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순간, 머리가 하얗게 지워졌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눈앞의 붉은 불빛만 깜빡거렸다. 디지털 테이프 플레이어가 돌아가고 있길래 이상하다고 여겼다.
"왜 돌아가지?" 하는 순간, 손이 저절로 멈춤 버튼을 눌렀다.
‘방송이 끊어졌어요!’
엔지니어가 지른 소리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생방송 증이었다. 광고가 나가다 끊어져 버렸다.
원주 MBC 창사 기념일이었다. 서울에서 원주로 내려와 창사 특집 라디오 생방송하고 있었다. 방송이 시작된 지 30분쯤 지났을 때였다.
중간광고가 나가는 시간이 되어서 큐를 주었다. 광고가 나가는데, 순간적으로 방송 중이라는 생각이 멎었다. 중계장비를 살펴보니, 광고가 나가고 있는 DAT 녹음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왜 돌아가지?"라는 생각이 들어 멈춰 세운 것이었다. 순간 광고 방송이 끊겼다. 그제사 아차 싶었다.
다행히 서울 주조에서 꼼꼼한 조명기 엔지니어가 광고를 스탠바이 하고 있다가 즉각 대응해서 넘어갔다. 아니면 그대로 방송광고 펑크날 뻔했다. 30년 방송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생방송 광고사고미수 사건'이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실수였다.
누군가 이 사고를 들어 나를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PD라고 몰았으면 그대로 낙인찍힐 뻔했다. 부분만 보면 그렇게 보이기 마련이다.
이 지점에서 하는 말이라 변명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누구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고를 엉뚱하게 저지른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본인도 믿기지 않는 실수를 한다. 그 실수로 대형사고도 친다.
그날의 작은 실수는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부분만 보고 판단해 왔을까.
광고 방송이 끊기던 그 순간처럼, 누군가의 삶을 내 손끝에서 잠시 멈춰 세운 적은 없었을까.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우리는 인물을 평가할 때 자주 극단으로 기운다. 잘한 점, 잘못한 점 함께 봐주면 좋을 텐데 필요한 부분만 보고 치우친 판단과 공격의 빌미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한때는 영웅이었던 이가 정권이 바뀌면 죄인이 되는 일도 많다.
공과 과를 함께 보는 균형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공산국가 중국조차 ‘공 7, 과 3’이라며 모택동의 업적과 과오를 평했는데, 우리는 아직도 누군가를 '0' 아니면 '10'으로만 재단하려 든다.
부분이 전체를 비추기도 한다. 말실수 하나만 봐도 그 사람의 성향을 엿볼 수는 있다. 그러나 부분은 전체가 아니다. 눈동자만 바라보면 얼굴을 놓치고, 얼굴만 보다 보면 마음을 놓친다.
사람은 복잡하고 오묘한 존재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한 구절로 정의할 수 없다. 행동 한 장면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다. 한 인간을 온전히 안다는 것은 세상을 완전히 아는 것만큼 어렵다.
우리는 다리로만 서 있는 게 아니다. 실수 위에, 흔들림 위에 서있다. 그 위에서 마음의 균형을 배운다.
그날 멈춘 건 광고였지만, 다시 돌아간 건 내 마음이었다. 짧은 순간의 멈춤이 내게 말하는 듯했다.
사람은 실수 위에 서 있는 존재
흔들려도 서야 하는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