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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이 진짜 등산이다

시작보다 중요한 마무리

by 김승월
정상에 오르는 것이 승리일까?
아니면 무사히 내려오는 것이 진짜 승리일까?


내려오는 길의 무개


방송사에서의 윤리의식이 지금보다 한결 느슨하던 시절이 있었다. 증권 전문가가 스튜디오에 출연하는 날이면, 주식에 관심 있는 몇몇 사우가 슬쩍 녹음실 주변을 기웃거렸다. 방송이 끝난 뒤, 출연자가 “이 종목 한번 주목해 보세요” 하고 귀띔이라도 해주면, 대개는 웃으며 흘려듣지만, 몇몇은 바로 주문을 넣었다.


처음엔 호재 덕에 주가가 올라 좋아하다가, 며칠 지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후속 지침은커녕, 출연자와 다시 만날 일도 없어 어찌할 줄 모른다. 그러다 팔 시기를 놓치고, 결국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시작하면 반드시 끝내야 할 때가 온다. 시작만 알고 멈추는 법을 모르면 뒤탈이 니기 마련이다. 방송에서든, 산에서든, 문제는 늘 마무리에 있다.


끝에서 드러나는 진실


유도나 합기도를 배우려면 먼저 낙법부터 익히듯, 시작과 함께 마무리도 준비해야 한다. 산악인도 마찬가지다. 험준한 봉우리를 오를 때는 등반 준비의 절반이 하산 준비란다. 하산할 때 쓰는 로프나 장비는 물론 하산 때까지 먹고 마실 물과 식량도 준비하고, 체력도 절반은 하산을 위해 비축해 두어야 한단다. 조난 사고에 대비해 통신장비를 갖추고 하산 시간의 마지노 선을 정하고 난 뒤에야 정상으로 향한다.


하산을 소홀히 하면 비극이 기다린다. 영국 산악인 데이비드 샤프(1972~2006)는 ‘죽음의 구역’(해발 8km 이상)까지 두 번 오른 적이 있을 만큼 강한 적응력을 지닌 사람이다. 하지만, 에베레스트를 단독 등반하던 그는, 늦은 시간에 적은 산소와 장비로 출발해, 하산 도중 해발 8,400m에서 쓰러졌다. 산소부족과 저체온증으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에드먼드 비에스터스는 8,000m 이상 봉우리 14좌를 모두 등정한 최초의 미국인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상에 도달하는 건 선택이지만, 하산은 반드시 해야 한다.”

정상을 찍는 것보다 무사히 내려오는 것을 더 강조한 말이다. 비슷한 등반 격언도 있다.
“정상을 정복한 자가 아니라, 하산에 성공한 자가 진짜 산악인이다.”


돌아옴이 완성이다


모든 시작은 끝을 맞는다. 취업하면 은퇴하고, 취임하면 퇴임한다. 시작이 중요한 만큼, 마무리도 중요하다. 낙법을 익히고 나서 유도 기술을 배워야 하듯, 마무리하는 법을 배우고 난 뒤 시작하면 어떨까? 정상만 바라보다가는 길을 잃기 마련이다. 진짜 승부는 내려오는 길에서 갈린다.


마무리를 마음에 두고 시작한다면, 여정은 더 균형 있고 더 은혜롭게 이어진다.

정상이 눈부실 수 있지만, 진짜 성공은 무사히 돌아올 때 비로소 완성된다.

등산에서도, 인생에서도 참 맛을 누리는 곳은 정상이 아니다.

정상에서 내려와 소중히 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맛본다.


ankit-kumar-Alt_JZHkRwM-unsplash.jpg Ankit Kumar on Unsplash


브런치북 《세월 가니 보이네》, 다음은 '일하지 않는 것도 일하는 것이다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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