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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몽골, 쉼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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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Oct 10. 2023

몽골의 에르덴조 사원과 복드 칸 궁전에서

과거와 현재가 무지개처럼 펼쳐지기를

외국에 가면 궁전이나 사원을 둘러보게 돼. 새로운 건축 양식을 보는 재미도 있고 그곳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엿보는 즐거움도 있어. 궁전이나 사원은 역사적 흔적들이 남아있어서 여행자인 나의 발이 닿는 곳을 이해하는 열쇠야. 

   

에르덴조 사원에 도착하고 비가 잦아들어. 차에서 내리는데 물웅덩이에 발이 빠졌어. 몽골은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 아니라서인지 하수구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 비가 내리면 수도인 울란바토르도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생기더라.

8월 아침인데 쌀쌀해. 가방에서 옷을 꺼내 입는데 양과 염소 떼가 에르덴조 사원의 스투파 주변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주인인 양 나를 반겨.

내가 양 가까이서 사진 한 장 찍으려 다가가면 생각보다 빠르게 양들이 저만큼 가버려. 소리도 크게 내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해. 먹을 거 먹어가면서. 사원 근처에 살면서 남들 시선은 신경 안 쓰고 주변에 무리하게 반응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속도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나 봐. 

    

에르덴조 사원 스투파와 양, 염소

친구야, 몽골인들의 존경을 받는 두 인물이 칭기즈 칸과 자나바자르야.

휘(諱)가 테무친인 칭기즈 칸은 몽골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능력주의에 기반한 강한 군대를 이끈 정복 군주야. 몽골의 국제공항 이름이 ‘칭기즈 칸’이니까 몽골인에게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짐작되지?  

   

1649년 14살의 나이로 2년간 티베트로 불교 유학 간 자나바자르는, 달라이라마로부터 ‘젭춘담바 쿠툭투’라는 최고 권위의 이름을 하사 받고 돌아와서, 에르덴조 사원을 근거지로 하여 몽골의 제1대 법왕으로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대.

자나바자르는 티베트의 천문, 의학, 예술 등 관련 분야의 학문서를 번역하고 '소욤보'라는 몽골의 문자를 창제했어. 불교의 의례와 풍습을 몽골식으로 개혁하고, 몽골 특유의 사원 건축 양식을 창안하고, 탱화와 불상을 제작하고, 모자나 옷과 관련한 생활풍습을 만들어 보급하기도 했대. 우리나라 역대 왕 중에 가장 존경받는 ‘세종대왕’이 떠오르지 않니? 우리나라 전통 혼례에서 연지곤지 찍거나 족두리를 착용하는 게 몽골에서 왔잖아. 자나바자르가 만든 풍습은 어떤 것이었을지 궁금하다. 

    

에르덴조 사원은 몽골 제국의 수도였던 하라호룸(‘카라코룸’이라고 부르기도 해) 유적에 붙어 있는 불교 사원이야. 1580년대에 건설되어 몽골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찰 중 하나로 꼽혀. 에르덴조 사원은 108개의 스투파가 외벽 기둥 역할을 해. 스투파는 국가나 종교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의 무덤 기능을 한대. 몽골 3대 불교 사원 중 하나라는데 황량한 느낌이 들어. 승려가 천 명 넘게 수행했었다는데 건축물도 많지 않고 남아있는 유적도 세심하게 보살펴지지 않는 느낌이야. 한때 몽골에서 승려로 존재하기 어려운 시절을 지나오느라 사원을 돌보는 손길이 없어서였을까. 한국의 사찰 마당을 빗자루로 쓸어낸 듯한 정갈한 느낌이 들지는 않아. 

     

몽골은 13세기에 대장경 전체를 번역했던 나라인데 사회주의 시절 40대 이상의 스님들이 처형당하고 사원과 불경이 불태워졌대. 탄압이 완화된 이후에도 살아남은 스님들은 결혼을 강요당했고 몽골어 독송은 금지되고 티베트어 독송만을 허락받았었대. 

    

알면 알수록 에르덴조 사원의 황량함이 이해되지 않니?

나에게 한국의 사찰은 빗질된 마당의 정갈함이 주는 평화로움이 있어. 몽골의 사원은 초록 마당에 파란 하늘을 품은 소망으로 기억될 것 같아.




햇볕이 뜨거운 날 복드 칸 궁전 박물관을 방문했어. 

제8대 젭춘담바 쿠툭투였던 복드 칸이 살았던 궁전이야. 건축 양식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어. 건물 여기저기를 기둥으로 받치고 있어. 지붕에는 풀이 자라고 금이 간 건물이 많아. 보수가 시급해 보이는데 작업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아. 울란바토르의 신식 건물들 사이에서 관리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좀 아리다.

    

내가 복드 칸 궁중 박물관에 들어갔을 때 페인트 냄새가 심했어. 외국인을 위하여 유물을 설명해 준다든지. 여러 언어로 어떤 내용인지 표기해 주지 않더라. 눈으로 보고 대략 어디에 사용했는지 예상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았어. 얇은 방석을 큼직하게 만들어서 차곡차곡 쌓은 것도 있었어. 왕이 앉아 있기에 그리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어.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만들었을까 아니면 그 위에 앉아서 뭔가를 했을까 궁금하더라. 가구가 투박한 듯하면서도 정성을 기울인 느낌이 들기도 했어. 우리나라도 예전에 못을 사용하지 않고 가구를 만들었잖아, 몽골도 그랬나 봐. 의복은 어디를 가나 눈에 확 띄어. 커다란 모피가 전시되어 있어서 왕의 체구가 크셨나 혼자 상상했어. 몽골이 겨울에 영하 30도 이상 떨어지곤 한다니까 저 정도의 옷을 걸쳐 줘야 하나 싶기도 하고.  

    

페인트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파서 박물관 안에 오래 머물지 못했어. 박물관을 나와서 낡은 의자에 앉아 풀이 한가득 자란 마당을 바라봐. 오래전 복드 칸이 거닐었을 마당. 

    

자식은 일찍 죽고 몽골의 독립을 위해 고심하던 왕은 이 궁전에서 어떻게 살았으려나. 한때 온 세상을 호령하기도 했던 나라가 과거의 흔적을 잘 관리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서 씁쓸해. 한 나라의 왕이 살던 곳인데 이렇게 쓸쓸해도 되나 싶어.

언뜻 보면 투박하고 쓸쓸해도 몽골은 꿋꿋한 힘을 지녔다는 생각도 들어. 300여 년간 만주족이 세운 청(淸)나라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하고, 1924년 세계에서 2번째로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가, 1990년 시장경제 체제 도입하고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여 발전하고 있는 나라잖아.  

    

몽골은 세계 18위의 넓은 면적에 인구는 344만 명이래. 우리나라가 6.25 전쟁 때 세계 최빈국으로 국제사회의 지원받다가 지금은 지원하는 나라로, 문화를 선도하는 국가로 변모한 것처럼 몽골도 어떻게 변할지 몰라. 몽골의 전통과 문화, 생활양식이 잘 보존되고 관리되면 좋겠다. 언젠가 다시 그곳에 갔을 때 하늘과 땅 사이의 구름이 조화롭듯이 과거와 현재가 무지개처럼 펼쳐져 있으면 좋겠어.  

   

박물관에 들어갔던 나의 일행이 느긋하게 걸어 나온다. 갑자기 에르덴조 사원 가는 버스 안에서 불렀던 생일 축하 노래가 떠올라. 여유로운 모습 속에서 노래하며 웃던 미소가 보여. 몽골에서 웃음꽃이 되기로 한 사람들 같아.

복드 칸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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