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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몽골, 쉼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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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Sep 12. 2023

유채꽃, 구름, 악수 그리고 낙타와 썰매

몽골에서 쓰는 편지

친구야 하늘로 손을 뻗으면 구름이 잡힐 것 같아. 고층 건물이 많고 교통 체증이 심한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를 벗어나니 초원의 나라가 눈에 보여. 인구밀도가 1㎢당 2.1명이라서인지 몽골은 땅과 하늘 사이가 구름으로 채워져 있어. 

     

노란색 꽃이 넓은 초원 사이에 펼쳐져 있어. 유채꽃이야. 주변에 허브향이 가득해. 차를 멈추고 유채꽃과 허브향에 취해서 사진을 찍는데 하늘이 근사한 배경을 만들어줘. 파란 하늘에 뭉실뭉실한 구름이었다가 묽게 풀어 색칠하기도 해. 길을 지나던 다른 차들이 우리 일행이 타고 온 차의 뒤편에 주차하고 유채꽃밭으로 사람들이 들어와. 예쁜 꽃을 함께 나누면 미소꽃도 피겠지? 그래서 먼저 사진을 찍은 우리가 자리를 내주고 다시 출발해.

  

몽골에서는 유채꽃을 무슨 용도로 쓰는지 모르지만 드넓은 초원 가운데 노란색 꽃은 시선을 확 끌어당기네. 차를 타고 움직이는데 노란색 꽃이 계속 보여. 한참을 노란색으로 물들었다가 초록으로 덮였다가 다시 노란색을 보여주는 길을 지나. 

몽골에서 유채꽃과 만날 줄은 몰랐어. 자연의 나라 몽골은 나한테 보여줄 것이 많은가 봐. 몽골의 순간순간이 기대 돼. 

    

밤 비행기에서 잠을 못 잔 나는 잠이 들었다 깨기를 반복해. 도로가 움푹 파인 곳을 지날 때 엉덩이가 들썩이며 두 발이 겅중거려서 눈을 뜨면 파란 하늘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펼쳐져 있어. 구름이 자기한테 기대라는 듯이 푹신하게 나를 바라봐. 다시 잠이 들었다가 사람들이 ‘양이다!’ 하는 소리에 눈을 뜨면 도로를 지나는 양 떼에 차가 멈춰. 소들은 자기들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차량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로에 볼일을 봐. 소가 자기 볼일을 다 끝내고 갈 길을 갈 때까지 우리는 기다려.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들어갔는데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가득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음식을 주문하려고 기다려. 

앗, 내가 앞에 서 있는 분의 발을 건드렸어. 몽골에서는 발을 건드리면 악수를 청하며 사과해야 한다는데 어쩌지? 

내가 망설이는 사이 내 앞에 서 있는 분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멈춰 있어. 나를 쳐다보지 않아. 

주뼛거리며 반쯤 내민 내 손이 갈 곳을 잃었어. 내가 적극적으로 내 앞에 서 있는 분의 손을 잡아야 하는지 눈이 마주치기를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어. 

    

몽골 사람들은 싸우다가도 발을 건드리면 악수를 하고 다시 싸운대. 몽골에서 누군가의 발을 밟으면 반드시 악수한다는 생활 속 예의를 몽골에 도착한 첫날부터 놓치고 있어. 앞에 서 있는 분의 손을 잡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눈치 보고 있어. 나 몽골 땅에서 몽골 사람들과 열린 마음으로 인연 맺고 싶은데 예의 없는 여행자가 된 기분이야. 속으로 앞사람에게 ‘발을 밟아서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며 사과해. 그분에게 내 속마음이 전달되면 좋겠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 여행하는 이들이 어젯밤 잠을 설쳤고 차에서 졸다가 깨서인지 양고기 가득한 점심을 잘 먹지 못해. 가이드가 몽골인들은 여름에는 양고기 위주로 먹고 겨울에는 소고기 위주로 먹는다고 하네. 한국인들이 이열치열로 복날에 삼계탕 먹듯이 몽골인들은 따뜻한 성질의 양고기를 더위에 지칠 수 있는 여름에 먹나 봐. 인삼과 맞먹는 보양식품이라는데 냄새가 좀 누릿하다. 

