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곰의 후손이고 주몽은 알에서 태어난 존재인가?
우리나라에는 고조선 건국신화, 고구려 건국신화, 신라의 건국신화, 가야의 건국신화 등등의 건국신화가 있다. 각각의 신화의 내용들이야 대부분 잘 아실 것이라 믿고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생략하자. 다만 이 글에서는 이야기 구조가 갖는 상징성과 우리 민족의 원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가야는 조금 스토리를 달리 하지만 대체로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의 주인공들은 하늘에서 내려온다. 이는 시베리아의 영웅신화인 '게세르 신화'와 연결되는 구조로, 여기에서 하늘은 그 방향상 북쪽이란 의미를 갖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게세르 신화는 하늘 신의 아들인 게세르가 지상으로 내려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고 홍수와 가뭄, 질병 등을 일으키는 악신을 물리친다는 내용이라는데, 우리의 단군신화와 너무도 비슷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 신화는 알타이 몽골 만주 등에 전하고 있어 우리 문화의 북방 유래설을 신화적으로도 뒷받침하는 것이다.
또 하나, 우리의 신화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서자(?)들이다. 서자란 개념은 아마도 훗날 장자에 대하여 유난한 특권을 부여한 성리학적 사고가 강화된 시점쯤에서 덧붙여진 것으로 이해되는 면도 있다. 대체로 우리 역사에서 성리학은 고려 후기에 원으로부터 전래되어서 점차 사회 전반으로 정착되어갔다. 그래서 고려말 단군 이야기를 서술한 역사책 중에서도 신진관료였던 이승휴의 <제왕운기>에는 단군을 낳은 환웅이 환인의 서자로 기록된다. 하지만 성리학적 관념보다는 뭔가 기득권을 갖지 않는 세력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주체가 된다는 일반적 스토리를 드러내는 장치가 장자가 아닌 '서자'이거나 '혼외자' 등의 설정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쨌든 이들은 기존 질서에서 어떤 분배의 몫을 차지하기에는 불리한 존재이다. 그래서 야망만이 있는 서자들은 내란을 통해 뺏거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지만, 모험심과 야망을 함께 갖춘 자들은 새로운 자기 영역을 찾아 떠난다는 신화 속의 일정 루틴이 있어 왔다.
먼저 단군신화를 살펴보자. 앞서 말한 바대로 단군신화가 채록되어 기록되는 시기는 대체로 고려 말이다. 삼국유사 <기이 편>에 기록된 것이 최초이긴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그 근원에서부터 유려한 시적 문체로 기록한 이승휴의 <제왕운기>에 기록되어 있는 단군신화에는 환웅이 환인의 서자라 묘사되어 있다.
"상제(上帝) 환인에게 서자가 있어 웅(雄)이라 하였다..... <중략>.... 이르길 '삼위태백(三危太白)으로 내려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겠습니다.'라 하므로, 웅이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 귀(鬼) 3천을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왔다. 이를 단웅 천왕(檀雄天王)라고 부른다."
우리는 단군이 나라를 세운 것이 BC 2333년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이 연대기는 정확한 것일 수 없다. 다만 상징적인 숫자일 뿐이다. 이 숫자를 유추하게 하는 기록이 바로 삼국유사 <기이 편>인데, 이렇게 전한다.
"『위서(魏書)』에는 이러한 말이 있다.
'지금부터 2천여 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서, 아사달에 도읍을 세우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 하였으니,
바로 중국 요(堯) 임금과 같은 시기였다.'
