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가던 길 멈추고, 나의 히스토리를 위로하다
가난의 경계에서 가난에 찌들지 않고
부에 영혼을 점령당하지 않았으며
야만의 경계에서 난폭하지 않고
문명이 갖는 허위의식에 쩔지 않았으며
이 둘이 공유하는 잔인함에 긴장을 늦추지 않았으며
좁은 세계 속에서 그래도 그 지경을 끊임없이 넓혀온 것, 그러나
넓은 세상에 그리 주눅 들지 않았던 것
이만하기까지 묵묵히 요동치며 살아온 나를
오늘은 스스로 대견해하고 싶다.
넓고 좁은 경계에서 그 두 세상을 다 아는 것
가난과 부요함의 경계에서 그 두 사연을 두루 안다는 것
문명과 야만의 경계에서 그 두 속성을 두루 파악한다는 것
아마도 내 삶이 경계인의 삶이었기에 그나마
갖추어진 작은 능력치일 것,
어느 쪽이든 선택하지 않은 삶, 하나의 세계에 속하지 않음은
외로움이요 불안함이었지만
경계를 이탈하고, 남의 영역을 기웃거렸던 것은
용기요 모험이요, 호기심이었다.
이만하면 잘 살았다
그만하면 착하다
스스로 칭찬한다.
사는 날까지 이 착함을 잘 유지하자
오늘 이 아침 다짐한다.
이제 더 이상 내 착함의 범주에
발효되지 못하고 썩어 문드러진
다른 사람에 대한 어설픈 배려 따윈 넣지 말자
최대한 나에게 집중하는 것
머무르지 않는 것
바람처럼 자유로운 것
선승처럼 단호하고 무정한 것
그리하여 종국에는
나 조차도 놓아버릴 수 있는 것,
이것이 착한 삶이다.
내가 가야할 길의 모습이라 다짐해본다.
2021년도 벌써 한 달
60인생 쉼없이 가던 길 멈추고
나를 들여다 본다.
이제껏 나를 지킨
신의 은총에 감사하며
가난하나 부요하고
비어있으나 충만한
삶의 모순과 아이러니에 충실하자는
뜬금없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