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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에 대한 짧은 생각들

스마트폰보다 돌멩이?   

  여러분이 기억하는 인류 최초의 혁명적 사건은 무엇인가? 다들 아시다시피 혁명이란 'before''after'가 달라도 너~무 다른 변화를 만든 어떤 사건을 이름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정치적 변화를 초래한 '시민혁명' 이라든가 경제적 변화를 초래한 '산업혁명' 같은 것 말이다. 


  그럼 인류 최초의 혁명적 사건은? 이란 질문을 받았을 때, '신석기 혁명'을 떠올리는 사람은 어느 정도일까? 이 역시 또 다른 의문이긴 하다. 어쨌든 대체로 인류 최초의 획기적인 변화의 시대가 신석기시대였다는 것은 교과서적인 지식일 것이다. 그것의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다. 떠돌이 생활을 하던 구석기시대와는 달리 신석기시대의 사람들은 드디어 정착생활을 한다. 정착이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농경이었다는 것이다. 농사를 짓게 됨으로써 한 마을 - 부족 단위로 공동 노동, 공동 생산, 공동 분배 등의 삶의 형태가 출현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뿐이랴. 우리 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가락바퀴 등으로 실을 잣는 방법을 개발하는가 하면, 뼈바늘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이른바 '의`식`주'의 3대 요소를 얼추 제대로 갖추며, 보다 사람다운 삶의 모습을 보이는 획기적인 변화, 그것이 바로 신석기 혁명이었다. 


  하지만 이글의 목적은 이른바 '신석기 혁명'이 아니다. 오늘의 글에서는 도구의 발달 과정 및 그 기초적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인류의 또 다른 이름인 '호모 하빌리스-도구인(손재주 있는 인류, 능력 있는 인류)'이란 오늘날에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함께 생각할 수 있다면 더더욱 금상첨화일 것이고. 


  도구는 인류가 삶을 유지하고 영위해 온 실질적 수단이다. 인류 최초의 도구는 무엇이었을까?라고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한다. 절대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터이나, 아마도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거나, 틀리면 쪽팔린다는 생각 등이 학생들의 말문을 막는 것이라고 추측된다. 답은? 아마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일 것이다. 가장 손쉽게는 주변의 나무나 돌을 사용하였을 것이고, 다음으로는 자신들이 잡아먹은 짐승의 뼈도 잘 다듬어서 도구화하였을 것은 너무도 뻔한 상상-추론이지 않겠는가. 


  다시 교과서적인 지식을 소환해보자. 도구의 변천에 대하여 우리는 대체로 ‘구석기 – 신석기 – 청동기 – 철기’의 순서로 발전하였다고 배웠을 것이다. 그럼 나무나 뼈 도구는? 말해 뭐하겠는가, 그것들은 썩어서 지금껏 남아 전하는 것은 거의 없기에 시대 구분의 자료로 사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지. 그래서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며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지금까지 전해진 석기와 금속기를 중심으로 시대 구분을 한다는 것은 상식이 아니겠는가. 다만 우리의 학교 교육에서는 이 상식조차도 제대로 설명이 되거나 이해되지 않는 실정이다. 더 나아가 눈에 보이지 않거나 설명되진 않았지만 있음 직한 사실이나 누락된 사실에 대한 '뻔한 상상'을 하기에 제법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것은 단지 역사라는 특수한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전반에 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각의 습관이기에 나는 가끔 그것이 서글플 때가 있다. 그리고 내가 이 글을 쓰는 하나의 이유가 되는지도 모른다. 평범하고 조촐하게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생각의 습관!

  

  이제 각 도구의 수준을 한번 들여다보자. 구석기는 단단한 돌을 깨서, 날카로운 면으로는 물건이나 풀, 나무 등을 자르는데 쓰거나 뭉툭한 부분으로는 다지거나 두드리는 데 사용하였다. 그러니 구석기로 사용할 수 있는 돌의 재질은 기본적으로 단단해야 한다. 그러니 재질의 면에 '단단' 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을 뿐 아니라, 그 도구를 제작하기에는 힘과 기술이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니 구석기는 하나의 도구를 가지고 다용도로 사용하는 형태가 대다수였다. 우리가 아는 대표적인 구석기가 바로 그 유명한 '주먹도끼'로 당시 최애 다용도 아이템이었다.


