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다투고 싶어서 다투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은 단지, 관계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서툰 방식으로 밖으로 흘러나올 뿐이다. 어떤 날은 목소리를 높이고, 또 어떤 날은 침묵을 택한다. 하지만 그 시작점은 늘 같다. 마음 한 켠에서, 상대를 잃고 싶지 않다는 소박한 두려움이 자리한다.
현명하게 말하고 싶다는 욕망 역시, 성숙함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닌, 반복되는 오해와 사소한 단절에서 오는 피로가 우리를 조금 더 조심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말 한마디가 관계를 얼마나 쉽게 흔들 수 있는지, 그 흔들림이 남기는 허탈감을 우리는 살아가며 배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어떻게 말해야 덜 다치고, 덜 상처 주면서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나는 한동안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랐다. 표정이나 눈빛, 작은 몸짓만으로 이해받길 원했다. 그 기대가 어긋났을 때 느낀 서운함, 참고 넘겼을 때 생긴 오해, 그런 순간들이 관계를 조금씩 삐걱거리게 했다. 이제 와서 보면, 그 감정은 서로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려주는 신호였다. 하지만 그 신호를 꺼내놓는 일은 솔직히 말해 부끄럽고 어색했다.
결국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감정을 숨기거나 참는 일이 아니다. 감정을 잘 표현하는 법을 아는 것이다. 단, 그것은 단순히 솔직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해치지 않으면서 나 자신을 배반하지 않는 방식과 닮아 있다. 현명한 대화란, 내가 느낀 것을 조심스럽게 전달하는 법과 닮았다. “네가 틀렸다”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이렇게 느꼈다”라고 말할 때, 관계는 방어적이지 않고, 오해는 차츰 잦아든다. 서운함은 공격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해받고 싶은 마음임을 드러낸다. '너가 이렇게 행동하니 난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서 서운하고 속상해'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말의 속도다. 모든 감정을 즉시 꺼낼 필요는 없다. 때로 침묵은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이 된다. 관계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를 존중하며, 서두르지 않고 말을 꺼낼 때, 말은 덜 상처 주고 오래 남는다. 신중함은 감정을 억누르는 일이 아니라, 상대를 해치지 않고 자기 자신도 지키는 방식이 된다. 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들이마시고 내뱉고 심호흡으로 스스로 먼저 안정을 취하는 것이 우선이다. 마음이 안정된 이후 다시 차분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우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솔직하게 표현하는 가장 현명한 방식이다.
결국 성숙한 대화란, 상대를 설득하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다치지 않게 드러내는 능력이다. 우리는 완벽하게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마음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느낌만으로 충분히 관계를 지킬 수 있다. 요란하지 않아도, 조용히 오래 지속되는 방식으로 말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