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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 잇프제이 Jul 20. 2023

[교사 방학일지]방학때 월급받으면서 진짜 놀아?!

교사들은 방학때 월급받으면서 진짜 놀아?!

'교사들은 방학이 있어서 좋겠다'

수많은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자 때론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교사의 방학.

과연, 요즘 같은 시대에 박봉과 각종 수난을 감수하면서도 교사직을 유지할 만큼 매력적인 옵션일까.

교사인 나도 궁금해서 기록해보는 방학일지다.



엊그제 방학식을 했다.

방학식 전날까지도 아니 심지어 방학식 당일 마저도 오늘이 방학식인지 인식하지 못할 만큼 바빴다.

일단, 가장 중요한 업무처리는 성적이다.

수업 및 모든 교육활동의 결정체가 바로 생기부(학교생활기록부)이고, 생기부의 가장 핵심 영역이자 수정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가장 민감한 영역이 바로 성적이다.

지필평가가 끝나면 그간의 수행평가 점수와 지필평가 점수를 종합하여 학기말 성적이 생성되고, 급간에 맞는 점수가 부여됐는지, 병결이나 미인정결 같은 출결 특이사항이 제대로 반영됐는지, 본인 점수가 맞게 나왔는지 여러 사람의 수고와 확인 과정을 거쳐 성적이 마무리 된다. 

그렇게 턱밑까지 차오를때쯤 간신히 성적 마감이 되고 방학식날 따끈따끈한 성적표가 학생들 손에 쥐어진다.

안그래도 정신없는 과정인데 요즘 4세대 나이스로 전환되면서 각종 오류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성적 마감을 하지 못해 방학식을 미루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학교들도 있다.

우리 학교의 경우 새발의 피 정도의 오류만 발견되어 무사히 방학식을 맞이할 수 있었고, 학생들을 돌려 보낸 후에도 교사들은 남은 업무를 하느라 여전히 학교에 남아 있었다.



어떤 교사는 교육청에 보고할 내년도 계획서를 쓰느라, 또 어떤 교사는 생활기록부 중간 점검 및 입력을 하느라, 또 어떤 교사는 여전히 한 학기를 마무리 하지 못하고 있는 학생과 학부모를 상대하느라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와중에 교직원 연수를 한다는 방송이 교내에 울려 퍼지고 다들 키보드를 두드리다 말고 서둘러 회의실로 걸을음 바삐 옮긴다. 한 학기 동안 재적 및 성적에 대한 사정회가 진행되고 학년부장들의 사정안 발표가 끝나면 한 학기가 정말 마무리된다.

그러고는 퇴근 시간에 맞춰 간신히 노트북을 챙겨 들고는 퇴근을 한다. 방학 시작인 것이다.



교사들은 대부분 학기 중에 휴가를 쓸 수 없다. 아니 어렵다.

담임 교사인 경우 학급 조회와 종례를 매일 해야 하고, 고교학점제를 시행하고 있는 요즘은 블록수업 및 동시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수업 교환이 더욱 어려워진 탓이다. 물론 예전에도 교사들이 평일에 휴가를 쓰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학급 조종례 및 수업 교환 등의 민폐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방학을 이용해 미뤄뒀던 여행도 가고 계획했던 일들을 하기도 한다.

물론 방학 중 41조 연수에 따라 재택 및 인근 장소에서 교재 연구 및 근무를 하는 것이 사실이고,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여행을 간다거나 해외여행을 갈때는 연가나 국외자율 연수를 쓰고 간다.

여기서 많은 오해와 비난이 시작된다. 

교사들은 방학때 월급을 받고 놀면서 여행다닌다. 

아니다.

재택근무를 하고 법적으로 주어진 연가를 이용해 여행을 다닌다.

요즘 많은 회사들이 재택근무 및 유연근무제를 시행하는데, 학교라는 직장은 방학 중에 시행할 뿐이다.


그럼 여기서 '과연 교사들은 집에서 정말 재택근무를 할까?' 물어보고 싶을 것이다.

상당히 조심스러운 대답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많은 일반 직장인들이 재택근무 및 원격업무를 할 때와 상황은 같다는 것이다.

41조 연수로 자가근무를 하면서 누가 9시 땡하면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켜서 업무를 시작하고, 5시 땡하면 노트북을 닫는단 말인가. 일반 직장인들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걸 안다.

물론 오히려 근무시간을 오버해서 업무 처리를 하고 있는 교사들도 존재한다. 

방학 때도 학교에 매일 같이 나가 업무를 하는 부장 교사들이나 관리자들 말이다. 또 각종 방학 중 연수로 연수원에 나가 저녁까지 연수를 받고 있는 교사들도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 현재 연수를 받지도 않고 부장교사도 아니기에 재택 근무를 하고 있다.

그럼 많은 이들의 오해대로 정말 내가 방학때 맘편히 놀 수 있는지 기록해 보자.



방학 첫 날

첫 날이라 신나서 늦잠을 잘거라 기대했건만, 이놈의 출근습관 때문에 더 일찍 눈이 떠졌다.

하지만 바삐 씻지 않아도 되기에 아이들을 챙기고 커피를 내린 후 여유롭게 원격업무시스템에 접속해 공문을 살펴본다. 음 긴급 공문 이런건 없군. 흡족해 하며 밀린 집안일을 하고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역시나 부장님께 연락이 온다. 교육청에 보낼 내년도 교육과정 편제표를 수정해야한다는 연락이다.

아 20년차가 되어도 교육청 공문은 정말 해석이 어렵다. 아님 내 머리가 나쁜 것일 수도 있다.

몇 번의 수정과 피드백을 주고 받고 나서야 담당 업무처리가 끝났다. 하지만 곧 내가 수업한 학생들의 과목별 세부특기사항을 입력해야 한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방학 중 생기부 입력이 완료 되어야 하고, 내가 입력해야 할 총 학생수는 150명 가량 된다. 

요즘은 생기부의 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을 한 명도 빠짐 없이 모두 기록해야 하는데, 당연히 입력 내용은 학생마다 달라야 한다. 여유 있는 방학을 맞이하고 싶어 방학 전에 열심히 달렸건만 입력한 학생 수는 고작 60명 정도이다.

수업 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은 학생 조차 공란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 학생들을 위한 우회적 표현의 문장을 전부 개별화 시켜야하고 제작 시간은 상당 시간 소요된다.


방학 두 번째 날

아직 방학을 하지 않은 아이를 챙겨 부랴부랴 등교를 시키고 마찬가지로 커피 한 잔을 내려 자연스럽게 노트북을 켠다. 기절할 만큼 좋은건 당연히 있다. 

세수하지 않고 옷갈아 입지 않고 편한 잠옷 차림으로 업무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배고플때 밥먹고, 쉬고 싶을 때 쉬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방학이 매력적인건 맞지만 내가 해야하는 일의 종류나 양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재택 근무가 맞다. 

생기부를 쓰다가 머리가 안돌아가서 잠시 브런치에 들어와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참...

일할 때나 쉴 때나 글을 쓰고 있는거 보니 팔자다.


이제 세 번째 커피를 내려 88번째 학생의 세부능력특기사항을 입력하려 한다. 150명의 생기부 입력이 끝나면 이제 눈알빠지는 점검과 수정 타임이 두 팔 벌려 기다리고 있다.

제발 이 방학이 다 끝나기 전에 마무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요즘 여기저기서 안타깝고 씁쓸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데 대한민국 교사들 파이팅이다!! 파이팅 해야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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