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쌉쌀하지만 입맛 돋우는 봄나물

by 김작가


겨울을 견딘 쌉쌀한 봄나물은 입맛을 돋운다.


어머니 집에서 머위, 눈개승마, 두릅, 오가피, 쪽파, 부추를 가져왔다. 흩날리는 꽃잎처럼 연하다. 봄에 입맛을 잃어 먹는 게 고역일 때 어머니가 연한 머위잎을 데쳐서 하루 이틀 물에 담가 쓴맛을 빼내고 무쳐주면 밥을 먹을만했다. 써서 안 먹는다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30대 초부터 머위 맛이 좋다. 된장과 고추장에 물엿을 섞어 무쳐도 입안 가득 퍼지는 쌉쌀함에 알딸딸해지면서 기운이 난다.



머위의 쓴맛은 내가 몸이 아파서 잘 먹지 못하고 괴로워할 때의 기억을 소환한다. 식욕촉진제를 먹어도 소용없던 시절이 있었다. 몸을 위해 먹어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속이 아프고 목구멍에서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다. 아파서 괴롭다며 마음도 함께 처져서 누군가에게 기대어 울고 싶었다. 마음 놓고 기댈 곳은 없고 내 인생은 어두운 터널에 갇혔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인생의 추운 겨울이었다.


인생의 겨울을 온몸으로 버티는 나더러 곧 괜찮아질 거라거나 젊으니까 훌훌 떨쳐내고 봄을 맞이하라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에게 봄이 오기나 하려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


오랫동안 시간 맞춰서 밥 먹고 있다. 목이 부으면서 하얗게 헐어서 찢어질 듯이 아파도 먹는다. 습관의 힘이 대단하다. 시간 맞춰 자꾸 먹으니까 언젠가부터 몸이 음식을 거부하지 않는다. 자주 아프던 예전보다 먹는 양도 늘었다. 몸무게도 늘어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에게 얼굴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머위는 밭 한가운데서 자라기보다 볼품없이 밭둑에 방치된 채 자란다. 추운 겨울에 땅속에서 머위가 죽을까 봐 비닐 씌워주는 것을 못 봤다. 특별히 보살피고 가꿔주지 않아도 봄이 되면 어머니가 사는 시골집 근처 그늘이 지는 밭둑에 머위가 자랐다. 올해도 머위가 자라서 내가 먹을 만큼 뜯어왔다. 머위를 데쳐서 이틀 동안 물을 갈아주며 쓴맛을 뺐다.



머위에서 쓴맛이 나는 이유가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생명을 유지한 흔적 같다. 그늘진 밭둑에서 풀들과 함께 자란 머위는 벚꽃처럼 사람들 시선을 확 끌어당기지 않는다. 눈여겨봐야 보이지만 해마다 봄이 되면 새순을 피워내고 쌉쌀함으로 입맛을 돌게 한다. 쓰다고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머위는 해독작용이 뛰어나서 물을 정화하여 맑게 하는 특성이 있고 머위 뿌리는 한의학에서 기침을 멎게 하는 진해제(鎭咳劑)로 사용한다고 한다. 누군가 눈여겨 봐주든 말든 제 할 일을 하는 존재다.



머위뿐만 아니라 눈개승마, 두릅, 오가피에도 쓴맛이 있다. 모두 추운 겨울나기가 만만치 않았나 보다. 내 인생의 겨울은 추위를 막아줄 안식처가 없어서, 어두운 터널에 갇혀서, 사는 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생명 의지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중년이 되어서야 내 인생의 봄이 왔다. 겨울은 겨울인 줄 알아차리고 봄은 봄인 줄 알아차리며 살아있기를 배우고 있다. 바라보는 시선과 방향이 달라지니까 나와 세상을 받아들이는 범위도 변한다. 터널이 어둡다고 무서워하기보다 나를 위해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춥다고 떨고 있기보다 따뜻한 옷을 껴입었다. 내가 나를 보살피고 어루만지면서 인생의 봄날을 맞이했다.



봄은 꽃이 피고 새순이 돋아서 황홀하지만, 황사와 꽃샘추위로 불편할 때도 있다. 내 인생의 봄날은 바람 부는 날도 있고 갑자기 기온이 올라 더울 때도 있고 급격하게 추울 때도 있고 뿌연 먼지 가득한 날도 있고 꽃잎 흩날려서 황홀한 날도 있고 100가지 넘는 초록의 향연으로 경이로운 날도 있다.


‘지금, 여기’ 머물며 고요해질 때는 내 인생의 봄날 피워낸 꽃을 보는 것 같아 충만해지면서 감사하다. 겨울을 지나 피워내는 봄날의 화려한 벚꽃이 아니라 볼품없는 밭둑에서 자라는 쌉쌀한 머위 같아도 “애썼다” 토닥여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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