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마다 변한다

비 내리는 날

by 김작가


바람이 분다. 비가 내린다. 1시간 전에는 양동이로 쏟아붓는 것 같더니 지금은 우산을 쓰고 걸어도 될 정도다.

장마철은 비가 내리고 가는 시기다. 장마철에 구름만 잔뜩 낀 채 끈적거리고 후덥지근했다. 비가 내리기는 하려는지 의심 났다. 어젯밤부터 장대비가 쏟아지더니 바람이 시원해진다. 무엇이든 때가 있나 보다.

이 시기가 지나면 무더위가 기운 세게 힘을 쓰겠지. 무더위에 지칠 즈음이면 귀뚜라미 소리가 가을의 문을 열 테고. 첫눈이 내리면 잠시 설레다가 늘어나는 나이를 감당하기가 벅차서 숨어버리고 싶어지고……. 오락가락하던 마음은 매화꽃,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이 오면 생명 자체에 경외심을 갖는다. 잘나면 잘난 대로 못나면 못난 대로 살고 싶어진다.

끝없이 변화하면서 순환하는 자연이다. 사계절의 변화무쌍함에 기대어 사는 나는 종종 버거운 날도 있고 행복한 날도 있다.

‘행복’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괴로움만 잔뜩 있는 줄 알았다. 남한테는 친절하게 말하면서 나한테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며 사는 태도는 삶을 삐걱거리게 만들었다.

어렵게 장만한 나의 첫 아파트가 가격이 내려가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더니 9년 동안 매매가가 빠진 날이 대부분이었다. 대출 원리금을 감당하느라 애가 탔다. 내가 구매한 가격에 도달했을 때 또 집값이 내려갈까 봐 걱정하며 집을 팔았는데 그 뒤 가격이 쑥쑥 올랐다.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아파트를 팔고, 내가 불안해하면 또 다른 불안이 자석처럼 끌려오는 걸 여실히 경험했다.


몸이 아파서 배우게 된 정화하기는 아파트를 매도한 후 내 삶의 전반에 걸쳐서 새로운 태도를 익히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다. 걱정과 두려움,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정화하며 청소했다. 그냥 의지만으로는 살아온 습관적 반응 때문에 생각 전환이 쉽지 않다. 나의 정화하기 문구는 “미안합니다 용서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이다. 나에게 하는 선언의 말이고 위로의 말이기도 하다.

“네 하는 일이 그러면 그렇지” 하며 스스로를 학대하던 언어적 습관은 “그랬구나, 그렇구나”라고 인정하는 말로 바뀌었다.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고민하기보다 순리(順理)에 맡기는 쪽을 선택한다. ‘괴롭다’라는 생각에 사실 확인도 안 하고 걱정하던 태도에서 학교 옥상에 올라가 운동장을 쳐다보듯이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미 지나간 일에 괴로워하기보다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할지 선택한다.

남편이 다른 지역으로 발령받아서 주말부부로 지내다가 함께 지내게 되었을 때 다시 아파트를 구매했다. 나와 가족들이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기를 소망했다. 원하는 바에 초점을 맞추니까 불안의 자리가 없었다. 지금 사는 집과의 인연이 순리에 따라 움직였다. 3년 동안 생활하는 집 주변에 내가 필요로 하는 공원, 슈퍼, 카페, 식당, 병원 등 모든 것이 갖춰졌다. 집도 주변도 나와 가족들이 생활하기 편안해서 감사하다.

지금도 종종 부정적인 태도가 고개를 든다. 남들은 잘하는데 나만 뒤처져서 허우적대는 느낌도 든다. 예전에는 이럴 때 부정적인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며 나를 채찍질하면서도 벗어날 수가 없어서 절망했다. 지금은 그런 나를 알아차리고 ‘그렇구나’ 한다. 끌려 들어가지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도 않는다. 오늘 양동이로 퍼붓는 듯한 비를 바라본다. 부정적인 기운이 나를 흔들 때도 마찬가지다. 그저 관찰한다.

계절의 변화를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다. 바람 불 때는 바람이 부는 것이고, 비가 내릴 때는 비가 내리는 것이고, 낙엽이 질 때는 낙엽이 지는 것이고, 눈이 내릴 때는 눈이 내리고, 꽃이 피는 때는 꽃이 필 뿐이다.

흔들려서 볼품없어도 지금 이 순간을 살기로 용기를 낸다. 부정적인 태도는 구름 같다. 하늘을 가득 메웠다가 금세 파란 하늘을 보여주기도 하고 사납게 먹구름을 드리웠다가 하얀 구름이 뭉실뭉실 나타난다. 때때마다 변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기온 차이가 심하다. 나무들이 새순을 밀어 올리고, 잎이 무성해지고,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로 추위를 감당하며 순환하듯이, 내 삶도 변화의 변곡점마다 몸살을 앓기도 하고 잘 살아내기도 한다.


바람이 잦아드니 더운 기운이 목덜미를 끈적하게 한다. 선풍기를 켜야겠다. 좋은 사람과 차 한잔 마시러 나가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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