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품위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기품, 인상, 질적 수준을 표현할 때 ‘품위’라는 말을 쓴다. 뭐라고 딱 자르지 못해도 좋은 기운이 느껴질 때 품위 있다고 말한다.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보거나 영상을 보면 ‘평화’가 떠오른다. 몇 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오픈카를 타고 사람들과 만나던 모습이 생각난다. 잔잔한 미소로 사람들을 바라보던 교황의 태도는 따뜻했다. 광장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겸손해 보였다. 성스러운 존재와 만나는 경외심이었을까. 교황도 교황을 대하는 사람도 품위 있어 보였다.
친구로부터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다. 죽음 이후에.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살아 있는 지금도 나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하물며 죽음 이후에 나를 기억해 줄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일까 봐 조심스럽다.
질문을 던진 친구는 지그시 나를 바라본다. 내 속은 허둥거린다. 남편이나 자식 그리고 나의 형제자매와 몇몇 친구는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 기억해 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슈퍼우먼 같은 아내와 엄마가 아니라 흔들리던 ‘나’다. 잦은 이사와 건강 문제로 친구들과도 고만고만한 거리를 유지했다. 사회적 지위와 동떨어진 사람이니 직위로 기억될 수 없다. 경제적으로도 아웃렛 매장의 가판대가 내가 소비하기 적당했다. 그래도 알게 모르게 내가 세상으로부터 받은 도움에 감사한 마음이다.
책꽂이에서 색이 바래는 책처럼 낡아가는 ‘나’라는 사람에 대한 기억. 언젠가 책꽂이에서 빼버리게 될 사라지는 기억일 수밖에 없다. 낡아서 사라지는 그 기억이 따뜻하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뜨거워서 부담스럽거나 차가워서 피하고 싶지 않게 적당한 온기가 느껴지는 사람이면 좋겠다.
따뜻한 느낌의 기억이면 좋겠다고 대답하며 친구는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지 물었다. 친구는 짧거나 짜증이 묻은 ‘엄마?’가 아니라 여운이 남는 ‘엄마!’라는 말로 표현했다. 부대끼는 한숨이 아니라 그리움이 묻어나는 억양. 좋은 기억일 때의 느긋한 말투. 대상에 따라서 딸, 아내, 친구, 동료, 이웃으로 바뀔 수 있는 말이다.
친구는 부모님이 자신에게 많이 해줘서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셨다고 인정하고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간다. 혼자 계신 어머니가 적적하지 않도록 이모님도 모시고 여행 갈 때도 있다. 어르신의 과거에 대한 불평을 슬기롭게 대처하려 노력하는 친구다. 남편이나 자식에게 바라기보다 자기가 해줄 수 있는 일을 하는 친구다.
달라이 라마든 교황이든 종교지도자로서 최고의 지위에 있다고 품위가 그냥 생겨나지는 않았을 거다. 권위 있는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도 그들 모두가 존경받지는 못한다. 어떤 마음과 태도로 사는지 첫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느 순간 드러난다. 달라이 라마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름만 들어도 존경과 품위가 느껴지는 이유는 그분들이 바른 태도로 살아왔다는 증거다.
단어 선택이 다를 뿐 친구도 나도 좋은 기억이기를 바란다. 뚜렷한 사건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도 남아있는 느낌. 물질적으로 다 사라지고 추억으로 남은 자리가 품위 있기를 바란다.
방황의 시간 동안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직장을 그만뒀어도 괜찮다.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일보다 남들의 자랑과 하소연을 들어야 할 때가 많은 우리여도 괜찮다.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려고 노력하며 산다. 처음 겪는 이번 생에서 자식으로서든, 누군가의 아내와 며느리로서든, 자식의 엄마로서든 완벽하지 않아도 마음을 모은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잘 살았다’라고 칭찬받지는 못해도 나름 애쓰고 있다. 방황했던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힘든 시간이었어’, ‘가슴에 무거운 게 느껴져’라고 말할 때 서로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친구의 애써온 날들에서 품위를 느낀다.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친구가 내 앞에 오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