'요 임금과 같은 시기'라는 이 구절이 바로 BC 2333의 유래가 되는 것으로, 이 연대기는 우리 역사가 중국과 비교하여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유서 깊을 뿐 아니라 중국과 독자적인 국가를 세운 자주국이란 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는 숫자임을 이해하면 될 일이지 숫자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고구려 건국 영웅인 주몽을 살펴보자.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라는 미상의 인물도 하늘신 족보를 갖는 존재이고 하늘로부터 지상으로 내려와 나라를 세우고는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와 혼인하였으나, 유화의 아버지인 하백 때문에 이 둘의 결혼은 성사되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내쫓긴 유화를 우발수 근처에서 부여의 금와왕이 발견하여 궁으로 데리고 오는데, 얼마 안가 유화가 알을 낳는다. 불길하다 하여 버린 알을 뭇 짐승들이 보호하는 것을 기이히 여겨 다시 알을 유화에게 갖다 주니 훗날 알에서 나온 이가 바로 주몽이다. 이렇듯 주몽 역시 하늘신의 자손이다. 특히 그가 알에서 태어난다는 난생 설화는 우리나라의 여러 건국신화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데, 이는 영웅의 탄생이 남다르다는 것을 표현할 뿐 아니라 이른바 '천손 사상'을 상징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특별한 출생의 비밀을 갖는 주몽은 그 능력과 지혜가 남다른 것은 두말할 것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영웅성이 금와왕의 아들들에게 시샘과 박해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몽은 부여가 자신이 뜻을 도모할 곳이 아님을 알고 부여를 떠나 압록강으로 내려와서 졸본 지역의 토착세력과 힘을 합쳐 국가를 세우고 발전해간다. 그런데 조금 있다 부여에 두고 온 부인이 낳은 유리가 부러진 칼을 갖고 아버지를 찾아 고구려로 오자, 어머니 소서노와 함께 고구려를 떠나 한강 유역으로 내려와서 백제를 건국한 이가 바로 온조이다. 특히 온조는 형 비류가 있었던 만큼, 주몽의 입장에서 보자면 서자 중에서도 둘째였으니 만큼 기득권 세력이 아니다.
이렇게 우리 역사의 건국 시조들은 대부분 천손 사상을 가진 집단으로서 주로 북방으로부터 이주해온 세력으로 토착민과의 결합을 통해 나라를 세웠음을 신화의 이야기 구조로써 알게 된다. 이것이 어느 지역의 국가이든 국가가 성립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의 일반적 원칙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실제 강의 현장에서는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정말 우리가 곰의 후손인가요?' 이는 신화의 상징성을 잘 모르는 질문이겠다.
예를 들어 환웅이 부하들과 함께 내려와 터를 잡았을 때 호랑이와 곰이 와서 사람 되기를 원했고 시험에 통과한 곰이 웅녀가 되어 환웅과 결합하여 단군을 낳고, 그 단군이 아사달(평양이라고 하나 이는 북한의 선전일 뿐이고 만주 어느 지역일 확률이 높다. 실제로 ‘햇볕이 잘 드는 평평한 땅’이라는 뜻의 평양은 그 당시 여기저기에 많이 존재했었다)에 도읍을 정한 것이 우리가 아는 고조선 이야기이다. 여기서 곰과 호랑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다들 알겠지만 생물체로서의 곰과 호랑이가 아니다. 신화 속의 곰과 호랑이는 토템 신앙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토템이란 특정 집단이나 인물에게 종교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던 야생 동물이나 식물 등의 상징을 사용하는 정신적 현상, 즉 신앙이다.
즉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는 곰 토템 부족과 호랑이 토템 부족을 말하는 것이고, 북방으로부터 내려온 이방인인 환웅 부족이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곰 부족과 연합하고 호랑이 부족은 배제되는 것을 상징한다. 실제 단군신화는 역사과정 속에서 다양한 변질을 겪는데, 지역적으로 대체로 평원지대에서는 곰 부족이, 북한의 묘향산 일대 산악지대에서는 호랑이 부족이 환웅 족과 연합하는 것으로 이야기 구조가 변형되는 것은 참 흥미롭다.
어쨌든 곰이냐 호랑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정치세력이 나라를 세우거나 권력을 장악할 때는 혼자만의 힘으로 하기보다는 이주민 집단과 토착 집단의 결합으로 가능하다는 역사의 일반적인 현상을 이해하는 것일 테다. 역사 초기일수록 이주민 집단은 보다 발전된 문명을 가진 집단일 확률이 높다. 단군신화에서도 환웅 부족은 청동기 문명을 갖고 제법 권력구조를 갖추었던 선진 집단이었고, 그에 비해 토템 신앙을 갖고 있던 곰과 호랑이 부족은 여전히 신석기시대 끝자락을 지나고 있던 집단이었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논리적이라고 하겠다.
앞서 말한 고구려 초기 역사에서 주몽 집단과 압록강 근처의 소서노 집단과의 연합이나, 북방에서 내려가 한강유역에서 자리를 잡았던 백제의 형성과정 역시 보다 선진적인 이주민과 보다 후진적인 토착민 사이의 연합의 과정이 숨어있음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국가 형성이 아니어도 우리 삶의 곳곳에서 발견될 수 있다. 특히 경제분야에서 이른바 'M&A'는 잘은 모르나 그 옛날 한 국가의 성립과정에서 보였던 선진 집단과 후진 집단 사이의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연합과 정복의 과정과 같은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하기 싫다. 다만 다양한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원칙이랄까 공통점을 찾아보게 하는 생각의 습관을 훈련하게 하는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