  구석기가 깨트려서 사용하는 도구(타제석기) 임에 비해  신석기는 갈아 만든(마제석기)  돌도구였다. 다소 무른 돌이라도 갈아서 날카롭든, 둥글든 용도에 맞게 다듬으면 되는 것이었으니 우선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재료의 선택에 있어서 그 폭이 엄청 넓어졌다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혹 날이 무디어지면 다시 갈면 되니,  재사용이 가능한 도구였다. 이런 점에서는 당시 상황으로는 어마어마한 도구 수준의 진보라고 아니할 수 없다. 현대적인 수준의 기술의 진보와 비교하며 '애걔걔'라 비웃지 마시라. 다시 말하지만 인간의 그 처음은 말할 수 없이 미미하였음을 기억하자. 도구 발달에 있어 신석기로의 진전은 매우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음을 나는 주장하고 싶다. 그래서 신석기 혁명이 농경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도구 수준의 변화 자체에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음으로 금속 도구를 살펴보자. 청동기의 기본 재료는 구리다. 구리는 강도가 매우 약한 재질의 금속이라서 그 자체로는 도구로 사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주석이나 아연을 섞어서 단단하게 만드는 일종의 합금 방식의 도구가 바로 청동기이다. 마치 금이 연한 금속이어서 모양이 찌그러지기 때문에 14K, 18K로 만들어 단단한 장신구를 만드는 것과 같다. 혹 놋그릇을 아시는가? 놋그릇이 바로 청동기의 일종이다.  혹 집에서 놋그릇 반상기 세트를 놓고 식사를 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집은 어림도 없다. 주물(틀)로 만든 놋그릇도 가장 싼 게 몇십만 원 단위일 것이고, 일일이 두드려 만드는 방짜유기(놋그릇)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이니 어디 일상에서 놋그릇을 함부로 쓸 수 있겠는가. 삼성가와 같이 돈 많은 가정이나 유서 깊은 양반 종가댁이나 그들의 제사 때 쓰는 제기 정도로 우리는 놋그릇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왜 이런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가 하면 이 청동이 여전히 귀한 도구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당시에는 얼마나 귀한 도구였을까.


  우리나라의 초기 청동기는 구리와 아연을 합금한 동북방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나중에 철기 시대에 이르면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주석을 섞는 방법을 알았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 지역의 초기 청동기 갈래는 중국과는 계열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다가 중국이 전국시대라는 혼란기에 중국 쪽으로부터 한반도로 유입해온 사람들에 의해 철기와 함께 청동 주조법도 함께 전래되면서, 우리는 후기 청동기와 철기시대가 병행하여 전개되었다. 중국은 구리에 주석을 섞어 만드는 방식이라고 한다.(최근 이 부분에 대하여 처음부터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학설이 등장해서, 청동기 시대에 관한 논쟁이 향후 학계의 치열한 토론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그것이 뭔 대수라고, 뭣이 소중 혀? 할지라도) 문제는 청동의 주재료와 부재료 모두가 우리 지역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재료의 배합비율이나 불의 온도에 따라서 그 강도와 빛깔 등이 제각각이었기에, 청동은 이래저래 좀 까탈스러운 도구였다. 그래서 애초부터 생활형 도구로 발전하기는 불가능했고, 주로 지배층의 장신구나 그들의 제사와 권위를 상징하는 도구로만 사용되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정설이다. 


