그릇장


이사하기 세 달 전쯤부터 나는 큰 짐들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당근, 가전 수거업체, 나눔 등으로 열심히 짐을 처분하고 남은 큰 짐은 숭이의 책상세트 하나였지만 진짜 복병은 잔짐이었다. 이삿짐센터에서 거실과 방 가득 내려주고 간 잔짐들로 친정 집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게다가 이틀 뒤면 추석 연휴라 이 집에서 차례도 지내고 동생들도 올 예정이었다. 급한 대로 버릴 수 있는 것들은 더 버리고 넣을 수 있는 건 다 넣었다. 여전히 정신은 하나도 없었지만 차례를 지낼만한 공간은 겨우 확보했다. 그러나 명절이라 주차할 곳도 없고 그 집에서 더 있다가는 온 가족이 보는 앞에서 우탄이와 크게 한판 싸움을 벌일 것 같아 우리는 호텔로 피난을 갔다. 난생처음 해보는 호캉스였다. 짐이 아니라 우리가 온전히 쉴 수 있는 공간에 가니 그제야 대화라도 할 여유가 생겼다. (친정 집에서는 말 한마디도 안 하는 긴장상태로 3일을 보냈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주변에 월세를 얻어 나가자는 우탄이를 혼내고 달래 가며 호캉스를 마쳤다.




처음 합가를 할 때는 이번 기회에 친정에 있는 묵은 짐들을 정리해 쉴 수 있는 곳으로 바꾸겠다는 원대한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정리하는 것을 도움이 아닌 간섭과 월권이라 생각했고 나 역시 우리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부모님에게는 문제없는 집인데 내 맘대로 바꿀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목표를 침대에서 자고, 테이블 위에서 먹고, 소파에 앉을 수 있는 집 정도로 줄였다.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들은 싹 버리고 그 자리를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었다.


위에 가득 쌓여있던 짐을 내리고 컴퓨터 사용과 식사 공간으로 만들었다.


처음엔 그렇게 답답하고 정신없던 모습도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져 갔다. 하지만 나는 친정에 다시 들어와 사는 1년 동안 부모님의 생활 모습을 보며 ‘집’이라는 공간의 기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친정 집은 물건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정돈을 포기했고 사람이 아닌 물건이 집의 주인이 되었다. 부모님, 특히 엄마는 계속 밖으로 돌다가 집에 들어가서는 지쳐 쓰러져 잠만 자고, 당연히 집은 더더욱 방치되는 상황이 30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이 집은 우리 형제들에게도 머무르고 싶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기에 다들 그렇게 빨리 독립을 했던 것이다.


이번 이사를 통해 나조차도 얼마나 필요 없는 짐들을 많이 끌어안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우리의 다음 집이 초소형이라는 것은 어쩌면 강제 미니멀리즘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나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 일의 시작과 끝인 집을 물건에게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안정과 쉼을 주는 공간으로 만들 것이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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