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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 잇프제이 Jul 20. 2023

[교사 육아일지]교사는 과연 자식 교육도 잘 시킬까?

교사는 과연 자식 교육도 잘 시킬까?

교사는 공부 뿐만 아니라 인성, 진로 진학 등 다방면에서 학생들을 교육하고 지도한다.

고3 경력이 제법 많은 나는 학년 초에 담임을 맡으면, 아이들의 전반적인 기본 사항을 파악하고 학년 초부터 학년 말까지 학교 생활 및 진로진학에 대한 전반적인 상담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간다.

특히 고3 담임이 되면 진로진학 지도에 꽤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간간이 벌어지는 학생 사안에 대해서도 쉴새 없이 지도하고 교육한다.

그뿐이랴. 교사의 본질은 수업. 전문 교과에 대한 연구를 기본으로 수능 기출 문제 풀이부터 출제 동향까지 파악해야 하는 전문성을 요한다.

남의 자식을 가르치는데도 이렇게 열의를 쏟는데 하물며 자기 자식은 오죽하겠냐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럴때면 할말이 없어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아니 학교에서도 아이의 전화를 받는 순간 100% 엄마로 돌변하는데, 교사로서의 전문성과 마인드는 하얗게 잊혀진 채로 말이다.


느린 성향의 첫째는 어린이집에 입소했을 때부터 교사들에게 쉬운 아이가 아니었고,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를 받곤 했다.

괜시리 선생님들께 미움받지 말라고 집에서 열심히 잔소리를 하고 훈육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이가 어린 탓도 있지만, 어느 정도 커서도 논리적이고 교양있는 말투는 좀처럼 나오기 힘들었다.

어느날은 집에서 학생 상담 전화를 마친 나에게 우리딸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우리한테도 학생들한테 하는 것처럼 친절하게 말해주면 안돼?"


가끔 교무실에서 감정 상하지 않고 교양있는 톤으로 조근조근 학생을 지도하시는 선생님을 보면, 정말 궁금해진다. 저 선생님은 집에서도 저렇게 말씀하실까? 

나중에 조용히 여쭤보니, 당연히 아니라고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셔서 내심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아이가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부터는 주변 또래 엄마들의 질문이 점점 많아진다.

내신 관리는 어떻게 해요? 공부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우리애는 잘하는게 없는데 뭘 시켜야 하죠?

하하하. 대답 대신 어색한 웃음만 짓는다.

나도 우리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물론, 상세한 장면이나 과정은 설명해 줄 수 있다. 

예를들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교실에서의 실제 수업 태도는 어떤지, 어떻게 수업 내용을 필기하는지, 교사들은 수업한 내용을 어떻게 시험 문항으로 제작하는지, 1등급은 어떻게 산출되는지. 

하지만 그건 정말 알고리즘 같은거다.

가령, 수업시간에 100%, 200% 집중하세요. 선생님이 설명하는 모든 사례와 내용을 빠짐없이 기록하세요. 모르는건 체크해서 질문하세요. 시험 3주전 부터는 모든 학습자료를 외우고, 기출 문제를 최대한 많이 풀어 유형 문제에 적응하세요. 

이건 그렇게 할 수 있는 역량과 성향을 갖춘 아이에게만 해당하는 프로그램이자 절차이다.

각기각색의 성향과 능력치를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딱 들어맞는 개별화된 방법이나 절차는 당연히 모른다.

애초에 갈 길이 다른 아이들인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성향과 역량을 가진 아이들이 아니었고, 나역시 우리 아이들에게 딱 들어맞는 공부 방식과 진로에 대해 명쾌하게 아는 바가 없다.


초반에는 생애 첫 시험을 앞 둔 첫째를 붙잡고, 내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시험 내용을 때려 넣은 적이 있다.

결과는 처참했고, 많이 아이들이 나의 수업을 온전히 소화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충격을 받았다.

마치 자물쇠로 문여는 방법은 아는데, 자물쇠에 딱 맞는 열쇠를 찾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심정이랄까?


아무튼 교사도 엄마다. 

암만 방법을 알면 뭐하나. 내자식한테 안먹히고 안맞는 방법이면 말짱 도루묵이다.

또래 친구 엄마들에게 목이 터저라 고교학점제에 대해 설명해 주고, 수행평가 점수 잘 받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면 뭐하나.

"어머~ 엄마가 선생님이라 좋겠어요. 엄청 잘 챙겨주시겠어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바로 내 입을 쳐 닫고 싶어진다. 중이 제 머리 못깎는다는 옛 속담이 이럴때 요긴하게 쓰인다.


네, 그냥 저는 남의 자식 잘키워 볼게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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