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참기와 기념일
가끔 숨쉬기를 멈춘다. 20여 초만 숨을 쉬지 않아도 몸이 괴롭다. 30여 초 만에 비명이 나온다. 숨 참기를 끝내면 가슴팍이 얼얼하다.
“다행이다 살아있어서.”
1시간이나 전화 통화할 때도 있고 유튜브 검색하다가 몇 시간이 지나기도 한다. 호흡한다는 의식 없이 그냥, 호흡에 감사하다는 마음 없이 그냥 시간을 보낸다.
숨 참기는 ‘그냥’이라는 자동 반응에서 나를 깨어나게 한다. 호흡하며 몸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어서 안도한다. 살아서 나의 외부 세계와 접촉한다. 시선이 머무는 곳에 마음을 모아 집중한다. 멈춰봐야 호흡의 중요성을 체험한다. 평상시의 ‘당연’한 호흡이 숨 참기로 ‘낯선’이 되어 “여기”를 인식하게 한다.
가족도 호흡처럼 낯선 시간이 필요하다. 가족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기를 소망하면서 시선이 다른데 머무는 경우가 많다. ‘내’가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고 있다는 착각과 더 사랑받고 싶다는 허기는 상대에게 무심해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가족의 기념일은 대상을 낯설게 응시하는 기회다. 숨 참기처럼 짧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기념일을 맞은 대상에게 시선을 맞추고 집중할 수 있다.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핀다.
남편의 생일이다. 남편에게 생일에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더니 회사에서 업무상담 중에 졸았던 이야기를 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잠들었다는 사실을 인식했단다.
이야기를 들으며 결혼 후 병원에 가는 일이 별로 없었던 남편의 건강에 대해 내가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증에 민감하고 피로를 잘 느끼는 나에 비해서 힘들다는 말을 안 하는 남편의 건강은 당연한 줄만 알았다. 남편의 피로가 누적되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건강하고 통증에 둔감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작년부터 남편은 어깨와 손목 무릎에 통증을 호소할 때가 있었다. 20년 넘게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로 작업하다 보니 생긴 직업병이라 넘겨짚었다. 많이 아프면 병원에 한 번 가보라는 반응이 전부였다. 남편의 건강에 노란불이 깜박이는데 나는 제대로 쳐다보지 않고 있었다.
남편의 생일을 챙기려고 시선을 맞추니까 당연하게 여기던 남편의 건강이 낯설다. 몸이 얼마나 피곤했으면 일하다 졸았을까 안타깝다. 직장에서 업무 중에 잠이 들 정도로 피로가 쌓이고 있는 남편의 건강 신호등을 잘 살펴야겠다.
내가 골반뼈를 수술한 뒤에 남편이 주말에 청소하고 있다. 한 달 전에 남편이 로봇청소기가 좋다고 하더라는 말을 했다. 내가 물걸레 청소를 안 해서인지 로봇청소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대꾸를 안 했다.
“피곤한 남편의 주말 청소 해방이 필요하다.”
남편의 생일 기념으로 로봇청소기를 사자고 했다. 남편의 얼굴이 환해진다. 중소기업에서 제작한 로봇청소기를 구매하기로 했다. 로봇청소기가 물걸레 청소 기능도 있다. 얼마 전 남편이 로봇청소기 말 꺼냈을 때 잘 알아차리고 구매할 걸 그랬다. 주말 청소에서 벗어나 몸의 피로를 줄일 수도 있었을 텐데 미안하다.
숨 참기로 호흡의 중요성을 인식하듯이 기념일에 남편을 바라본다. 남편의 수고에 초점이 맞춰진다. 10년 동안 주말마다 청소해준 남편이 고맙다. 내가 그렇듯이 남편도 아프고 피곤할 수 있다. 내가 무리하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려 애쓰듯이 남편도 몸을 보살필 시간이다. 우선 로봇청소기를 이용해서 남편의 주말 청소를 해방한다.
아프지 않고 피로도 없이 살 수는 없다. 로봇청소기처럼 좋은 도구를 이용하면서 서로의 어려운 부분을 헤아리기로 한다. 우리에게 설렘, 사랑, 기대, 서운함의 구름이 오락가락하더니 연민도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