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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 있는 말

마음의 온도를 읽는 기술

by 김승월

상처가 된 인사말


“교수님, J에게 전화 좀 해 주세요… 울면서 갔어요.”

S 여자대학에서 야간 강좌를 마치고 버스에 탔을 때였다.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무슨 말을 잘못했단 말인가. 대표학생은 또박또박 말했다. J가 교수님 말씀 듣고 울면서 갔다며, 날더러 무슨 말했는지 물었다. 생각해 보니 강의실을 나가며, 수업 뒷정리를 하는 그 학생에게 "그럼 고생해라"라고 인사한 기억이 났다. 대표가 걱정스레 말했다.

"J가 교수님께서 다른 학생에게는 '수고하라'라고 하고, 날더러 '고생하라'라고 했다며 서러워 울었어요."


J 학생에게 급하게 전화했다. 수화기 너머로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버스 타고 집에 가는 중이란다.

"학생, 일단 제 말을 들어보세요, '고생하이소'라는 경상도 사투리 인사말이 있어요. 내가 지방 출장 다니면서, 경상도사람들에게서 많이 듣던 친근한 인사예요. 그래서 '고생하세요'라고 한 거예요."

그 말에도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학생에게 다음 수업 때 직접 만나서 자세히 이야기해 주겠다며 달랬다.


"고생하이소"는 경상도에서 쓰이는 인사말이다. 나도 처음에는 듣고 놀랐는데, 계속해서 듣다 보니 반어적 의미가 재미있어 자주 쓰게 됐다. 이 지방 사람들은 '욕보이소'라고도 인사한다. 어쨌든 상대를 잘못 골랐다. 감성이 풍부한 여학생에게는 써서 안 되는 인사말이었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챙기지 못한 나의 실수였다. 그날 이후, 나는 배웠다. 말의 뜻보다 중요한 건 그 말을 듣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걸.


마음에 닿는 한마디


어머니가 입원해 있을 때, 아내의 친구가 병문안 왔다. 친구는 아내로부터 전해 들어 어머니가 어떤 분인 줄 잘 알고 있었다. 그분이 어머니에게 인사했다.

"어머니 어서 나으셔서, 맛있는 반찬 좀 해주세요, 어머니가 해주시는 김치랑, 반찬 먹고 싶어요. 박 선생이 가져다주어서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일하기 좋아하고, 남 대접하기 좋아하는 어머니는 함박웃음 지으며 친구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다. 병석에 누운 어머니에게 일 좀 하시라는 그 인사말이 어머니에게 딱 맞는 인사였다. 그런 인사말을 고른 아내의 친구는 직장에서도 남의 말을 귀담아주는 분으로 소문난 분이란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정확히 해준단다.


남이 어떻게 사는지 알고,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알고 하는 말이 센스 있는 말이다. 센스 있는 말은 같은 말이라도, 듣는 대상과 분위기를 골라서 쓴다. 같은 말을 해도 상처가 되는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는 큰 잠못이 없다. 하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은 말에는 마음이 닫힌다.


상처 주는 말


"그렇게 밖에 못해?"

죽어라고 일한 날, 상사가 내게 던진 한마디였다. 칭찬을 기대했는데, 꾸지람이었다. 그 말이 칼끝처럼 가슴에 박혔다. 이 상황에서 이만큼이나 해냈는데 이런 말을 들어야 하니 기가 막혔다. 상사는 결과보다는 그저 부족한 점만 본듯했다. 나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갖고 있지나 않았는지 의심마저 들었다.


그의 말은 내 마음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도 누군가에게 그랬을지 모른다. 나도 남을 잘못 봐서, 내 말이 누군가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을 수도 있다. 말이 상대의 마음을 차갑지 않게 하려면 따뜻한 마음씀이 필요하다.


마음으로 하는 말


마음으로 하는 말은 기술이 아니다. 상대의 자리에 서서, 그 사람의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진심이 담긴 말은 오래 남는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마음이 마음을 사랑할 때, 세상의 한기가 걷힌다. 말이 지나간 자리에서, 조용히 온기가 피어난다.



언 말 녹는 자리마다

피어나는 따뜻한 사랑


Vitaly Gariev on Unsplash


<세월 가니 보이네>

다음 주에는 '밥'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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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