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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VS 백설공주

사회 구조의 차이는 스토리를 달리한다

  여러분은 혹 우리나라 전래동화에는 왜 서양과 같은 왕자, 공주 이야기가 없는 지 의문을 가진 적은 없었는지?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민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는 사또와 사또 주변의 인물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보자. 춘향전에도 남원부사 아버지를 따라 내려온 사또의 아들 이도령, 춘향이를 괴롭힌 변사또가 줄거리 전개상 중요 인물이 된다. 콩쥐팥쥐전에서도 콩쥐의 꽃신을 발견한 인물이 신임 사또의 아들이었을 것이다. 장화홍련전에는 억울하게 죽은 자매의 원혼이 자신들이 원한을 풀어달라며 사또 부임하는 날 밤에 나타나 하소연을 한다. 어쨌든 꽤 오랬동안 이런 류의 이야기들은 이리저리 각색되어서 다양하게 읽혀져 왔다. 


  이에 반해 서양의 민간 이야기에는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들이 많다. 디즈니 만화영화로 잘 알려진 백설공주, 인어공주, 겨울왕국의 안나와 엘사, 잠자는 숲속의 공주, 개구리 왕자, 미녀와 야수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의 왕자 공주 이야기들이 있다. 


  왜 일까? 왜 우리 이야기에는 왕자와 공주가 거의 없고, 서양의 이야기에는 그렇게 왕자 공주가 많이 등장할까? 내가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는 바로 우리네 삶의 구조의 차이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하면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중앙집권적인 행정 체계를 유지해왔고, 서양은 그렇지 않았다는 말이다. 독자들 중에는 '중앙집권 등등'의 용어가 그리 반갑지는 않을 것이나, 어쨌든 공부 하는 과정에서 들어보았을 것이고, 기억에 남는 분도 많으리라 본다. 하지만 실제 중앙집권 체제가 갖는 구체적인 모습이 어떨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일지도 모른다. 그래소 이번 글에서는 우리네 삶의 구조와 서양의 삶의 구조차이를 살펴볼까 한다. 


  중앙집권체제는 말 그대로 중앙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국가 행정 체계를 말한다. 그렇다면 중앙의 의미가 무엇일까? 지역적 기준으로 말하자면 수도(수도는 대단히 근대적, 서양적 용어이고, 전통적으로 우리는 이를 도읍, 도성이라 불렀다)이고 권력의 소재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왕(군주)이다. 참 익숙한 단어이지 않은가? 다시 말하지만 수도에, 그것도 수도의 북쪽에 위치한 구중궁궐에 왕이 존재하고, 왕 중심의 권력과 수도중심의 행정체계가 갖추어진 것을 이른바 '중앙집권'이라 한다.  이런 체제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바로 왕의 명령을 받아 그것을 이행하는 주체인 지방관(우리는 이들을 수령, 원님, 사또 등으로 불렀다)이다. 즉 왕은 각 지방으로 그들을 파견하여 중앙의 행정의지를 집행하였다. 그러니 지방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권력자는 왕이 아니라 지방관 즉 사또였다. 아니면 가끔 나쁜 사또를 혼내는 암행어사 정도? 그래서 우리나라의 민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늘 사또나 사또의 주변인물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서양의 이야기 구조에는 왕자나 공주가 많이 등장한다. 딱히 번역할 만한 단어가 마땅치 않아서 왕자, 공주라 하지만 이야기 속의 prince와 princess는 우리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왕자와 공주같은 존재는 아니다. 독자들 대부분은 유럽 중세시대에 봉건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봉건제도는 각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들이 제각기 자신의 영역을 왕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지배했던 정치체제를 말한다. 영주들의 영토(영지)를 장원이라 이름하였다. 

 

  장원은 마치 우리나라로 치면 어느 한 고을정도로 생각하면 좋겠다. 그 안에는 영주의 성이 있고, 그 성을 둘러싼 방어 목적의 해자(못)가 있으며, 사제관, 농지, 농노의 마을 등이 산재해 있어서, 그 안에서 정치와 경제가 함께 이루어진 자급자족적 경제 공동체이다. 유럽의 역사에서 봉건제는 이르게는 8~9세기에서 가장 늦게는 봉건경제의 틀이 무너지는 인클로저 운동의 시기까지 근 천 년에 걸친 사회 구조였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유럽 사회의 삶이 펼쳐진 체제였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 속에 각인된 삶의 구조와 서사들이 내내 전해져 왔으리라 본다. 


  그러니 마을의 주된 주민이었던 농노들은 일하는 중에도 수시로 영주의 성을 출입하는 영주의 자식들을 마주칠 수 있었을 것인데, 그 영주의 자식들이 바로 prince와 princess들이었다. 이렇게 그들에게 왕자와 공주는 구중궁궐에 사는 평생 한 번 볼 수 없던 우리의 공주와 왕자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존재였고, 그들의 이야기 속에 수시로 등장하는 로망의 존재이지 않았을까. 왕자 공주만큼이나 흔히 볼 수 있었던 존재가 바로 기사들이라고 한다면, 그들의 이야기 속에 그만큼 기사들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질 뿐 아니라,  현재 유명한 게임의 캐릭터에 기사들이 많은 것은 역사가 산업의 콘텐츠가 되는 가장 '훌륭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지리적 환경도 서사의 차이를 낳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이 많지 않을 뿐. 그래도 한 두번 가본 유럽의 자연은 우리와는 풍경이 많이 달랐다. 넓은 평원, 마을 근처의 숲은 있어도 여기저기를 둘러보아도 우리와 같이 우리의 시선을 막는 산을 보기란 쉽지 않았다. 그들의 넓은 평원을 참 부러워 하며 보았던 기억이 있을 정도로. 그래서 유럽의 사람들이 상상해낸 자연 속 신비한 존재들은 일곱 난장이라거나 요정과 같이 대단히 인간과 유사하거나 인간의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공유하는 특징을 갖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할까, 막혀있다고 할까. 나는 관념적으로는 산이라는 자연을 좋아하고, 산속을 거니는 것도 좋아하지만, 이리를 둘러봐도 저리를 돌아봐도 내 시선을 방해하는 산들에 가끔은 짜증이 날때도 있다. 산이란 인간에 비해 고압적이고, 그래서 산신령과 호랑이와 같은 산속 존재들은 인간을 위압하거나 지배하거나 징벌하는 존재들로 그려지는 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인간을 둘러싼 환경(자연이든 인위든)은 서사의 차이를 낳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썰들이 무슨 소용이냐 싶다. 최근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전래동화에 대해서 물어보았더니, 백설공주, 신데렐라는 잘 아는데, 콩쥐팥쥐 정도나 신데렐라와 이야기 구조가 비슷해서 아는 정도, 장화홍련전이나 춘향전 등등은 아예 들어본 적이 없다는 아이들이 많았다. 글로벌 문화인 디즈니의 영향이겠지만, 장구한 세월 속에 형성된 우리의 이야기 구조가 잊혀지는데는  어이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 걸리는, 이른바 '순삭'의 상황을 보고는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았다. 어찌하랴. 어거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으니. 아파트가 숲이 되어버린 현실에서는 그래서 아이들이 '신비아파트'같은 이야기에 몰입하는지도 모른다. 현대판 도깨비들이 아파트에 산다는 서사 구조는 바야흐로 이 시대의 사회구조가 서사의 차이를 낳는 현장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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