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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

혼자 먹는 밥은 끼니지만, 함께 먹는 밥은 관계다

by 김승월
밥을 먹는다는 건, 밥만 먹는 건 아니다.


젊은 날의 점심 자리


"미안해, 갑자기 보고 할 일이 생겼어."

점심때가 다 돼서 약속했던 점심이 펑크 났다. 옆자리에선 거의 다 식사하러 나간 뒤다. 혼자 구내식당으로 갈 생각 하니 끔찍했다. 외로워 보이는 게 부담스러웠다. 다른 회사 다니는 친구한테 연락도 했다. 그래도 약속이 안 잡혀서 회사에서 멀리 나가서 사우들이 안 보이는 데서 혼자 먹었다. 낯선 거리에서 익명의 섬으로 떠 있는 게 오히려 덜 외로웠다. 30년도 넘은 젊은 날의 기억이다.


그때는 출근하자마자 점심 약속부터 확인하는 분들 꽤 많이 봤다. 일주일, 이주일 앞두고 점심 약속을 촘촘히 짜고는 마음 편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분들은 점심 약속이 안 잡히면 안절부절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기가 그만큼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혼자 먹는 밥


그 당시에도 혼자 구내식당에 내려가 혼밥을 잘 먹는 사우도 있었다. 당당했다. 외로워 보이기보다 오히려 씩씩해 보였다. 독립심이 강한 사람처럼 여겼다.


요즘 나는 자주 혼자 밥 먹는다. 은퇴 후엔 낯선 식당에서 혼자 먹는 게 자연스러운 일과다. 누구 눈치 볼 것도, 밥값 계산으로 실랑이할 일도 없다. 편하다. 혼자 밥 먹는 게 너무 편해졌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조금은 쓸쓸해진다. 뭔가 빠진 느낌이다.


함께 먹을 때 밥이 된다


밥은 원래 함께 먹는 거 아닐까. 밥을 함께 먹다 보면 밥맛도 더 난다. 내가 꺼리는 음식도, 맛있게 먹는 사람과 먹으면 맛있게 먹게 된다.


이제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예전에 보신탕 집에 간 적이 더러 있었다. 마음이 불편해서 혼자서는 절대 못 먹었고, 함께 가야 그럭저럭 먹을 수 있었다. 맛있게 먹는 사람과 같이 가면 정신 못 차리고 먹기도 했다. 함께 먹어야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밥이란 함께 먹어야 하는 거 아닐까.


밥 위에 피는 정, 밥정


돌이켜보면 함께 밥을 많이 먹은 사람, 그들이 결국 내 사람으로 남았다. 지금 혼자 먹을 때, 마음 한편으로는 여전히 따뜻한 밥 한 숟갈 나누던 그 시절의 온기가 그리워진다. 밥은 단지 끼니가 아니라, 마음의 나눔이었다.


밤을 함께 먹으면 '밥정'이 드는 듯하다. 그래서 식구라는 말이 생겼나 보다. 부부 사이를 '한솥밥 먹는 사이'라고도 하나보다. 마음의 인사로 '진지 잡수셨습니까', '밥 먹었어'라고 하는가 보다.


밥은 마음의 불씨


혼자 밥 먹는 게 편해졌지만, 아쉬운 게 있다. '밥 한번 먹자'라는 인사는 식사를 같이 하자는 말이 아니다. 밥은 끼니가 아니다. 마음을 나누고 인연을 데우는 일이다.


밥은 마음의 불씨

함께 먹을 때

다시 살아나는 불


Adriel Prastyanto at Unsplash


세월 가니 보이네,

다음은 사람을 어떻게 봐야 할지를 생각해 봅니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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