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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몽골, 쉼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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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Dec 12. 2023

몽골 어기 호수에서

평화가 깃든다

어기 호수에 도착한 우리는 게르를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가 핀다. 호숫가에 자리 잡은 게르가 시설이 깨끗해 보여서다. 2시가 넘어서 도착했으나 점심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해서 바람이 몹시 부는 호수를 산책했다. 한국의 10월 말쯤 기온이라고 할 찬바람에 우리는 옷을 여미지만, 무슨 음식이든 맛나게 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뱃속을 어루만지며, 게르에 대한 기대로 흡족하다. 

  

어기 호수 산책


방을 배정받고 게르 안에 들어갔을 때 탄성이 절로 난다. 내가 잠자게 된 게르는 30명은 모여서 놀아도 될 정도로 크고 넓다. 킹사이즈로 보이는 침대가 가운데 있고 양쪽 옆으로 그동안 자던 게르의 침대보다 더 큰 침대가 네 개나 있다. 등받이 높은 의자가 2개 있고 이동할 수 있는 크기의 원목 의자가 열 개 넘는다.  

  

몽골 여행하며 한방을 쓰는 우리 세 명은 서로 작은 침대에서 자겠다고 다툰다. 넓은 침대를 서로 양보한다. 내가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사이 짐을 올려두고 자리를 점유한 두 사람은 절대 큰 침대로 가지 않겠다고 해서 내가 넓은 침대에서 자게 됐다.  

  

늦은 점심 먹으러 레스토랑에 들어서며 흡족하다. 원두커피 기계도 반갑다. 반찬을 챙겨서 들어갔는데 다른 테이블 음식 나오는 모습을 보니 반찬을 따로 챙길 필요가 없어 보인다. 깔끔한 인테리어에 햇빛이 들어오는 것마저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창문 밖이 찬란한 하늘로 배경을 만들어주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쳉헤르 온천의 숙소가 낡기는 했어도 음식은 담백하고 맛있었는데 어기 호수의 레스토랑은 시골티를 벗어낸 리조트 느낌이 가미됐다. 테이블 세팅에서 어기 호수는 접시를 겹쳐서 사용하여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처음에 빵과 함께 나온 블루베리보다 작은 열매가 통째로 들어간 잼과 버터에 우리는 몽골 아르한가이주 어기 호수에 있는 이 숙소를 예약한 여행사 대표를 칭찬한다. 담백한 식사는 담백해서 좋고 멋을 낸 세팅으로 차려주는 음식은 또 그런대로 사람을 즐겁게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즐기는 나의 일행들이 정겹다.

     

늦은 점심을 먹은 우리는 배낚시를 하기로 했다. 물고기 잡기 내기를 해서 지는 팀이 저녁에 와인을 사기로 했다. 저녁에 몽골의 대표 음식 허르헉을 먹기로 했는데 내기를 해서 더 재미있는 식사를 하려고 한다. 

    

호수에서 배를 타기 전 시간이 좀 지체됐다. 우리가 신청하지 않은 바나나 보트 등 여러 가지를 가지고 왔고 배낚시를 하려는 사람은 총 10명인데 보트는 4명씩 탈 수 있어서다. 날씨도 제법 선선해서 그냥 배낚시만 하기로 했고 두 명이 배를 안 타겠다고 해서 그냥 출발했다. 우리를 호수로 내보낸 두 사람은 강가에 앉아 바람맞고 있어서 낚시하며 마음에 걸린다.  

   

어기 호수 낚시


나는 낚시가 처음이다. 낚시는 무조건 지렁이를 끼워야 하는 줄 알았다. 낚싯대에 먹이를 끼우지 않고 원을 그리며 멀리 던져야 하는데 쉽지 않다. 일행이 나에게 낚싯대 던지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원을 그리기는 고사하고 아래로 힘없이 툭툭 떨어뜨린다. 어정쩡하게 던진 낚싯대를 흔들고 있으려니 손목이 아프기도 하다. 손맛에 낚시한다고 하던데 계속 흔들어도 입질이 없어서 아쉽다. 낚싯배 젊은 주인이 여기저기로 자리를 옮기지만 물고기는 낚싯배 주인이 잡은 한 마리가 전부다. 작은 물고기에 환호하며 사진 찍고 강물에 풀어준다. 잘 자라라고. 


