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끝나면 미움이 남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미움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곱씹어 보면, 그 관계에 진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에게 너무 많은 마음을 쏟고 있었다. 문제는 마음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이 전달되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같은 감정을 품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사랑은 흔히 감정의 문제로 이해된다. 하지만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사랑은 감정보다 ‘번역’에 가깝다. 상대가 고요하다고 해서 무심했던 것은 아니었고, 내가 애썼다고 해서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던 것도 아니었다. 관계는 언제나 각자의 해석 위에 세워진다. 그리고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의 언어를 충분히 배우지 않은 채 사랑해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익숙함은 때로 오해를 더 깊게 만든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는 기대는 가장 가까운 사람 앞에서 가장 쉽게 어긋난다. 마음은 있었지만 표현이 엇갈렸고, 상처는 남겼지만 악의는 없었다. 그러나 진심이라는 것은, 전달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사랑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서로를 다치게 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사랑이 끝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때의 해석이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 왜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몰랐고, 왜 너는 말해주지 않았을까. 시간이 지나도 문득 떠오르는 것은 얼굴이 아니라, 이해받지 못했다는 감각이었다. 미움보다 오래 남는 것은, 그 쓸쓸한 오해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진심이 오해로 남았다는 사실은, 그만큼 마음을 다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심해서가 아니라, 서툴러서 서로를 놓쳤다. 같은 감정을 품고도 얼마나 다른 문법으로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관계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배운다. 어쩌면 사랑이란 감정의 크기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언어를 끝까지 배우려는 노력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랑했지만, 충분히 번역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미완의 번역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