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부캐니 투잡이니 한 직장이나 한가지 직업만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생활 방식을 지향한다.
하지만 공무원들 특히 교사들 같은 경우 영리업무 금지 등으로 투잡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물론 교육활동에만 전념하고 교육공무원으로서 청렴과 정직을 고수하라는 의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 삶은 공무원 월급으로 만족하며 평생 한 눈 팔지 말고 교육에만 전념하며 살아가는 방법만 허락되는 것일까.
말만 들어도 답답하다. 25살에 교직에 들어섰으니 벌써 20년이 지났고 앞으로도 20년 가까이 남은 상황에서 한 길만 묵묵하게 걸어가야 하다니.. 지금 같은 세상에 말이다.
교직에 뜻이 없다거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영 마음에 안찬다는 것이 아니라, 교사라고 왜 다른 꿈을 꾸지 못하냐는 것이다.
[문어 선생]이라는 나의 브런치북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한 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으로 오죽하면 아이 둘을 데리고 2년간 해외 초빙생활까지 하고 왔을까.
아무튼 나의 이 잠재울 수 없는 오두방정과 내재된 끼 덕분에 주변에서 교사같지 않다는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말을 자주 듣곤 한다.
다행이도 학급 담임을 맡으면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은 나의 이런 면을 '쿨하고 재밌다'며 좋아해 주곤 한다.
하지만 가끔 보수적인 관리자나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꽤 독특하고 별난 교사로 보여지는 것 같다.(아직 직접적으로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눈치가 대충 그렇다.)
어쨌든 나도 교사의 '투잡 금지' 원칙을 거스를 마음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는 생각에 그간 워라밸이나 추구하자라는 생각으로 주기적으로 즐기는 여행 정도에 만족하며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동안 추구해온 워라밸 생활이 나만 기억하기에는 너무 아까워 사진과 함께 꼼꼼하게 기록해 왔고, 나의 기록장이었던 블로그 조회수가 베트남 초빙생활 기록 이후 하루 4천 명을 돌파하는 놀라운 반응이 이어졌다.
아무 생각 없이 그림일기처럼 꾸며오던 나의 블로그는 아이들과의 여행을 꿈꾸는 엄마들에게 꽤 진지한 가이드북이 되어버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과 댓글로 소통을 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이 너무 재밌고 즐거워서 열심히 댓글에 답글을 달고, 또 미처 기록하지 못했던 여행이나 일상을 포스팅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뭔가 불편함이 느껴졌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바로 '교사의 영리업무금지 규정'이었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블로그에 글을 쓰고 댓글을 다는 것 자체가 영리업무는 아니었기에 괜찮지 싶었다. 더군다나 포스팅은 퇴근 후에 집안일이 끝나면 늦은 밤에 주로 집중했고, 틈틈이 짬을 내어 반응과 댓글을 살펴 보는 행위는 짧은 순간에 이루어졌기에 '교사'로서의 본캐와는 별개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나의 블로그가 네이버 내에서 계속 상위노출이 되면서 광고수익 발생까지 가능해지자 더이상 방관할 수가 없었다. 단 1원이라도 수익이 발생하면 학교장에게 보고 및 겸직 허가 신청을 해야한다는 공문을 본 기억이 났다.(물론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블로거나 유튜버 교사는 겸직 신청을 하지 않아도 된다.)
네이버 애드포스트 신청 및 승인 완료와 동시에 때마침 '겸직허가 신청' 관련 공문이 왔길래, 얼른 작성해서 교감선생님께 허락을 받으러 갔다.
교감선생님께서 블로그 운영 목적과 수익 정도를 물어보셨다. 당시 애드포스트 광고를 이제막 달기 시작한 터라 하루 2~3천 원이라고 블로그 수익 액수를 말씀드리면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작아졌고, 민망함은 교감선생님의 몫이도 했다.
유튜브나 블로그 광고 수익의 경우 겸직허가 승인을 받으면 당당하게 운영해도 되는 부분이라 학교에서도 별 고민 없이 흔쾌히 승인을 해주셨다.
교사의 경우 컨텐츠가 참 많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수업, 방학 중 장기간 여행, 직업세계, 학생들과의 에피소드, 교육 쟁점 등 너무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었고, 나는 거기에 재외교육기관 초빙이라는 특별한 이력까지 추가했으니 말해 뭐하랴.
아무튼 그 덕분에 블로거와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며, 교사라는 본캐 말고 다양한 부캐로 삶을 더 피곤하고 풍성하게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여행블로거에서 패션블로거로 활동하며 다양한 패션 아이템들을 리뷰하고 소개하는 글들을 올리고 있는데, 블로그 내에서는 아무도 나를 교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교사'로서의 나도 있지만, '블로거'로서의 나도 존재하며 둘 다 현실에서 염연히 존재하는 '나'인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미료 역할을 할 순 있지만, 서로의 영역을 방해하거나 침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당연히 교사로서의 '품위유지'(나는 이말이 영 불편하다)의무를 침해하는 블로그 활동은 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패션 아이템에 관심이 많은 남편과 나는 일상에서 우리가 소비하고 즐기는 다양한 아이템 정보를 공유하며 패션 인플루언서로서의 꿈을 꾸고 있고, 이는 퇴직 후 우리의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데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얼마 전 선배 교사의 정년 퇴임식 자리에서 '아직도 너무 젊고 생생한데 정년 퇴직이라는 이 상황이 그저 얼떨떨하고,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지 모르겠다.'는 막막한 소감을 전해 들은 적이 있다.
요즘 60대는 노년기라고 할 수 없는, 새로운 캐릭터로 또다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시기 적절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아무 준비와 생각 없이 인생 2막을 맞이하기 보다는, '내가 좋아하고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새로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부지런히 시작해 보자고 주변에 권하고 싶다.
(물론 주변에 나보다 훨씬 다양한 캐릭터로 알차게 살아가시는 교사들도 많다. 그리고 은퇴후 편안하게 여유를 즐기시며 노후를 보내시는 선배 교사들도 당연히 부럽고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