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보여야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사람 사는 풍경은 어떤 모습이 아름다운 가요?
무엇이 보여야 자연스러울까요?
"승월씨, 스틱은 차에 두고 내려. 그냥 걸어도 괜찮아요."
어지럼증이 있어 동행자들에게 짐이 될까 봐 등산 스틱을 준비했다. 오늘 나들이를 주선하고 길안내를 맡은 김형이 조심스레 말렸다. 등산길은 평탄하고 안전하단다.
차문을 열자, 낙엽 냄새가 바람에 실려 들어왔다.
스틱을 김형 차에 두고 내리면서 마음 한구석으로는 찜찜했다.
40년 지기 넷이 모처럼 날짜를 맞춰 벼르고 별러 화담숲 나들이 나왔다.
화담숲 주차장에서 화담숲까지는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 지난 11월 12일. 셔틀정류장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평일 낮 1시였는데도, 2,30대 젊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유모차를 미는 엄마들도 여기저기 눈에 뜨였다. 내가 탄 셔틀버스에서 내 앞자리에 만, 두 대의 유모차가 있었다. 유모차가 다닐 만큼 편하고 안전한 곳으로 소문난나 보다.
“오늘 단풍이 절정 같네요.”
일행은 들떠서 입을 모았다. 먼발치서 본 화담숲은 붉은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화담숲 입구부터 깔린 나무 데크에는 관람객 발걸음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데크 길은 정상 전망대까지 완만하게 깔려있다. 모노레일이 있었지만 일부러 걸었다.
눈 돌리는 곳마다 단풍이 손을 흔들고, 걸음 옮기는 곳마다 계곡 물소리가 따라왔다. 자작나무 숲을 지나니, 분재처럼 기묘하게 굽어진 소나무들이 무리 져 있었다. 데크는 촘촘히 깔렸고, 데크 난간도 구역마다 문양이 달랐다. 들새 모형들도 여기저기 나뭇가지에 앉아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섬세하게 꾸며진 화담숲을 걷다 보니 마치 거대한 전자제품의 회로판 위를 걷는 기분이 든다. 화담숲은 이 숲을 만든 엘지의 정교한 전자제품과도 같은 숲이다.
이처럼 아름답고 안전한 숲이다 보니, 아기 엄마들이 마음 편히 유모차를 끌고 나섰나 보다.
어린아이, 노약자, 장애인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설립자의 따뜻한 마음에 고개 숙였다.
그래서 살폈다. 장애인이나 지팡이를 짚은 분들이 얼마나 찾아왔는지.
유모차를 본 순간부터 휠체어 수를 세어 보았다. 지팡이 짚은 사람도 일부러 찾았다. 웬만큼 불편한 분들은 지팡이가 필요 없는 길이지만, 지팡이 없이는 걸음 떼기가 힘든 분들도 있을 테니까.
등산길, 하산길을 산책하는 2시간 동안 살폈보니, 지팡이 짚은 분은 3명뿐.
언제쯤 휠체어를 볼 수 있을지 세세히 살폈는데도, 두 시간 산책에 단 한 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우리나라는 멀었어.”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그때, 출구 근처 넓은 데크에서 검정 모자를 쓴 중년 여성이 탄 휠체어가 보였다.
두 시간 넘은 산책 길에서, 그 긴 인파의 행렬에서 겨우 한 대.
그 한 대가 그렇게 낯설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낯설었다.
내가 다니는 성당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울 변두리 성당에 다닐 때는 전동 휠체어가 자주 눈에 뜨였다.
일 년 전, 좀 산다는 동네로 이사 왔다. 이곳 성당은 훨씬 컸다. 여기서도 미사 때마다 살폈는데, 전동 휠체어를 본 기억이 없다.
장애인이 없어서일까?
아니다. 이 동네에는 노인층이 많다. 당연히 고령 장애인도 많을 것이다.
휠체어, 전동 휠체어가 이 성당에서는 보이지 않을 뿐이다.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 수는 2024년 통계에 따르면 263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5%.
그중 절반 이상이 고령장애인이다.
전동 휠체어와 전동 스쿠터는 2020년 기준 14만 대가 넘는다. 휠체어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그 많은 분들이, 이 아름답고, 안전한 숲과, 이 성당에서 왜 보이지 않을까.
오래전에 탈북자로부터 들은 말이 떠오른다.
"평양에는 장애인이 없어요."
그 말 뒤에 숨은 현실은 잔인했다. 장애인은 평양에 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란다.
약자의 인권을 짓밟고 번지르르한 모습만 내세우는 독재권력이 쫓아낸 것이다.
화담숲에서, 성당에서, 그리고 일상의 여러 곳에서 같은 질문을 반복해 본다.
"그 많은 휠체어는 어디로 갔을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분들을 초대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아니 그분들을 애써 보지 않는 것일까.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그들이 스스로 물러선 건지, 우리가 모르는 사이 밀려난 건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 물러 서지 않도록 곁을 내주고, 밀려나지 않게 함께 어울릴 때,
사람 사는 풍경이 생긴다.
모든 사람이 함께 보이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장애인과 같이 어울리는 장면이 사람 사는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