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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걸린 시간

by 김승월
들어서 아는 것과 겪어서 아는 것은 다릅니다.
세월이 진짜 앎의 의미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들어서 아는 것, 겪어서 아는 것


안다고 말하긴 쉬워도, 제대로 안다고 말하긴 어렵다. 사람마다 '안다'는 말의 무게도 다르다. 배워서 알기도 하고, 겪어서 배우기도 한다. 게다가 해석도 제각각이니, 아는 정도가 다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낙상사고로 병상일기를 쓰게 됐다는 얘길 들은 어느 분이 말했다.

“뻔하겠네. 아픔, 고독, 극복, 신앙심, 그쪽 얘기 다 그렇고 그렇지.”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흔히들 짐작하는 대로 쓰니까. 하지만 낙상사고를 겪고 나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겪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겪어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긴 여정


사랑에 대해선 누구나 잘 안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은 고백했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습니다.”
그 한마디에 고개가 숙여졌다. 말끝마다 사랑을 운운하는 우리가 정작 그 말의 무게를 제대로 알고 있긴 한 걸까.

김수환 추기경_중앙일보 김정석기자


라디오 PD 하던 젊은 날, 한 선배가 내게 그랬다.
“방송은 커뮤니케이션이야. 청취자 입장에서 만들어야 해.”
그 말이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들렸다. 내가 청취자를 모른단 말인가?


세월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고 나니 ‘청취자 입장에서 만든다’는 말의 깊이가 달라졌다. 처음엔 ‘내가 청취자를 위해 만든다’고 착각했었다. 돌아보니, 나 자신을 드러내는 방송을 만들고 있었다. 몇 해가 지나가고서야, 그 말이 점점 가슴으로 내려왔다.


제대로 아는지 모르겠네


그때쯤이다. 베를린에서 열린 라디오다큐멘터리 제작자 회의인 '국제피처회의'(International Feature Conference)에 참가하게 되었다. 거기서 만난 전설적인 독일 제작자, 피터 레온하르트 브라운(Peter Leonhard Braun). 그가 내게 힘주어 한 말도 같았다. “방송은 커뮤니케이션입니다.”


그 순간, 내 생각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내가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아는지 모르겠네."


Peter Leonhard Braun


대학에서 라디오제작을 가르쳤을 때도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 하나는 여전히 "방송은 커뮤니케이션이다"였다. 그 말을 하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이 걸렸다. 그래서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을 덧붙였다.

“'사랑'이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70년 걸렸다고 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이란 말도 그렇습니다.”


앎은 살아낸 흔적


우리가 어려서 배운 ‘사랑’, ‘정의’, ‘소통’ 같은 말들이 나이 들면서 다르게 다가온다. 초등학생이 아는 사랑, 청년이 아는 사랑, 노인이 아는 사랑이 같을 수가 없다. 세월이 갈수록 아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겠다. 들어서 아는 것보다, 겪어서 아는 것이 오래간다. 세월이 흘러서야 나는 알았다. 앎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긴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앎은 겪어야만 비로소 보인다는 걸.


아파보니 알겠고, 나이 드니 보인다.

앎은 살아낸 흔적이다.


배운 건 잊히지만, 겪은 건 남는다.

오늘도, 다시 배운다. 겪어야만 보이니까.


barry-wcuHcyluP4g-unsplash.jpg Barry on Unsplash


브런치북 《병상에 누우니 보이네- 지나가고 나니 보이는 것들》,

다음은 '혼자 빛나는 성취는 없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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