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미

인생 운전

by 김작가

멀미란 눈으로 보는 것과 몸이 느끼는 것이 다를 때 오는 불일치 때문에 발생한다고 한다.


20여 년 전 제주에서 추자도 갈 때 심하게 멀미했다. 11월의 쌀쌀한 날 쾌속선을 탔는데 배의 흔들림에 좀체 익숙해지지 않았다. 바다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아득함. 다음날 다시 그 배를 타야 한다는 두려움. 추자도에 도착해서도 풍광은 바라볼 엄두를 못 내고 배를 움켜쥐고 변기 앞으로 뛰어가기를 반복했다.


어린 시절 시내버스가 아닌 시외버스를 처음 탔을 때도 멀미했다. 비행기에서는 좌석 주머니에 있던 봉지를 손에 쥐고 있었다. 비행기가 기류에 흔들리면 내 몸이 몹시 긴장하면서 멀미했다.


시외버스와 비행기를 여러 차례 타면서 자연스럽게 멀미를 안 한다. 좀 흔들려도 그러려니 하면서 멀미는 안 한다. 버스나 비행기의 움직임에 몸을 맡긴다. 10시간 정도 장거리 비행할 때는 일부러 기내식을 적게 먹는다. 좁은 공간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몸이 붓고 배는 더부룩해서 불편하다. 즐거운 여행을 위해 물은 자주 마시고 기내식은 절반 이하만 섭취한다. 버스든 비행기든 앉아 있는 자세에서 몸의 순환이 편안하게 이루어지게 하려는 나의 선택이다.


내 생활에 배를 탈 일이 별로 없다. 유람선을 탈 때도 웬만하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제주에서 추자도 갈 때만큼은 아니어도 아직 뱃멀미한다. 뱃멀미를 떨칠 수 있는 좋은 경험치를 만들지 못하고 내가 쾌속선 타는 여행을 은연중에 피한다. 파도를 바라볼 때와 배를 타고 파도와 만나 친해지기가 좀 다른 것 같다.




운전자는 차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할 수 있어서 멀미를 겪지 않는다고 한다. 뇌가 그에 맞춰 준비한단다.

삶에서 몸과 마음이 부대끼는 것도 멀미와 닮았다. 내가 운전석에 앉아 있는지, 운전대를 잡았는지, 운전하는 방법을 아는지에 따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가로등도 없는 구불구불한 길을 갈 때 30km 이하 속도로 조심해서 갈 수도 있고 고속도로에서 100km의 속도로 달릴 수도 있다. 처음 운전할 때는 ‘초보운전’ 푯말을 붙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미숙함을 알린다. 운전할수록 자동차의 사용법에 능숙해져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거침없이 간다. 이정표를 정확하게 보고 주유를 제때 하면서.


내 삶의 운전석에 앉아 운전대를 잡지 않으면 몸과 마음의 엇박자로 멀미가 난다. 운전은 안 하고 주변에 반응하다 지칠 수 있다. 내가 타고 있는 차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주변의 차들이 내가 탄 차를 이리 밀고 저리 밀면 두려움이 증폭되어 꼼짝하기 어렵다.


멀미가 나고 공포가 몰려와도 우선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내 인생을 운전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멀미가 나서 죽을 것 같으면 주차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한다. 신선한 공기를 쐬고 물 한 모금 마시며 진정할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 확인하고 어떻게 갈 수 있는지 지도를 찾아봐야 한다. 내비게이션에 정확한 목적지를 입력해야 한다.





자동차 운전이 인생의 태도와 닮았다는 말은 내 운전 습관을 되돌아보게 한다.

나는 제한 속도와 차선을 지키고 방향등을 미리 켠다. 목적지로 가는 길을 정확하게 찾지 못할까 봐 긴장하면서. 주차 공간이 확실하지 않으면 두렵다. 머리로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잘 들으면 되니까 안심하라고 하면서도 몸은 긴장한다. 목적지를 놓쳐도 다시 찾으면 되는데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느끼는 간격이 크다. 인생의 멀미를 한다. 아직도 내 인생의 운전석에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나 보다. 내가 목적지 주변에 있다는 믿음보다 걱정이 앞선다.


시외버스든 비행기든 처음에는 멀미했어도 여러 번 타면서 몸이 편안해졌다. 배는 부담감이 남아있어도 처음처럼 멀미하지 않는다. 버스, 비행기, 배의 속도와 흔들림에 몸을 맡긴다.


내 인생의 차에 있는 운전석에 앉아서 운전한다. 운전대를 잡으니 멀미를 덜 한다. 시동도 켜져 있고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도 입력했다. 멀미만 하다가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내가 운전석에 앉아 가고 싶은 곳으로 운전하고 싶다.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이 느끼는 걸 잘 조율하고 싶다. 내 인생의 운전대를 잡고 주변을 잘 살피고 싶다. 물 한 모금 마신다. 가속 페달을 조심히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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