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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실수, 큰 잘못

확대경과 망원경 사이에서

by 김승월
작은 실수가 나를 흔들었다.
그 흔들림에, 내 마음을 다시 보았다.



사소한 말 한마디도 세심하게


" '열흘간'이 뭐야, '간'은 일본말 잔재야."

그 한마디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꼼꼼하기로 소문난 선배가 내가 쓴 방송 원고를 보며 한 말씀했다. 내가 만든 특집 프로그램을 모니터 하는 자리에서다. 이어서, 잘못 쓰인 단어 몇 개를 더 지적했다. 작은 실수를 예리하게 찾아내는 선배의 날카로움에 감탄하면서도 질렸다. 마음이 오그라 들었다.


'열흘간'이란 말이 일본말 잔재인지는 몰랐다. 그저 흔히 사용하니까, 거부감 없이 사용했다. 나중에 알아보니까, '간'(間)은 일본어 잔재의 예로 쓰이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한자어로 한국, 중국,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단어로, 조선시대 문헌에도 나온다. 단지 식민지 시절에 많이 쓰여서 꺼림칙한 인상을 갖고 있다. '간'은 문어체라서, 방송에는 구어체인 '동안'으로 쓰는 게 자연스럽긴 하다. 방송 언어가 시청취자들 귀를 감싸니, 조금 더 따뜻한 말, 우리말 다운 말을 골랐어야 했다. 그때 깨달았다. 말 한마디에도 마음의 결이 담긴다는 걸.


큰 그림을 보는 눈


새내기 PD시절에 원고를 봐주던 장명호 부장은 달랐다. 그분은 잘못 쓴 단어의 지적은 거의 하지 않았고, 원고의 전체 흐름을 봤다.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이 장면은 필요 없잖아?" 하면서 덩어리 째 빼라고 권했다. 사실 여부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이 표현은 지나친 거 같아. 실제로 그래?" 더러는 꾸미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나도 마음이 걸렸다. 진실보다는 미사여구를 취한 건 아닌지 나를 돌아봤다.


그분의 원고 검토법은 내 PD인생에 영향을 주었다. 글 쓸 때는 자잘한 표현보다는 전체의 큰 줄기를 먼저 살펴보았다. 부분도 그냥 부분이 아니라 전체의 부분으로 살폈다. PD로써 방송작가의 원고를 살필 때도 가이드가 되었다. 세밀한 지적은 애써 피하고, 큰 줄기의 문제점을 짚어보려고 했다. 작은 지적이 작가를 위축시켜 큰 것을 놓치게 할까 봐 염려해서다.


확대경과 망원경 사이


두 선배의 원고 검토 방식은 대조적이다. 한분이 확대경이라면, 다른 분은 망원경이다. 한분은 촘촘하고 꼼꼼하게 따졌고, 다른 분은 방향을 살피며 큰 흐름을 살폈다. 보는 만큼 못 보는 것이 생긴다. 확대경을 잡으면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고, 망원경을 들고는 숲만 보고 나무는 놓친다. 하는 일에 따라 도구가 달라지듯. 망원경이 필요한 때가 있고, 확대경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평가는 상대를 위함이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다. 남을 평가하기 전에, 망원경이 필요한지 확대경이 필요한지 먼저 살펴야 한다. 세밀하게 보려면 확대경을 들어야 하고, 전체를 파악하려면 망원경을 쥐어야 된다. 남이 자신에게 하는 평가를 들을 때는 평가하는 이가 망원경을 들고 있는지, 확대경을 쥐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그래야 평가의 큰 틀을 이해하고,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남을 통해 나를 본다


평가를 받다 보면, 발끈하거나 속이 부대끼기도 한다. 듣기 싫은 칭찬이 없듯이, 듣기 좋은 잔소리는 이 세상에 없다. 단지 필요한 잔소리가 있을 뿐이다. 저분은 스타일이 저러니까 저런 점을 배우고, 이분은 이러니까 이런 점을 배우면 그만이다.


남의 글을 본다는 건, 결국 내 안경으로 보는 일이다. 평가자의 말투와 시선, 손짓 하나하나에 그 사람의 삶이 배어 있다. 내가 보는 모습이 나의 스타일이다. 나의 스타일을 알면 내가 보인다. 남을 본다는 건, 남을 통해 나를 보는 일이기도 하다. 남에게서 내가 비쳐 보이고, 그 속에서 나도 나를 본다.


그대 눈동자는 거울,

그대 속에 담긴 나.

그대를 보니 내가 보이네


geon-tavares-INs_m0Ozi0w-unsplash.jpg Geon Tavares on Unsplash


<세월 가니 보이네>,

다음에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말은 마음이다'를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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