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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몽골, 쉼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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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Nov 28. 2023

어기 호수 가는 길

함께, 안전하게

잠 깰 때 발가락과 몸의 감각에 집중해. 어젯밤 난리를 친 발가락이 얼얼하지만 구부릴 수 있어. 바닥에 발가락을 눌렀을 때 괴롭지 않아. ‘나는 안전하다’는 메시지가 몸에 잘 전달되었나 봐. 일어나서 나의 발을 보니까 발톱이 빠지지도 않았고 멍도 없어. 친구야 어젯밤 나무판자에 끼었던 발이 안전해.

      

감사하다.

삶의 순간을 어떤 태도로 마주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해. 친구야 내가 걱정하는 습관, 불편을 재생산하는 습관에 초점을 두지 않고 원하는 바에 초점을 뒀는데 내 발이 안전해. 이 경험은 내가 불편과 걱정을 끌어올지 안전과 감사를 끌어올지 선택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줘. 

    

어제처럼 마부에게 팁 안 주고 마음 끄달리기도 하고 발가락을 나무판에 끼는 사고에 당황하기도 해. 내가 계속 그 상황을 반복하며 괴로워할지, 나에게 닥친 상황을 받아들이고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갈지 선택할 수 있어. 나의 경험을 수용하고 길을 가게 하는 몽골 여행이 참 좋다. 

    

오늘은 이틀을 머물던 쳉헤르 온천에서 떠나 어기 호수로 가.

비가 내려서 땅이 질퍽해. 자동차가 지나간 길은 논두렁 같아. 쳉헤르에 도착하던 날보다 길 상태가 나빠 보여. 머물던 숙소가 멀어질수록 물웅덩이도 많고 미끄러워 보여. 기사님이 비 내리는 오프로드를 천천히 운전하지만 종종 놀이기구를 탄 듯이 출렁거려. 가끔 뒤로 밀리기도 해.  

    

보조석에 앉아서 앞을 보는데 지진이라도 난 듯이 갈라진 땅을 피해서 지나기도 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불안한 기색을 보여서 기사님에게 부담을 주거나 일행에게 전염시키지 않으려고 해. 차가 옆으로 많이 기운 채 주행할 때는 뒤에 앉은 일행들도 불안한지 아무 말도 안 해. 기사님 드시라고 포장지를 뜯어둔 초콜릿이 차가 출렁거릴 때 바닥에 떨어져.   

  

갈라진 땅


차가 뒤로 밀려. 기사님이 기어를 바꾸며 다시 시도해도 자꾸 밀려. ‘어! 어... 어......’ 신음이 나와. 밀리지 않으려 애쓰는데 차가 뒤로 밀리면서 돌아가. 바퀴가 헛도는 것 같아. 땅이 갈라진 틈에 끼었나 봐. 기사님과 가이드가 차에서 내려.   

  

우리도 모두 차에서 내렸어. 버스 뒷바퀴가 갈라진 땅 틈에 박혔어. 말도 없고 표정 변화도 없던 기사님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역력해.

우리가 탄 버스가 멈추자 멀찍이 떨어져 있던 차들도 가던 길을 멈춰. 그냥 지나가지 않고 상황을 지켜봐. 잠시 후 몽골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타는 푸르공 자동차가 우리 버스 앞으로 다가와. 푸르공 차량에서 한 남자가 내리더니 기사님과 이야기 나누고 줄을 꺼내서 버스와 푸르공을 연결해. 우리는 일렬로 서서 말없이 지켜봐. 헛바퀴 돌며 푸르공이 버스 쪽으로 밀리는 듯해. 푸르공 운전자와 우리 기사님이 뭔가 말해가며 몇 차례 다시 시도해. 자동차 바퀴가 땅과 요란한 마찰음을 내다가 버스가 끌어당겨져. 일렬로 서 있던 우리는 크게 손뼉을 쳐. 이 순간 우리의 박수에는 감사가 가득해. 먼저 떠나는 푸르공 차에 감사하다며 한참 동안 손도 흔들어.   

  

몽골 사람들의 연대가 느껴져.

매끈하게 포장된 길도 아니고 이정표가 있지도 않고 인가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길에서 난감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를 외면하지 않잖아. 내가 타고 있던 버스를 줄로 연결해서 끌어준 푸르공 운전자에게도 감사하고,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다른 차들도 감사해.  

    

몽골에 있는 내내 견인차를 못 봤어. 우리나라는 자동차에 문제가 있을 때 보험 서비스를 신청하면 금세 견인차가 찾아오지만 몽골은 그럴 수가 없어. 땅은 넓은데 인구가 적고 사람이 사는 곳을 만나기가 어려우니까. 그래서 몽골인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나 봐.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나무가 제법 많은 곳을 지나는데 물이 많아. 자동차 바퀴가 1/4쯤은 잠길 것 같아. 기사님은 가끔 차에서 내려서 길 상황을 파악해. 오던 길을 돌아가서 다시 방향 잡기도 해. 도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비 때문에 땅이 어떤 상황일지 알 수가 없어. 자동차 바퀴가 구덩이에 빠진 뒤로 기사님이 숙소를 떠나 처음 운전할 때보다 더 조심하는 게 느껴져. 

   

어기 호수 가는 길이 느릿해. 나도, 나와 함께 하는 일행들도 느릿한 우리의 속도에 불평하지 않아. 포장된 도로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손뼉을 쳐. 안도의 한숨도 나와. 점심때가 지나 뱃속에서 꼬르륵거려. 기사님에게 초콜릿 하나를 드려.

    

비가 완전히 그쳤고 포장길을 벗어나 잠시 비포장길을 더 달리는데 멀리 호수가 보여.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에 오버가 있어. 변화무쌍한 자연 앞에서 순응하는 법을 터득하며 사는 몽골인들이 느티나무를 쌓아 오버를 만들어 두고 겸손과 인내와 배려를 배우나 봐. 몽골 사람들의 삶의 현장 같아.  

  

배고프고 화장실도 가고 싶어. 오버에서 바라본 호수는 코앞으로 보이는데 차로 한참을 가네. 멀리 보이는 어기 호수는 고요하다.

어기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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