    

친구야 엘승타사르하이에 도착했어. 미니사막이라고도 불러. 잠시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달려왔는데 모래 언덕이 쫙 깔렸어.

친구야 나 여기서 쌍봉낙타를 타. 낙타가 사막으로 온 이유가 경쟁을 피해서래. 그늘 한점 없는 곳에서 해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자기 몸의 일부와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기도 해. 모래바람을 감당하려 눈썹이 길어졌을까 아니면 원래 긴 눈썹을 가졌을까? 

    

살아있는 생명은 딱딱하지 않구나. 낙타 특유의 냄새가 나고, 낙타가 나를 태우고 일어설 때 땅에서 훌쩍 높이 올라와서 놀라지만 무섭지는 않아. 강아지도 만지지 못하는 내가 낙타의 봉을 만져. 생각보다 부드러워.  

내가 탄 낙타의 얼굴 부위에 파리가 잔뜩 붙어있어. 낙타가 불편한지 자꾸 얼굴을 세게 흔들어. 파리는 잠시 떨어지는 시늉만 하고 다시 낙타 얼굴에 붙어버려. 내가 모자 안 날아가게 하고 햇볕도 피하려고 스카프를 두르고 있는데 스카프 풀어서 낙타 얼굴에 붙은 파리 쫓아주고 싶다. 내가 스카프를 흔들어대면 낙타가 놀라서 난리가 날까? 

파리가 거추장스러운지 종종 얼굴을 흔들면서도 쌍봉낙타는 나를 태우고 잘 걸어. 몸집이 워낙 커서인지 낙타를 탄 내 몸도 편안해. 낙타에 앉아서 리듬을 타고 있어. 기분 좋아. 

가까이서 보니 낙타의 눈썹은 털 같아. 살아있는 생명의 눈썹이니 보기보다 부드러울지도 모르겠어. 저 정도 돼야 사막의 모래를 견딜 수 있나 봐. 경쟁에서 스트레스받기보다 어려운 환경을 견뎌내기로 한 낙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고단한 순간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기는 대단한 용기잖아. 살면서 도망치고 싶은 날 사막 한가운데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짐을 짊어지고도 당당히 걸러가는 낙타를 기억하고 싶다.

    

낙타를 타고나서 누릿한 냄새가 나는 손을 씻고 모래썰매를 타러 가. 폭폭 빠지는 모래 언덕을 올라가서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거야. 언덕을 오를 때는 몰랐는데 썰매를 타고 내려오려니 몹시 가파르다. 좀 아찔해. 

   

그런데 썰매가 내려가지 않아. 올해 여름 몽골에 비가 자주 내렸대. 보기에는 모래가 바싹 말랐는데 썰매가 쭉쭉 내려가지는 않네. 일행들이 다들 썰매를 타보겠다고 기를 쓰고 있어. 

    

친구야 나의 모래썰매는 어땠을까?

썰매 타는 가파른 모래 언덕에 놀라고 밀리지 않아서 뭐지 싶었지만 뒤에서 일행이 내 썰매를 밀어주니까 내가 쭉 내려갔어. 속도에 비명을 질렀더니 모래가 입안 가득 들어와. 무서운 비명이 아니고 보통 때와 다른 속도감에 터지는 비명. 소리를 확 지르고 속이 뚫리는 느낌이야. 

    

친구야 일행 중에서 내 모래썰매가 제일 잘 미끄러졌어. 모래썰매 타는 팁을 너에게 알려줄게. 썰매가 내려가기 시작하면 몸을 뒤로 젖혀서 모래와 내가 친해져야 해. 썰매에 기댄 내 몸을 모래에 맡겨야 해. 모래가 내 얼굴과 온몸으로 달라붙는 걸 수용해야 해. 기꺼이. 

   

온몸이 모래에 뒤범벅된 채 오늘 잠을 잘 전통게르에 가. 화장실과 샤워실이 보이네. 전기도 들어와. 와, 나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겠어. 친구야 긴 하루가 어둠으로 덮이기 전에 씻을게. 목욕재계하고 밤하늘의 별을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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