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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 중 다행일까, 다행 중 불행일까

비행기 태울 때는 떨어질 때도 생각해 주세요

by 김승월

초등학교 시절, 단체 기합을 받을 때면 개구쟁이 친구가 아는 척하곤 했습니다.
"매는 먼저 맞는 게 나아. 나쁜 건 먼저 끝내야지."


말도 그렇더군요. 나쁜 소식 먼저 듣고 좋은 말은 나중에 들으면 마음이 덜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같은 빨리 변하는 세상에선 이리저리 따지기 전에 좋은 것부터 챙기는 게 이득 아닐까요. 맛있는 사과부터 먹어야 늘 맛 좋은 사과만 먹는 거니까요. 그런데 신앙생활은 조금 다르겠지요. 영생을 꿈꾸니까 인생도 끝까지 길게, 전체로 봐야 하겠지요.


저는 얼마 전, 취재 도중 낙상을 당해 외상성 뇌출혈로 입원했습니다. 다행히 출혈이 심하지 않아 머리를 열지는 않았습니다. 주변에서는 “불행 중 다행”이라며 격려 같은 위로를 건넸습니다.


"네가 잘살아서 그래."
"성당 일 열심히 하더니 주님이 지켜주셨구나."
"주님 뜻이 있는 거야, 곧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처음엔 민망했지만, 듣다 보니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습니다. ‘내가 열심히 살아서 주님이 보살펴 주셨구나’ 하며 뿌듯해하기도 했죠.


그런데 종교 없는 내 여동생만은 정색하며 말했습니다.

“주님이 진짜 살펴주셨다면, 애초에 다치게 하지 않으셨어야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거 같습니다. 아무튼 행복하게 살다가 난데없이 당한 불행 아닌가요? 신앙심이 없이 보면 주님의 보살핌을 느낄 수 없긴 하겠네요.


“그렇게 성당일 열심히 하더니, 저 모양이야?”
누가 그렇게 손가락질이라도 하면, 내가 아니라 주님이 민망해지시진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2022년 세계 가톨릭 언론인 대회 집행위원장이었습니다. 시그니스 월드총회라며 여기저기 나서서 ‘믿음 행보’를 보여줬는데, 이제 와서 내가 이 모양 이 꼴이면, 주님 체면이 말이 아니잖아요.


여의도 성모병원에 긴급 이송돼 입원했을 때입니다. 몇몇 교우분은 '봉사 많이 했다고 특혜 입원했나 보다.'

며 오해도 하셨습니다. 그런 말 들으니 마음이 복잡해지네요.


게다가 자꾸 “주님 일 많이 해서 불행 중 다행이다”라는 말을 듣다 보니,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입니다. 병원 수녀님의 문병받았을 때, 묻지도 않으셨는데 제가 먼저 떠벌렸습니다.
“저, 교회 일 많이 했어요. 평화신문 칼럼도 꽤 썼죠.”

그래서, 그분들이 날 달리 대해주셨냐고요? 전혀요. 혹시라도 입원 만기라고 퇴원하라 하실까 봐, 눈치 보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처지입니다. 그저, 하루라도 더 보살핌 받고, 건강하게 퇴원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병상에서 얻은 것도 많습니다. 죽음 언저리까지 가보고 나니, 삶을 새롭게 보게 됐고요. 주님이 내게 주신 시간을 정말 감사하게 여기게 됐습니다. 그래도, 주님, 제발 살살 좀 해주세요. 비행기 태워주시고 나선, 내버려 두시면 이 몸 이 땅에 떨어질 때 박살 납니다.


제발 중심 잘 잡게 해 주시고, 빈 말은 가려듣고, 하는 말은 가시 없이 하게 해 주세요. 주님께 감사함 그대로 지니게 해 주십사 기도드립니다. 병상에서 드리는 이 기도, 주님은 들으시겠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완치되지 않을까 봐 불안합니다. 몸보다 더 아픈 건 마음입니다. 종교활동 열심히 했으니 주님이 살려주셨다고들 믿는가 본데, 그게 아니라면 너무 민망하지 않겠어요? 내 원수 앞에서 보란 듯 상 차려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주님 앞에 내세우기도 부끄러운 제가 주님 들먹이며 높임 받는 게 겁이 납니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띄워줄 땐, 떨어질 때도 함께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인생은 늘 오르막과 내리막이 섞여 있습니다. 제가 내려가더라도, 그게 주님 탓으로 비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 저를 잘 거두어 주세요. 그리고 그 모습 보고, 제 가족들도

“역시 주님입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찬양하게 해 주세요.


루르드 성모님,
부디 기도해 주세요.


한국저시력인협회 회장이신 미 회장님께선 불교신자이심에도 쿠팡에서 루르드 성모님 상을 사서 보내주셨습니다. "종교인이면 남 아플 때 그러는 거 아닌가요?"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주님,
불행이 먼저인지 다행히 먼저인지는
다 주님 뜻대로 순서 잡아 주세요.
다만, 이 부족한 저를 절망해 넘어지지 않도록만
손 꼭 잡아 주세요.

재활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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