  철기는 원철을 녹여서 불순물만 걸러내면 되어서 청동기보다 만들기가 훨씬 쉽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철이 많이 나는 지역이어서 재료를 구하기도 청동기보다 수월하다. 그런데 왜 청동기보다 철기가 나중에 만들어지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바로 불의 온도에 있다. 구리를 녹여 청동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불의 온도는 800도 정도라고 한다. 별 장치 없이 자연의 상태에서 장작 등을 사용하여 올릴 수 있는 온도가 약 8~900도라서 구리는 자연 상태에서 녹일 수 있다. 하지만 철은 기본적으로 1600도 이상의 고온에서 녹고, 자연 상태에서는 절대로 그 온도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용광로와 같은 장치가 고안되고 나서야 인류는 철을 도구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철과 청동기는 재료가 차이가 아니라 불의 온도가 핵심적 차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러고 보면 일단  만들어지기까지가 어려웠던 것이지, 일단 만드는 방법을 알고 나면 철기는 곧장 생활도구나 전쟁의 무기로써 사용된다. 그래서 철제 농기구나 무기를 많이 확보한 국가들은 다른 나라와의 전쟁에서 유리하였고, 그런 강한 나라를 중심으로 세력적 재편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철기 시대 이후 복잡한 국가의 변화가 수반되었던 것이다.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의 패권 경쟁이나 중동지역의 강력한 제국이었던 앗시리아의 도구적 배경이 바로 철기였던 것이다.  


  이렇게 개략적으로 각 도구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여기서 잠깐. 순전히 나의 노파심이겠지만 그래도 확인하는 차원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어떤 시대를 규정하는 것은 ‘비로소 그 시기가 되었을 때 새로운 무엇이 등장한 시대’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말씀이지만, 새로운 도구의 시대가 되어도 이전에 써왔던 도구는 여전히 함께 쓰인다. 인류는 자신의 문화자산을 가능하면 버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총체적으로 활용하는 존재인 것이다. 오늘날은 이른바 '신소재의 시대'라고 사람들은 규정한다. 그러나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실리콘, 반도체, 탄소섬유 등등이 컴퓨터나 인공위성 등에 사용되는 시대를 살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철기도 있고, 청동기도 있고, 심지어 나무나 돌로 만든 도구들을 함께 쓰고 있지 않은가. 


  왜 이런 '하나마나 한' 말을 하느냐 하면, 실제 현장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각 도구 시대를 단절된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허다하였기 때문이다. 즉 신석기시대에는 구석기를 쓰지 않는다거나, 철기 시대가 되면 이전의 도구들은 사용되지 않는 것과 같은 생각의 착오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면 그럴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겠지만 현실을 그랬다. 그래서 난 가끔 다음과 같은 참으로 썰렁한 농담을 하곤 했다. 


  “소풍을 갔어, 도시락을 가져갔는데, 젓가락을 안 가져온 거야. 어떻게 하는 것이 도구인의 자세일까? “ 답은 무엇일까? 그렇다. ‘나는 교양인이니까 젓가락 없이 밥을 먹는 야만적인 짓은 할 수 없지. 고고하게 점심을 굶는 거야’가 답이 아니라, 주변 나뭇가지를 꺾어, 젓가락 비슷하게 만들어서라도 점심을 해결하고 오는 것이야. 얘들아"


  실제 내가 어렸을 때는 임기응변으로 나무젓가락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인상을 찌푸리거나 마치 내가 한 19세기 인물쯤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바로 몇십 년 전에도 우린 이렇게 살았구먼.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은 이런 낭만적인 상황을 설정할 수 없는 건조한 시대이다. 이제 학생들은 점심 도시락을 싸들고 소풍을 가지도 않고, 주변의 나뭇가지를 꺾을 수도 없으며, 더구나 그렇게 만든 나무젓가락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까지 결코 상상력이 가닿지 않은 시대이니 말이다. 나의 개그에 가까운 문제제기는 무지하게 썰렁하고 허망하고 '힘'이 없어져 버렸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본질이 그리 달라지지는 않는다. 인간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경험을 총체적으로 활용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왔던  도구인이라는 것, 그래서 때로는 구석기시대 인류의 원초적 생활 수단이 훨씬 힘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걸 가끔은 생각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떠돌이 개(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드디어 떠돌이 개들이 다시 출현하였다!)가 나를 위협하면 우리는 돌멩이라도 들어서 그것들을 쫓아야 하니까 말이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듯이 요즘은 길가에 돌멩이를 찾기도 쉽지는 않다, 아쉽게도. 그래도 애써 찾아보자.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힘이 있으니. 


  가끔은 스마트폰보다 돌멩이가 낫다. 가장 가성비 좋은 도구는 역시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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