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외부 창문 청소하고
아파트 외부 창문 청소했다. 흙먼지가 엉겨 붙은 듯하던 창문이 깨끗하다. 8월 말부터 일정이 여러 차례 변경되다 드디어 진행되었다.
가을날, 하늘만큼 푸르게 우리 집 창문도 맑아졌다. 우리 집 전망이 더 좋아진 느낌이다. 창문 밖 느티나무의 잎들이 물들어 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창문으로 비치는 햇살도 더 깨끗하게 느껴진다. 창문 앞에 앉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창을 바라보다 한동안 책을 못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들고 앉아서 편안하게 쉬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창문이 씻겨져서 맑아졌듯이 좋은 책 읽으며 편안하게 쉬고 싶다. 할 일이 몇 가지 떠오른다. 그래도 의도를 내서 오늘은 책 읽는 날이라고 선언한다.
나 혼자 집에서 하는 선언이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책 읽는 날’이라고 말하고 나니 의욕이 생긴다. 창문을 바라보고 앉아서 독서대에 책 한 권을 올린다. 나의 독서는 눈으로 쭉쭉 훑어내기가 아니라 한 글자씩 한 글자씩 인사하기다. 읽다가 인상적인 말을 만나면 다시 읽는다. 가슴으로 다가와 눈이 촉촉해져도 좋고, 나도 이럴 때 있는데 싶은 문구 앞에서 웃음이 나도 좋다. 가끔 고개를 들고 창문을 바라보면 가을 하늘에 하얀 구름이 움직인다. 나무에 앉은 새를 만나기도 한다. ‘책 읽는 날’이라고 혼자 선언했는데 축하해주러 손님으로 들렀나 보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기분 좋다. 나에게 느긋하게 책 읽는 여유를 주지 못하고 뭔가 할 일이 많다는 생각으로 바빴다. 바쁘다는 사실에 초점을 두니까 책 읽을 여유가 없었다.
할 일에 쫓기다 지치는 순간이 오면 멍하게 앉아서 영화를 볼 때가 있다. 강제적으로 할 일에서 도피하려고. 지침의 강도가 심할수록 화면이 정신없이 바뀌는 영상을 선택한다. 누군가 재촉하는 사람이 없는데 잘하고 싶어서 할 일에 매달려 있다가 영상매체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몸이 몹시 고단하다. 나의 전투적인 태도가 피로를 흔적으로 남긴다. 책을 읽을 때도 뭔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바쁘게 읽으면 숨이 찬다. 멀미가 난다.
책 읽는 날, 나는 충분히 쉬고 싶다. 여유로운 순간으로 물들고 싶다.
책을 읽다가 수시로 어깨를 으쓱거리고 고개도 돌려주고 기지개를 켠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 뻐근한 어깨를 사랑스럽게 만져준다. 요즘 손을 많이 움직여서인지 잘 구부러지지 않는 손가락을 쓰다듬는다.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기도 하고 거실과 서재를 오가며 걷기도 한다. 깨끗해진 창문을 바라보며 ‘좋다’는 말을 한다. 컵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차 마시고 책을 읽으니 행복하다.
아파트 관리소에 외부 유리 청소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라도 해야 하려나. 맑아진 창문 덕분에 책 읽는 날을 보낸다. 하늘과 구름, 나무와 새와 더불어 느긋하게 천천히.
창문을 열고 가을바람을 방으로 부르면 머리가 개운하다. 책 읽는 날 모든 것들이 깨끗하고 맑고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