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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 잇프제이 Jul 25. 2023

[교사 출제일지]킬러 문항이 뭐예요?!

킬러 문항이 뭐예요?!

20년간 교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부담스러운 업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 시험문제 출제일 것이다.

중학교 역시 평준화, 비평준화 지역을 막론하고 시험 문제에 민감하다. 

시험 성적에 유독 예민한 우리나라 교육 분위기 탓이다.

그러니 고등학교는 오죽할까. 

9등급제로 성적이 산출되는 고등학교에서 단 4%만이 1등급을 받을 수 있고, 1등급을 받기 위한 최상위권 학생들의 박터지는 전쟁이 시작된다.

in서울을 위해 1, 2등급을 차지하기 위한 피말리는 경쟁은 학생들끼리도 이루어지지만, 교사와 학생간의 눈치싸움도 만만치 않다.

왜냐하면, 시험 문제가 평이해 만점자나 고득점자가 속출한다면 자동으로 1등급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재적의 4%가 넘는 학생들이 만점을 받는다면 죄다 2등급으로 밀려나고, 분별력이 없는 최악의 경우 2등급도 사라지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진다. 그렇게 되면 1등급을 배출해 내지 못한 책임은 교사에게 돌아간다.

물론 교사가 그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지는 건 아니지만, 주변의 신랄한 비난과 따가운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교사들은 기를 쓰고 난이도 조절에 신중을 기한다. 그렇게 고난위도 문제가 만들어지고, 언제부터인지 이를 두고 '킬러 문항'라 부르고 있다.



최근에 킬러 문항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킬러문항은 공교육 과정에서는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사교육에서 문제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문항을 의미한다'고 교육부에서 발표했다. 

그런데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을 출제한다는 건 상당히 잘못된 일이며,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실제로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이 수능이나 내신 문제로 출제된 적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럼 교육부에서 말하는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이란, 말그대로 '내용'이 아니라 '유형'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교육에서 모든 유형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것인가. 당연히 할 수 없다. 그렇게 따지면,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공유하지 않은 모든 유형의 문제는 전부 킬러 문항이 되어 버린다. 킬러 문항에 대한 정의 자체를 잘못한 것이다.(고로, 지금부터 말하는 킬러 문항은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기반으로 한 '고난위도 유형 문항'을 의미한다)

그리고 주장대로 수능에서 킬러 문항이 없어진다면 근본적인 입시 문제와 사교육 문제가 정말 해결될 것인가.

같은 논리로 학교 내신 시험에서 킬러 문항이 출제되지 않으면 피말리는 등급 경쟁이나 부모 등골 빼먹는 학원비 부담이 해소될 것인가. 

마치, 가장 빨리 달리는 선수를 뽑는다면서 가장 오래 달리는 선수의 기록을 측정하는 꼴. 즉 목적과 수단의 불일치다. 서열화를 기반으로 하는 입시 제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변별을 하지 말라니. 어쩌라는 말인가. 

그렇다고 '9등급제 평가 방식'과 '1등급 산출을 위한 킬러 문항' 자체의 정당성을 찬성한다는 말이 아니다.

근본 해결책은 입시제도와 환경의 변화이지 킬러 문항의 부재가 아니다. 

현 입시 제도 하에서 1등급이 산출되지 않았을 때 학생이 고스란히 돌려 받을 불이익과 교사가 떠안아야 할 부담감은 그대로인 채, 킬러 문항의 존재와 출제자를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아무튼 교사들은 이런 고충 속에서 단 4% 만이 맞출 수 있는 문항 제작을 고민하고, 특정 문제집과 특정 학원의 쪽집게 예상문제 즉, 특정 학생들만 유리할 수 있는 문항 제작도 피해야 한다. 그뿐이랴 3년 간 기출문제까지 파악해서 비슷한 문제가 출제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그래서 잠깐 번외지만, 학교 내신 공부를 위해 족보닷컴 같은 학교 기출 문제를 풀어보는 것이 결코 유리하다고 할 수 없다. 

그렇게 교사들은 뼈를 갈아 넣는 심정으로 일 년에 네 번, 그것도 지필평가만 네 번이지 수행평가까지 합치면 일 년에 10회 정도의 평가 도구를 제작한다.

수업시간에 가르친 내용을 기반으로 소수의 학생들만 맞출 수 있는 문제 유형을 만들려다 보니, 가끔은 자기 함정에 자기가 빠져 문제의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럼 또 쏟아지는 비난과 무거운 책임으로 교사는 쪼그라들 수 밖에 없다. 나역시 여러번 아찔한 경험을 했다. 오죽하면 시험 문제 출제만 안해도 살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돌고 돌아 입 아프게 말해봤자 결론은 단순하고 명백하다.

입시 제도 개혁 없이 평가 방식과 도구에 대한 왈가왈부는 의미없다. 

그런데 입시 제도 개혁은 사회 구조의 변화를 필연으로 한다. 즉, 킬러 문항이 없어져야 하냐 마냐의 지엽적인 논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입시 교육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만약 그것이 필수불가결 하다면 건강하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모두가 교육에 열을 올릴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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