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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사람 Jul 12. 2024

다섯 번째 집: 서울의 덜 작은 전셋집 (1)

언덕 위의 작은 집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서울 사당동 19평 아파트로 이사를 마쳤다. 겨우 네 평 차이인데 리모델링을 해둔 덕분인지 전에 살던 집보다 1.5배는 넓어진 느낌이었다. 베란다까지 확장한 방이 두 개 있었고, 큰 붙박이장도 하나 있었다. 가져온 가전, 가구를 놓아도 공간이 꽤 남아서 살면서 아이 침대, 아이 책상, 옷장, 식기세척기, 건조기를 하나하나 채워 넣었다.


여유 공간이 있으니 가구 배치도 이리저리 바꾸는 재미가 있고 집에 더 애착이 갔다. 그래서 코로나로 강제 '집콕'을 할 때나, 공무원 시험공부를 할 때에도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공시 준비를 집에서 함으로써 이동하거나 식사할 때 쓰는 시간과 에너지를 상당히 아낄 수 있었다.




16키로의 아이를 업고 언덕을 오르던 젊은 우탄이..

이렇게 만족스러운 집의 한 가지 큰 문제는 언덕이었다.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려면 가파른 언덕을 15분 정도 올라야 했다. 당시 4살이었던 아이와 함께일 경우 30분도 넘게, 그것도 몇 번을 멈추거나 업어줘 가며 올라야 하는 거리였다. 절대 아랫동네에 못 가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곧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언덕을 오르내리며 적응했지만, 그렇게 되기 전 지레 겁을 먹었다가 더 큰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다.


앞서 '네 번째 집: 분당의 작은 전셋집 (2)'에서 얘기했던 숭이의 친구 엄마들을 이사한 집으로 초대한 날이었다. 친하게 지냈던 언니 두 명이 아이 세 명을 데리고 분당에서부터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온다고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지하철로 이동하는 것만도 진이 빠질 텐데 언덕을 걸어 올라오게 할 수가 없어서 나는 차를 가지고 역으로 내려갔다. 차로는 5분도 안 걸리는 거리라 총 7명이 차에 낑겨타고 출발했는데, 조금 이따 뒤에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와 "OOOO (차 번호), 차 세우세요. OOOO, 차 세우세요."라는 말이 들렸다.


너무 놀라서 길에 차를 세우고 내렸더니 경찰관이 다가와 신호 위반을 했다며 범칙금과 벌점을 부과하겠다고 했다. 알고 보니 신호등을 지나고 아주 짧은 거리에 또 하나의 신호등이 있는 길이었는데 내가 모르고 그냥 지나갔던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네 명의 아이들 앞에서 신호 위반 현행범으로 잡히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고, 아이들은 아직까지도 경찰이나 교통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이 날의 에피소드를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있다.

비록 범칙금과 벌점, 평생의 흑역사를 남기긴 했지만 사고가 나지 않았고, 첫 번째 실수에 제대로 걸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서 좋은 점도 꽤 많았다.

첫째로 숭이의 방에서 통창으로 보는 풍경이 예술이었다. 재미있게 놀다가도 숭이가 "놀 진다!"라고 하면 하던 것을 멈추고 함께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곤 했다.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매일같이 감탄하던 네 살의 숭이는 그 무렵 노을 그림을 참 많이 그렸다.


2022년 이수역 침수 당시 (출처: 한국일보, 연합뉴스)

둘째로 침수 피해가 없었다. 사당동은 비가 많이 오면 침수 피해가 종종 발생했다. 특히 2022년에는 옆 동네 아파트 담장이 무너지고 지하철 역과 주변 건물들이 침수될 정도로 그 피해가 심각했다. 폭우가 쏟아질 때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데 바퀴의 반이 잠겨있다가 언덕에 들어서자 금세 얕아졌다. 아무리 비가 세게 와도 우리 집까지는 물이 안 찰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밤에도 안심하고 잘 수 있었다.




그럼에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던 우탄이는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매일 땀에 젖어 퇴근을 했고, 우리가 집을 고를 때의 기준에 '평지에 있을 것'이 추가되었다. (훗날 청약에 당첨된 아파트도 평지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go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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