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날

우산

by 김작가


산책하다 비를 흠씬 맞는다. 빗방울이 둑, 둑, 둑 떨어지더니 우산을 쓰고 있어도 속옷까지 다 젖을 만큼 비가 쏟아진다. 산책로가 물바다 되어 파도친다. 나는 우산을 쓰고 첨벙거리는 길에서 멈칫거린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마음의 문을 여는 노크다. 나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 몸의 변화에 대해 숙고해 보라고.




나는 올해 여름에 땀이 많이 난다. 선풍기를 켤 때 직접 바람은 여간해서 안 쐬던 내가 올해 여름에는 선풍기와 붙어서 산다. 열이 훅 올라오면서 얼굴이 붉어지기도 한다.


나이 드나 보다.

아니, 나이 들며 몸이 변화를 겪고 있다.


땀나고 얼굴이 붉어지고 두드러기가 난다. 팔과 다리에. 입술 주변에는 좁쌀 크기의 뾰루지가 난다. 두드러기가 자꾸 나서 불편하다.


2달 동안 해독주스를 만들고 있다. 몸에 좋다기에 나와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시작했는데 효과를 모르겠다. 양배추, 당근, 비트, 토마토, 사과를 사서 씻고 삶아서 아침 일찍 일어나 믹서기에 갈아서 먹는 수고로움에 비해 나에게 긍정적인 신호가 없다.


나의 두드러기가 해독주스에서 비롯되었을까 싶어서 나는 한 달도 안 되어 먹는 걸 멈췄다. 남편과 아이에게만 아침마다 챙기고 있다. 가족들은 나의 수고를 생각해서인지 자신들도 긍정적인 신호를 모르겠으니 해독주스 먹는 걸 그만하자고 한다. 해독주스라는 이름으로 식구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굳이 긍정적인 신호가 없는 일에 애쓰다가 지치지 말자는 생각도 든다.


처음 두드러기가 났을 때 가려움을 참기가 힘들어서 스테로이드제 연고를 처방받아 발랐다. 약을 바르기 시작하고 열흘이 지나니 두드러기가 거의 없어졌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인지 허벅지 뒤편과 오금쟁이가 가렵다. 동전 크기의 붉은 점들이 성내다 잠잠하기를 반복한다.


해독주스를 먹지 않아도 붉은 점들이 올라오니까 두드러기의 원인이 다른 데 있나 싶다. 열흘 전부터 입술 주변에 뾰루지가 났다. 산책하고 팔에 붉은 점들이 생기더니 긁지 않아도 동전 크기로 퍼졌다.




비가 내리거나 햇볕이 너무 쨍쨍하면 우산을 쓴다. 비가 내리면 내 몸 젖지 않게 해 줄 우산이 필요하고, 강렬한 햇볕은 나에게 그늘을 만들어줄 우산이 필요하다.


병원에서는 두드러기의 원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지금 당장 병원에 가서 원인을 밝혀내라고 말하기 전에 나의 생활일지를 기록해야겠다. 날마다 어떤 음식을 먹고 햇볕 앞에 얼마나 있었는지. 수면 시간과도 관련이 있는지, 일상의 스트레스 강도는 어땠는지 등을 기록해야겠다. 기록하다가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생활패턴의 인과관계를 찾을 지도 모른다.




먹는 음식에 특별한 변화가 없고 기초화장품을 바꾸지도 않아서 내 몸 변화에 대해 불편하다는 말만 했다. 나서서 답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비를 맞으며 몸이 보내는 메시지에 귀 기울인다.


첨벙거리는 빗길에 서서 지금 나에게 어떤 우산이 필요한지 생각한다. 비가 금세 물바다 되어 파도치는 이런 날은 커다란 우산이 좋겠다.

keyword
이전 15화만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