파랗던 하늘에 회색 구름이 낀다. 곧 비가 올 것 같다며 돌아가야 한단다.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은 우리와 달리 다른 배에 탄 사람들은 3마리를 잡았다가 풀어줬다고 한다. 우리는 선착장에 도착하여 숙소로 돌아오면서 물고기를 어떻게 잡았는지 어린아이처럼 재잘댄다. 어제 베트남 소스를 나눠준 분이 낚시도 잘해서 낚싯대 던지는 법부터 다 가르쳐 줬다고 한다. 그분의 활약에 우리는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숙소에 다다를 즈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깨끗한 샤워 시설이 있어서 저녁 식사하기 전 씻으려고 나갔다가 우박을 맞았다. 내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의 얼음이 순식간에 떨어져서 바닥이 얼음 알갱이로 덮인다. 바람도 너무 세서 우산을 쓰고 있을 수가 없다. 우산을 접고 숙소를 향해 종종거린다. 샤워장에 중간쯤 가다가 게르로 돌아왔는데 온몸이 젖었다.

     

낚싯배 젊은 주인은 비가 내리는 걸 정확하게 예측했다. 우리가 숙소로 돌아갈 시간까지 계산해 내다니 놀랍다. 자연의 나라 몽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비가 언제 내릴지 직관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하나 보다. 호수 한가운데서 우박을 맞았으면 어쩔 뻔했나 싶어 아찔하다. 바람도 너무 세서 작은 보트에 앉은 우리의 안전이 어땠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우박을 동반한 비가 내린 시간은 길지 않다. 짧고 굵게 휘몰아쳤다. 몽골에는 ‘조드’라는 기상이변이 있다. 영하 40도가 넘는 혹한이 계속되고, 풀이 자라나지 않는 재해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8월은 몽골의 여름에 해당하는데 얼음을 동반한 비가 내리는 걸 경험하고 나니 몽골의 기후변화가 예사롭지 않다. 한국도 겨울에 장미, 개나리꽃이 피거나 민들레를 볼 때가 있는데 몽골은 날씨의 기복이 커서인지 더 심각하게 느껴진다.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해서 식당으로 갔다. 허르헉과 와인으로 세팅하였다. 늦은 점심을 먹은 우리지만 허르헉 맛있다며 신나게 먹는다. 허르헉에 섞여 나온 감자도 맛있다. 와인은 금세 동이 난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마칠 즈음 하늘의 붉은 기운이 느껴진다. 우박까지 섞여 내리던 비는 그치고 어느새 하늘은 붉은 저녁놀로 바뀌며 어둠으로 덮이고 있다. 오늘 밤에도 별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밤 내가 잠자는 넓은 게르에 모두 모여서 놀기로 했다. 손병호, 007 게임을 하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손병호 게임 덕분에 일행들에 대해서 자세히 보게 된다. 우리는 단발머리 기장에 문제가 있다고 항의하며 손가락 안 접으려 노력하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 손가락을 접게 할까 고민하다 자기  손가락 다섯 개가 다 접히는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뒤늦게 몽골 보드카를 들고 와서 합류한 가이드도 재미있어한다. 게임 규칙도 잘 파악하고 게임에서 밀리지도 않는 똑똑한 가이드다. 

   

밤이 깊어 간다. 오늘 밤에도 별이 떴다. 비가 언제 왔었는지 알 바 아니라는 듯이 청정하다. 춥지만 맑은 공기가 시원하다. 쳉헤르 온천에서 어기 호수에 오면서 빗길의 험난했던 순간, 우박과 바람을 동반한 비 내리던 순간은 어기 호수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으로 정화되어 평화가 깃든다.    

 

어기 호수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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