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보내는 메시지

열이 난다

by 김작가


몸이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친절한 태도로 보살펴달라고 요구한다.


열이 37.7도이다.

나른하고 기운 없다.


입 안에 구내염 하나가 더 생겼다. 구내염이야 워낙 나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 그러려니 해도 열이 나니까 힘들다.


미지근한 물을 마시면서 내 몸을 관찰한다. 발 시리고 등과 어깨가 뭉치고 손가락 뼈마디가 쑤신다. 배는 뻣뻣하게 뭉친다. 목이 좀 부었고 귀 뒤쪽이 찌르르하다. 코도 조금 답답하지만 평상시의 비염 상태에서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 귀 뒤쪽의 찌르르함이 정수리 근처까지 날카롭게 쑤실 때 ‘아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턱이 들린 채 얕은 호흡을 하고 있다.


내가 한동안 긴장하고 있었다. ‘나’에 대한 부정적인 덜컹거림으로 어둠 속에 있었다. 어둠 속에서 화내거나 투덜거리지 않으려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보다 더 많이 움직였다. 사람을 만나러 멀리까지 외출하고 책을 수험생 공부하듯이 읽고 영화를 두 편씩 연달아 보기도 했다. 잠을 별로 못 자서 피곤한데 내 속의 부정적인 것들과 만나기 싫어서 숨차게 산책했다. 내 몸을 밀어붙이며 전투적인 태도로 지냈다.


전쟁을 치르다 지쳐있던 날 세탁기 소음이 들렸다. 빨래를 세탁기에 넣어 세탁할 때 소음이 발생하듯이 내 속도 시끄러웠다. 세탁이 안 되면 어쩌나, 옷이 상하면 어쩌나, 세탁물이 뭉쳐서 꺼낼 수 없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다. 세탁기 작동은 언젠가 멈추고 나는 깨끗하게 빨아진 옷을 입을 수 있다는 믿음을 잊고 있었다.

‘나’에게는 어두운 부분도 있고, 밝은 부분도 있다. 막무가내로 떼쓰는 부분도 있고 무조건 수용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의 안타까움과 미래에 대한 걱정도 있다.

세탁기 소리가 잠시 후 멈출 거라는 사실이 부대끼던 나의 마음도 별거 아니라는 깨달음을 줬다.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내내 긴장하고 불편해하고 있었는데 팽팽하던 고무줄이 끊어지면서 아무것도 없었다. 싸움이 멈추고 조용해졌다.

좋은 것만 갖고 싶은 욕심이 내 속의 여러 ‘나’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가렸다. 안 보이니까 무섭고 조바심 났다.


“그랬구나, 그렇구나”


내 속의 ‘이런 나’, ‘저런 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홀가분했다. 전쟁을 치르지 않고 전쟁터를 떠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겪지 않고서 무거운지 가벼운지 알 수 없었을 테니 그저 ‘나’를 토닥거렸다.


마음의 부대낌이 조용해지자 내내 긴장하고 있던 내 몸이 이제 ‘나’ 좀 봐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몸의 불편함이 대부분 ‘뭉침’에서 비롯되고 있다. 부드럽게 어루만져서 풀어줘야 한다. 우선 호흡부터 주의를 모은다. 얕은 호흡을 알아차리고 의도적으로 깊은 호흡 하면서 나에게 사랑의 기운을 보낸다. 들숨과 날숨이 부드러워지자 천천히 스트레칭을 한다. 내 몸이 움직일 수 있는 대로 천천히 동작하면서 주의를 기울인다. 숨이 차면 누워서 쉰다.


열이 난다. 해열진통제를 먹어서 쉽게 열을 떨어뜨리기보다는 내 몸이 나에게 하는 말을 경청하기로 한다. 덜컹거리는 마음을 지켜보며 버티던 몸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몸이 긴장을 풀고 안전하다는 느낌에 거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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