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했다는 사실이 꼭 마음을 가볍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일 때가 있다. 이유를 알고 나면 끝날 줄 알았는데, 감정은 거기서 멈춘다. 그날의 말투나, 지나치듯 흘린 표정 같은 게 별일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아직 그 장면 근처를 서성인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도 안다. 일부러가 아니었다는 것도, 나를 겨냥한 행동이 아니었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쑥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하필이면 왜 그 순간이었을까, 왜 아주 조금만 더 조심하지는 못했을까. 이 질문은 상대를 따지기 위한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 자신에게 향해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이해하는 쪽에 서 있으려 했다. 서운함을 꺼내는 것보다 삼키는 게 수월했고, 감정을 설명하느니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넘기는 편이 익숙했다. 괜찮다고 말해놓고도 속으로는 계속 걸리는 마음을 안은 채로, 그렇게 몇 번이고 관계를 이어왔다. 이해는 빨랐지만, 그 사이에서 내 마음은 자주 뒷순위로 밀려났다.
감정은 이성보다 항상 늦게 도착한다.
머리는 이미 이유를 알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마음은 아직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왜 그랬을까’를 따지기보다, 그 일 이후로 내가 어떤 상태가 되었는지를 먼저 보게 된다. 말로는 지나간 일인데, 감정은 아직 현재형인 채로 남아 있는 느낌.
서운함을 눌러두고 이해만 하다 보면, 관계는 겉으로 보기엔 별 탈이 없다. 다툼도 없고, 큰 말도 오가지 않는다. 하지만 말해지지 않은 감정들은 조용히 쌓여서, 어느 순간 공기가 빠진 것처럼 느껴진다. 오해는 대개 말이 많아서 생기기보다, 마음을 다 안다고 생각할 때 시작된다. 나는 이해하면서도 서운했고, 너는 아끼면서도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둘이 동시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이제는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 사람 사이에서 완전히 납득되는 순간은 많지 않다.
우리는 대개 조금 모르는 채로, 조금 덜 이해한 상태로 관계를 이어간다. 그래서 중요한 건 모든 걸 알아냈는지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더 머물러보려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다정함이 오해로 남고, 침묵이 상처로 받아들여져도, 그 위에 다시 마음을 올려보는 선택 같은 것.
모든 감정을 말로 정리하지 않아도 괜찮을 때가 있다. 다 설명되지 않은 서운함이 남아 있어도, 그 여백을 함부로 지워버리지 않는다면 관계는 완전히 끊어지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많은 관계를 붙잡아주기도 한다.
요즘의 나는 서운함을 없애려 애쓰기보다는, 그 감정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조금 더 오래 바라본다. 이해와 서운함 사이에서 급히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잠시 멈춰 서 있는 쪽을 택해본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끝까지 설명하지 못한 마음을 안은 채로도 다시 연결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관계는 명확한 말보다, 그렇게 남아 있는 시간 속에서 조용히 이어지는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