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질문은 늘 너무 커서 쉽게 붙잡히지 않았다. 정답이 있는 문제도 아니고, 누군가 대신 답해줄 수도 없는 질문이라 나는 늘 질문만 떠올리고 답은 자주 미뤄두었다. 살아가며 우연히 마주친 순간들은 나를 웃게도 울게도 했고, 그 안에서 조금씩 나를 알아갔고 그런 순간들이 지나고 나면,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게 된다. 의미없는 작은 흔적들이 모여, 내가 나를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 정답을 찾으려는 마음은 의미가 없고, 그저 흔적을 느끼고 지나가는 일만으로 충분했다.
삶의 질문은 늘 조용히 온다. 큰 갈림길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선택 앞에서 더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할지 말지, 불편함을 그냥 넘길지, 나를 조금 더 내어줄지 아니면 멈출지. 삶은 거대한 결단보다 이런 사소한 순간들의 축적이라는 사실을, 그 질문은 계속 상기시켰다.
한동안 나는 자유롭게 사는 것이 정답이라고 믿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지 않기 위해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했다. 또 다른 시기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는 삶이 더 옳다고 생각하며 나를 뒤로 미루고 다정함을 앞세워 살았다. 그렇게 서로 다른 방향을 번갈아 경험하면서 깨달은 것은, 어느 한 쪽도 영원한 답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다만 그 모든 시도들이 나에게 맞는 삶의 ‘결’을 조금씩 좁혀주었다. 자유는 쉽게 피로로 바뀌었고, 헌신은 자주 자기 소모로 끝났다.
결국 나는 다정한 쪽을 선택했다. 대단한 신념 때문이 아니라, 날카롭게 말한 뒤 오래 후회하는 삶보다 말수를 줄이고 조용히 돌아오는 삶이 내 몸에 맞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욕으로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삶보다는, 내가 지나간 자리의 공기가 거칠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자연스러웠다. 다정함은 나에게 이상이 아니라 취향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혼란스러웠다. 다정해지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것이 습관이 되었을 때 기준은 흐려졌다. 어디까지가 나의 선택이고 어디부터가 타인의 요구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들이 쌓였다. 사람을 좋아하다가 지치고, 지친 뒤에는 혼자만의 동굴로 숨어들었다. 다정함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보다는 더 피곤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처음으로 다정함 자체를 의심하게 되었다.
정말 다정함이란 많이 주는 일일까. 왜 남는 것은 늘 피로와 허탈감일까. 왜 나는 아무도 약속하지 않은 마음의 보답을 혼자서 기대하고, 혼자 실망하는 걸까. 나는 더 이상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나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다정함을 다시 정의할 필요를 느꼈다.
결론은 단순했다. 다정함은 무한정 내어주는 태도가 아니라, 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라는 것. 참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일이고, 희생이 아니라 조율에 가까운 태도라는 것. 나를 지키는 일이 곧 타인을 해치지 않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나는 그 가능성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싶어졌다.
나를 지키는 다정함은 조용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받지 않아도 된다. 싫은 것을 싫다고 크게 말하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다.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참아서가 아니라, 그 감정 속에 나를 오래 두지 않기 때문이다. 다정함은 목소리를 낮추는 기술이 아니라, 자기 삶의 온도를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에 가깝다.
나는 다정하게 살기 위해 더 많이 주려고 애쓰지 않는다. 대신 덜 무너지려고 노력한다. 타인에게 친절하기 전에,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예전처럼 나를 잃어가며 버티지는 않는다. 어쩌면 삶이란 무엇을 이루느냐보다, 어떤 태도로 하루를 견디느냐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다정함을 선택한 이 삶의 방식을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윤리라고 믿는다. 나를 지키고 해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이 정도면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종종 ‘다정함’과 ‘모두에게 맞춰주는 착함’을 혼동하고, 그렇게 자신을 소모한다. 하지만 다정한 사람은 자신을 지키면서 상대를 아프지 않게 하는 사람이다. 특히 20대와 30대는 인간관계, 연애, 직장 등에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너무 많은 걸 허락하곤 한다. 하지만 나를 지키는 다정함은 경계를 세우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아래는 내가 그동안 경험하고 쌓아왔던 나만의 기준을 소개하겠다.
다정하지만 무르지 않은 나만의 경계 10가지
1. 불편한 질문으로 대답을 강요당할 땐, “생각해볼게”라고 말하기
생각할 시간은 나의 권리다. 나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먼저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배려도 다정함도, 결국은 건강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2. 상대방이 요청하지 않았을 때, 혼자 애써 잘해주고 상처받지 않기
돈이든 마음이든 주는 순간, 주는 행위에서 스스로도 행복해야 한다. 주는 건 나의 선택이고, 되돌려주는 건 그 사람의 사정이자 자유다. 스스로가 받은 마음을 기억하고 돌려주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하여, 그 방식이 모두에게 같을 필요는 없다. 그러기에 주어도 아프지 않을만큼만 주자.
3. 나 자신에게 먼저 좋은 사람되기
슬플 때 웃지 않고, 피곤할 땐 쉬며, 원하지 않을 땐 억지로 도와주지 않는다.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 진짜 나다운 사람이 되기. 사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부터 시작한다.
4. 인정받고 싶어서 계속 애쓰는 관계는 멈춰 서서 들여다보기
직장, 연애, 친구 사이에서 자꾸 나만 잘하려고 들 때 “왜 인정받고 싶지?”를 되물어봐야 한다. 내 가치는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라, 나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
5. ‘죄책감’ 때문에 책임지지 않기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나쁜 사람인 건 아니다. 기대는 그 사람의 것이지, 나의 의무는 아니다. 상대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선택하자.
6. “미안해”보다 “고마워”를 자주 쓰기
미안해 대신 고마워를 “기다려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쪽이 ‘나’도 지키고 관계도 건강하게 한다. 내가 하는 말은 내가 가장 먼저 듣는 법. 말은 다정하고 예뻐야 한다.
7. 내 기준을 흐리지 않기 위한 루틴 만들기
명확한 기준은 나를 돌보는 루틴에서 나온다. 산책, 글쓰기, 운동처럼 나를 위한 시간을 꾸준히 갖는다면 관계 속에서도 내 중심을 잃지 않게 된다.
8. 내가 원하지 않는 부탁엔 이유 없이 거절해보기
“그건 좀 어렵겠어요” 이 말 하나면 충분하다. 거절에 꼭 설명이 필요하진 않다. 싫은 걸 싫다고 말할 줄 아는 다정함은, 진짜 나를 지키는 힘이 된다.
9.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 기대하고 바라고 요구하지 않기.
내 감정은 내가 책임진다. 상대에게 내 감정까지 책임지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원하고 바라는 게 있다면, 그걸 스스로 이루어내려는 단단한 마음이 필요하다.
10. 모든 사람과 가까워지려고 애쓰지 않기
잘 맞는 사람은 결국 ‘서로 다정한 사람’이다. 반복된 오해와 갈등이 있다면, 그건 거리 두기가 필요한 신호일지도 모른다. 애씀 없이도 편안한 관계가 결국 오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