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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는 것도 일하는 것이다

불탄 숲에도 새싹은 돋는다

by 김승월
쉼이란 그저 쉬는 걸까
쉼 속에서 무언가를 하는 걸까



사족 같은 일


“승월이는 일이 없으면, 일을 만들어서 해.”

나를 아껴주던 한 선배가 웃으며 한 말이다. 그 말이 내가 부지런하다는 말로 들려 칭찬인 줄 알았다. 그때는 쉬는 건 무능하다고 여겼다. 억지로라도 일을 만들어 일하려고 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때의 내가 안쓰럽다. 쉼이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삶을 고르는 시간이란 걸 이제야 안다.


상암동 월드컵 공원을 혼자 산책하다 하늘공원에 올랐다. 사람이 별로 없었다. 시원한 들길을 호젓하게 걸었다. 바람소리 사이로 새소리가 울렸다. 평온했다. 왜 그리 바쁘게 살았는지 돌이켜 보았다. 그때다. 공원 여기저기 설치한 스피커에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름다운 음악이 자연의 소리를 흔든다.


누군가가 열심히 일했나 보다. 비싼 돈 들여 스피커를 설치하고, 힘들여 음악을 골라 틀었다. 공원에 음악 들으러 오는 사람도 있을까. 바람소리, 새소리, 숲소리 들으러 오지 않을까. 음악이 그 소리를 가렸다. 자연 속에서 마음의 안식을 찾으러 온 사람들에게는 클래식 음악이 사족이다.


가만히 두는 것도 일이다


25년 전, 미국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을 다녀왔다. 이 공원은 미국최대 국립공원으로 충청남도보다 더 넓다. 그 당시 한 지역을 차로 여행했는데, 불에 탄 나무와 화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졌다. 광활한 산불피해지역을 그대로 내버려 두어 놀랐다. 아무리 땅이 넓어도 그대로 내버려 둔 게 한심스러워 보였다.


"산불도 자연현상입니다. 생태계를 보호하려고, 스스로 복원하도록 기다리는 겁니다." 안내원 설명에 다시 한번 놀랐다. 자연 생태계를 자연스럽게 복원하려면 인간의 손길이 닿아서는 안된다. 산불도 산불로 황폐해진 모습도 자연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그저 지켜봐야만 한다.


불탄 숲은 스스로 자라났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검은 가지 끝에서 초록빛이 흔들렸다. 한발 떨어져 가만히 두는 일, 그것이 바로 자연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다. 인간의 손길은 쉴 수 박에 없다.


쉬는 사람도 함께 한다


20여 년 전 화성 야마기시 농장에 다녀온 적이 있다. 회원들이 전재산을 기부하고 들어와서 함께 닭을 치고 농사지으며, 같이 먹고 자는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거기서 일 하는 분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공동 작업을 하다 보면, 일을 잘 안 하는 사람이 꼭 생긴단다. 그러면 일 안 하는 사람을 빼고 다른 사람으로 채워 넣는다. 시간이 가면, 일 안 하는 다른 사람이 다시 생겨난단다.


팔레트법칙이 떠오른다. 일하는 사람의 20%가 전체 일의 80%를 한다는 이론이다.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생기는 건 개인의 게으름이 아니라, 공동작업의 구조적인 현상일 수 있다. 세상의 톱니바퀴가 멈추지 않으려면, 일하는 사람과 쉬는 사람이 함께 돌아가야 한다. 누군가가 멈춰 서야, 다른 이가 돌 수 있다.


쉼은 일의 또 다른 이름


꼭 뭔가 일해야만 잘한 걸까. 아무 일 하지 않던 그 시간은 그냥 흘러만 간 걸까. 숨 가쁘게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나도 한동안 일이 사라진 적이 있었다. 갑자기 맡은 일이 줄어들거나, 몸이 아파 일을 멈춰야 했다. 그땐 허송세월 같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 시간이 충전의 시기였다. 쉼을 마치고 나면 더 의욕적으로 다음 일을 했고 좋은 성과도 냈다. 쉼은 게으름이 아니라 다른 일을 위한 일이다. 씨 뿌리려고, 땅 고르는 작업이다.


불탄 숲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허송세월 속에서 나는 자랐다.


쉼 속에서 일을 일구니.

그 속에서 나는 커갔다.


쉼은 일의 또 다른 이름이다.


Amy Tran on Unsplash


'세월 가니 보이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어떻게 남을 평가해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작은 실수, 큰 잘못'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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