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머리카락

나의 나이 드는 모습

by 김작가


나는 흰 머리카락이 많다.

5년째 염색을 안 한다.

앞머리에 하얀색 머리카락이 더 많다.

어깨선보다 기른 머리를 풀어놓고 다닌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내 머리에 당황스러워하더니 지금은 다들 그러려니 한다. 잘 어울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얀색 머리카락이 전체 머리 기장과 같아지면서 나의 머리가 부럽다고 말하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예쁘다는 말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에 일희일비한다. 예쁜 것은 바탕이고 동안(童顔)은 더 특별한 재주로 여겨진다.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듣지 못할 줄 알면서도 흰 머리카락을 드러내는 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인지도 모른다. 최근 5년 동안 어려 보인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친정언니의 시어머니 병문안을 갔다가 사돈이 나더러 ‘언니’냐고 물은 적도 있다.

내 나이가 궁금한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나의 나이를 실제보다 10살이나 더 많게 본 적이 있다. 그 뒤에는 누군가 내 나이를 궁금해하면 얼른 대답해준다. 뜸 들이다가 실제보다 더 나이 든 사람이 되기는 싫어서.


염색을 안 하기 시작한 이유가 머리카락이 너무 빠지고 두께가 얇아져서다. 어린 시절의 절반 이하로 머리숱이 줄었다. 염색할 때마다 두피가 가려워서 불편했다. 염색하느라 미용실 다녀오기도 몸이 피곤했다. ‘나’ 대로 살기로 선택하면서 불편해도 해야 할 일과, 안 해도 될 일은 안 하는 용기를 냈다.


올림머리를 하면 흰 머리카락도 근사해 보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머리 손질을 잘못한다. 올림머리 해보려고 머리를 세게 묶으면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서 아깝다. 여름에는 더우니까 헐렁하게 머리를 묶고 다른 계절에는 풀어놓는다.


염색을 안 하면서 머리카락이 덜 빠지고 힘도 생긴다. 두 달에 한 번씩 미용실에 예약하고 염색하던 시간에 천천히 산책하거나 책을 읽는다.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나를 쳐다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얀색 머리카락이 많으면 많은 대로 지나친다. 내 나이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 나이를 실제보다 더 많다고 말해도 서운할 필요 없다.


흰머리를 드러내기는 용기가 필요하다.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듣지 못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해야 한다. 주변에서 별 뜻 없이 “머리가 그게 뭐야” 하는 말을 들어도 웃어넘길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는데 타인의 스타일에 맞추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살아도 괜찮다.

한 번의 용기로 다 해결되지는 않는다. 수시로 마음은 변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흰머리를 드러내도 되고 염색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는 사실이다.


올해 여름에 나도 염색할까 고민했다. 한동안 내가 추레해 보였다. 망설이다가 내가 선택한 것은 미용실에 가서 파마했다. 염색하는 순간 한 달도 안 되어 흰 머리카락이 보일 텐데 나의 머리 기장만큼 기르려면 최소한 3년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이유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파마를 하고 나서도 추레해 보이고 마음이 불편하면 염색하기로 했다.


1년 만에 미용실에서 파마하고 기장도 층을 내서 자르고 나니 기분이 상쾌했다. 시월의 멋진 가을날 만난 사람에게 글 쓰는 사람이라서인지 나의 흰 머리카락이 멋있다는 말도 들었다.


생각하면 염색을 안 하기로 했을 때 내가 가장 원했던 바가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싶은 욕구였다. 남들에게 보이는 삶에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방향을 바꾸고 싶었다. 검은색 사이에서 흰 머리카락이 자라면서 볼품없는 모습은 인생 낙오자 같은 느낌이 드는 날도 있었다. ‘염색을 안 하니까 두피가 덜 가려워’, ‘머리카락이 덜 빠져’, ‘새로 자라는 머리카락은 두께가 굵어’라고 하면서 나를 다독여야 했던 숱한 날들이 있었다.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가장 흉한 모습과 마주한다. 흰머리를 염색하지 않고 그냥 두기 시작할 때도 그렇고 어수선한 마음을 마주할 때도 그렇다. 정수리 부근에서 하얀 머리카락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을 때가 제일 보기 흉하다. 불편해도 지그시 참아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흰 머리카락이 자라고 자라 내 귀 언저리에 닿을 즈음 염색 안 하고 살아도 괜찮다는 확신이 들었다.


예전에 염색했던 머리카락은 다듬어지고 사라졌다. 새로 자란 희고 검은 머리카락은 두께가 굵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생각보다 나이 든 사람이라 낯설 때도 있다. 아직도 근사해 보이고 싶은 욕구가 남아있나 보다. 그 마음조차 ‘나’라고 인정한다.


염색할까 고민하던 마음의 고개를 넘고 그냥 이대로 살기로 한다. 나의 나이 드는 모습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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