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저녁 소풍
친구야 나 소풍 가.
말 타고 출렁거린 마음을 진정했는데 가이드가 저녁 소풍을 제안해. 몽골 만두인 호쇼르를 포장해서 숲에 가서 해지는 노을 바라보재. 오전에 말타기하고 양고기 냄새나는 게르에서 오후에 낮잠을 자거나 온천을 하던 우리에게 소풍을 제안하다니 가이드가 센스 있지?
나와 일행은 소풍 가서 라면도 끓여 먹기로 했어. 다들 몽골에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불편할까 봐 비상식량을 챙겨 왔어. 김치, 장아찌, 라면, 김, 멸치볶음, 참치, 고추장 등 끼니마다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어도 충분할 정도야. 그런데 몽골 음식이 생각보다 맛있어. 몽골에 도착한 첫날 점심에만 잘 안 먹었을 뿐 우리는 끼니마다 맛있게 잘 먹어. 몽골에 도착한 날은 밤새 잠을 못 자고 점심 식사 전에 이것저것 먹은 게 많아서 못 먹은 거고 그 이후에는 너무 잘 먹고 있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싸 온 음식도 먹어야 한다며 손에 바리바리 챙겨 들고 소풍을 가.
숲으로 가기 위해 게르 문을 나서서 일렬로 늘어서서 걷는데 개 한 마리가 따라와. 몽골 여행하며 이런 생김새의 개를 여러 번 봤어. 양치는 개인지 덩치가 크고 검은색 몸에 얼굴 부위에 하얀색 줄이 있어.
졸래졸래 따라오는 개가 내 옆으로 오면 긴장이 돼. 한국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분이 개한테 ‘너 쓰다듬어주고 싶지만 벼룩 있을까 봐 안 돼’라고 말해도 개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 몸에 지그시 기대곤 해. 그럴 때마다 놀라는 사람들이 있어. 나도 개가 다가오면 두려워하는데 그런 사람이 여럿이네.
온천물을 옮기는 파이프가 끝나고 산으로 오르려니 오버가 있어. 돌이나 흙무덤에 버드나무를 꽂아 놓은 거야. 몽골 사람들이 하늘에 대한 감사와 경외의 마음을 드러내고 앞날의 축복을 기원하며 세우는 거래. 자연의 나라이다 보니 샤머니즘적인 부분이 생활 속에 있는 것 같아. 나와 일행이 오버를 세 번 도는 동안 검은 개가 의젓하게 앉아서 먼 곳을 응시해. 가이드가 개를 보내보려 하지만 소용이 없어. 가이드가 들고 있는 호쇼르 냄새가 개의 후각을 자극하나 싶어.
우리는 나무가 병풍처럼 둘러 있는 숲 가까운 곳까지 언덕을 올라가서 자리를 잡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이주하여 사는 분이 매콤한 베트남 소스를 호쇼르 찍어 먹으라고 나눠줘. 친구야 소스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이 매콤한 소스와 호쇼르가 기가 막히게 어울려. 식당에서 호쇼르와 함께 싸 준 당근 무침도 맛있어. 마늘향이 나는데 당근의 아삭한 식감과 더불어 호쇼르랑 먹기 좋아. 기름에 튀긴 호쇼르를 먹다가 라면 먹을 때의 행복, 후루룩 국물마저 다 마시게 돼.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도 꺼내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만찬을 즐겨.
다만 개가 자꾸 우리 주변을 돌다가 사람에게 기대서 바짝 긴장하는 사람이 여럿 있어. 개를 돌아가게 하려고 호쇼르를 멀리 던져도 소용이 없어. 개가 기대서 긴장돼도 라면을 먹느라 무릎까지 꿇기도 해서 웃음꽃이 끊이지 않아.
큰소리로 웃고 또 웃는 우리를 하늘은 붉은 노을로 품어줘. 일렬로 앉아서 멀리 있는 언덕과 숲을 바라봐. 노을이 어둠으로 덮일 때는 다들 말이 없어. 내가 그리고 우리가 자연과 하나 되어 머무는 느낌이야. 8월의 숲인데 모기와 다투지도 않아.
어둠이 가득 차서 우리도 소풍을 끝내기로 했어. 주변을 맴돌던 개도 집으로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네. 각자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똥을 피하며 숙소로 향해. 소풍 나올 때의 들뜸은 가라앉고 평안하게.
내가 묶는 쳉헤르 온천 게르의 쪽문을 지날 즈음 사달이 났어. 앞사람을 따라 무심히 걷다가 나무판자에 내 발이 꼈어. ‘악!’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어. 강렬한 통증이 온몸을 휘감은 가운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후, 후,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며 통증을 살피려고 노력해.
누군가 내 운동화를 벗겨줬는지 내가 벗었는지 모르겠어. 호흡과 함께 내가 눈물 콧물을 쏟고 있는 게 느껴져. 처음 비명 지를 때보다 통증의 강도가 더 세지지 않는 걸 보니 골절은 아닌가 봐. 왼쪽 다리 전체가 떨리고 발에 불이 난 느낌이야. 특히 엄지발가락이 난리야. 깊이 숨 들이쉬고 내쉬며 왼쪽 엄지발가락에 집중해. 살짝 구부려보니 우둔하지만 움직여져. 골절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
일행들도 놀라서 가던 길을 멈췄어. 그들의 말소리가 들리고 콧물을 닦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어. 내가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아 괜찮다고 하는데 목소리가 떨려.
내가 어리바리하게 앉아서 골절은 아니라고 하니까 다른 일행들도 여기 병원도 없는데 다행이라는 말을 하며 나를 업어준대. 아니라고, 걸어보겠다고 해도 등을 들이밀며 업어줘. 몽골 여행하며 친해지고 있다지만 잘 모르는 사람에게 업혀 있으려니 민망해.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게르의 침대에 누워서 화끈거리는 발에 물티슈를 끼워. 몸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속으로 말해.
“나는 안전합니다”라고.
밴드가 왔는지 종일 스피커를 켜고 노래하던 사람들과 캠프파이어한다고 일행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내가 골절 아니어서 다행인데, 발톱이 빠지거나 발가락 전체가 멍들 거라고 말해.
친구야 참 이상하지.
사람들이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그 말 들을 때마다 나는 ‘아니요’라고 했어. 나에게 안전하다는 말을 만트라처럼 속으로 읊으면서 걱정과 불안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거절했어.
나는 안전하다고 속으로 말하며, 호흡이 편안해지고 몸의 떨림이 가라앉는 것을 알아차리고, 발가락의 화끈거림을 수용했어.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니까 처음에는 침대에서 일어날 엄두도 안 나더니 일행의 팔에 살짝 의지해서 화장실에 갈 수 있더라.
마부에게 팁을 안 주기로 선택하고 찜찜하기도 하고, 소풍 가서 마냥 행복하기도 하고, 나무판자에 발가락이 끼어 비명을 지르기도 한 출렁거린 하루야. 이 출렁거림 속에서도 안전하다는 확신은 참 묘하다.
남들이 말한 대로 내일 아침 나의 발가락에 멍이 들거나 발톱이 빠져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안전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