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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몽골, 쉼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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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Oct 24. 2023

쳉헤르 온천에서 출렁거린 하루 1

마부에게 팁 안 준 날


몽골 여행하는 내내 이정표를 몇 번밖에 못 봤어. 때때로 오프로드의 출렁거리는 길을 지나는데. 친구야 오늘 나의 하루가 출렁거렸어.      


새벽에 난로가 꺼지면서 한기에 잠이 깼어. 내가 불을 다시 피워보려고 하다가 게르에 연기가 가득 차서 문을 열어야 했어. 잠자던 일행이 일어나 장작을 지그재그로 다시 세우고 바싹 마른 나무껍질 조각부터 살살 달래 가며 불을 피웠어. 어젯밤 먹은 과자 상자와 화장지까지 난로에 넣고도 게르 안에 연기만 가득 차게 한 내가 민망하네.

게르 안의 연기가 빠져나가기를 기다리며 밖으로 나갔더니 밤하늘은 별이 빛나고 있어. 별빛으로 민망한 마음을 쓸어내고 다시 온기가 도는 게르에 들어가 잠을 잤어.

아침에 잠 깰 때도 추워. 난로가 또 꺼졌거든. 새벽에 난로에 불을 피운 일행이 물을 끓여서 커피를 타 줘.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커피 향과 따뜻한 온기에 온몸을 맡겨. 달달하고 행복해. 디카페인 커피믹스를 찾아서 타 준 일행에게 고마워.  

    

식사 시간에 맞춰 식당에 가서 크림수프 비슷한 것과 빵, 계란프라이를 먹었어. 조촐한 듯하면서 편안하고 좋아. 기분 좋은 아침이야. 식사 후에 몇몇 일행과 산책도 했어. 나무 가까이 산책하려고 걷는데 바닥에 동물들이 지나간 흔적이 많아. 방목이라 여기저기 똥이 보여. 멀리 바라보지 못하고 똥을 피하며 걸어. 나무 한 그루가 뿌리째 뽑혀 있어. 지반이 약한지 뿌리가 짧아. 최소한 20m가 넘는 길이의 나무인데 뿌리는 내 팔길이만 해. 뿌리가 덜 뽑힌 걸까?    

 

식당에서 먹은 아침 식사


오늘 말을 타. 2시간 동안. 넓은 초원에서 말 타고 달리는 기분 시원할 것 같아. 산책을 마치고 말 탈 준비를 해. 모자가 날아가지 않도록 손수건으로 묶고 가방에 물도 챙기고 운동화도 신어.     

드디어 말을 타. 몽골 말은 체구가 아담해. 서양말과 제주도 말의 중간쯤이야. 마부 한 명이 두 사람의 말고삐를 잡고 출발해. 마부는 십 대 초반으로 보여. 식당에도 십 대가 일을 하던데 방학이라서인가 봐. 돈 벌어서 뭐 할 거냐고 물으니까 학교 기숙사비 낸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어.   

  

말타기는 어째 나의 기대와는 다르네. 나는 말을 타고 달리고 싶었는데 마부는 고삐를 짧게 잡고 졸면서 가. 말이 서로 비벼대서 마부의 등자가 내 발목을 누르니까 너무 아파. 마부의 말과 내 말이 붙어서 걸을 때는 다리가 으스러지는 듯해. 터벅터벅 걷는 말에 앉아 있기가 편하지 않아. 말 타면서 내 무릎 주변과 발목에 멍들고 상처 날 줄 예상 못 했어. 거기다 내가 탄 말이 가끔 흥분해서 마부가 간신히 진정시켜. 몇 번이나 말에서 떨어질 뻔했어. 고삐와 안장을 움켜잡고 얼마나 긴장했는지 몰라.    

 

말 타는 2시간이 즐겁지 않아. 한 번도 달리지 않았고 언제 말이 흥분할지 몰라서 고삐와 안장을 움켜잡고 긴장해. 마부는 말이 돌발행동할까 봐 그러는지 고삐를 더 짧게 잡아서 말 사이에 낀 내 다리가 아파. 아프다고 말해도 마부는 아랑곳하지 않아.     


말에서 내릴 때 마부에게 팁을 주지 않았어. 말타기 전에 일행들과 마부에게 팁을 각자 주기로 했는데 나는 주기 싫었어. 나와 함께 말을 탄 분이 내 몫까지 챙겼더라. 나중에 돈을 주려고 했는데 그럼 불편하다며 거절해서 내가 한국에서 커피를 사기로 했어.     


말 탈 때 불편했다고 마부에게 팁을 안 주는 나 지질해 보이니? 

     

어떤 행동 뒤에는 책임이 따라와. 나의 속마음에 정직했다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불편한 마음이 드는 부분이 있어. 내가 팁을 주든 말든 다들 별로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나 혼자 전전긍긍하는 건지도 몰라.    

  

몽골 여행 함께하는 일행은 내가 이렇게 '아니요'라고 말하는 거 어려워하는 줄 예상하지 못할 거야.

친구야 지금 말하는데 나 말 타고나서 팁 안 주고 마음이 되게 불편했어. 찜찜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     

몽골에서 말타기


오후에 온천에 들어갔어. 따뜻한 물에서 노곤한 몸을 토닥거리느라고.

팁을 어떻게 할지 물을 때 주기 싫다고 말하는 용기가 나에게 있더라. 싫을 때 싫다고 말하는 거 용기 맞잖아. 싫을 때 싫다고 말하고 좀 불편한 건, 돌이켜보니 용기라는 느낌이 들면서 용서가 돼. 예전에 싫으면서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끙끙거릴 때는 원망과 후회로 두고두고 속앓이 했어.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게 훨씬 낫네. 속이 후련한 부분이 있어.    

 

내 몫의 팁까지 마부에게 낸 일행에게 한국에서 맛있는 커피를 대접해야겠어. 내가 싫어서 팁을 안 주면 마부는 다른 마부와 비교되며 속상했을 텐데 그 마부를 챙겨줬잖아.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하면서도 몽골의 십 대 소년 마부가 서운하지 않게 해 준 거 고마운 일이야.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어.

기대에 미치지 못한 말타기와 팁을 안 주는 경험이 나쁘지만은 않아. 불편한 마음이 오락가락했지만 싫을 때 싫다고 말하는 용기 있는 나야. 남들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 내 마음의 소리를 경청할 때 후회가 없네. 

내가 순간마다 출렁거리는 감정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 이왕이면 어떠한 상황에서든 아량이 넓으면 좋겠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기도 해.

  

친구야 서두르지는 않을래. 충분히 겪다 보면 아량도 좀 넓어지겠지. 출렁거리는 길에서는 출렁거리고 미끄러울 때는 미끄럼도 타야지. 꼭 필요할 때 이정표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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