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고 싶은 곳
친구야 아무 생각 안 하고 그냥 어디서 잠시 멈춰있고 싶은 날 몽골의 테를지에 가면 어떨까?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싶을 때는 삶에 지쳤을 때이고, 지금 처한 상황에서의 멈춤은 전환이 필요한 순간이잖아. 도시, 먹거리, 예술 등의 볼거리를 찾지 않고 몽골로 떠나는 이유가 주변의 갖은 소음을 끄고 오롯이 내면과 만나고 싶어서인지도 몰라.
15일 동안 몽골 여행하며 네가 언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가보라고 말하고 싶은 곳이 테를지야.
인천 공항에서 3시간 30분 정도 비행기를 타면 몽골에 도착해. 칭기즈 칸 국제공항에서 차를 타고 테를지 국립공원 숙소로 곧장 가. 리조트형 게르가 많으니까 쉼이 절실히 필요한 날 비행기표와 숙소를 예약하고 공항에서 숙소까지 이동할 교통편만 예약하고 떠나 봐. 너의 여행이 아무 생각 없이 멈추고 싶어서라면 완벽한 일정을 짜려고 애쓰지 말고 훌쩍 떠나는 것에 초점을 둬 봐.
나는 울란바토르에 머물며 당일치기로 테를지 국립공원 방문했어. 근처에 칭기즈 칸 동상 박물관이 있는데 기마상 높이가 무려 40m라고 해. 세계에서 가장 크대. 박물관에 들어서면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칭기즈 칸 부츠도 있어. 지하에는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와. 전망대 오를 때 엘리베이터도 있는데 너무 작아서 네 명 정도밖에 못 타. 전망대는 말의 목과 머리 부분에 만들어져 있어. 전망대에 가려면 병목현상이 벌어지지만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려서 들르면 좋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몽골의 초원이 볼만하거든. 칭기즈 칸이 그 지역을 지날 때 황금 채찍을 발견한 곳이라니까 전망대에서 칭기즈 칸 동상도 바라보고 드넓은 초원을 보며 가슴을 쫙 펴보면 좋아. 칭기즈 칸 동상 박물관에서 차로 조금 더 가면 그의 어머니상이 있어. 그런데 문이 닫혀 있어서 밖에서 쳐다보기만 했어. 세계를 정복했던 칭기즈 칸이 말을 타고 있는 동상을 멀리서 마주하고 있는 어머니 동상을 보며 누구나 세상에서 ‘내 편’이 필요한가 싶어. 절대적으로 지지해 주고, 잘되면 잘 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친절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한 사람 말이야. 칭기즈 칸의 어머니는 칭기즈 칸이 이복형을 죽였을 때 불같이 화를 내며 아들이 그릇된 행동하지 못하도록 이끌었기 때문에 추앙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절대적 ‘내 편’은 친절하면서 바른길로 인도하는 힘을 지닌 이여야 하나 싶어.
칭기즈 칸 동상 박물관에서 차를 타고 가다 보니 새로운 전경이 펼쳐져. 테를지 국립공원이야. 강이 보이기도 하고 숲이 보이기도 하고 고급스러운 게르가 보이기도 하고 말을 타고 있는 사람도 있어. 게르로 지어진 가게에는 한국의 방송 장면을 붙여뒀어. 한국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한국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된 적이 있다고 붙여두고 영업하네. 몽골에서 며칠 지내다 보니 호쇼르 사진이 눈에 띄어. 몽골에서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음식이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음을 경험한 상태라 눈에 더 잘 보이나 싶어. 함께 몽골 여행하는 일행들도 생각이 비슷한지 점심으로 호쇼르 먹자고 해. 나와 일행들이 들어간 식당은 양고기, 치즈, 김치를 넣은 호쇼르를 팔아. 가격도 싸고 맛도 좋아. 테를지에서 먹은 호쇼르는 호떡 모양이야. 쳉헤르에서는 이걸 반으로 접어서 납작한 만두처럼 빚은 모양이었어. 지역이나 사람마다 호쇼르 모양이 다른가 싶어. 중요한 건 맛있고 싸고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는 사실이야.
차를 타고 거북바위(Melkhii Khad)까지 이동하면서 바라보는 테를지의 풍경이 참 좋아. 국립공원이라는 사실밖에 모르지만 멋진 풍경 속의 게르에서 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눈 내린 겨울 풍경도 한 폭의 그림이겠구나 싶어. 어떤 계절이든지 정지화면으로 고요히 멈춰있고 싶은 곳이야.
한국으로 돌아와서 테를지에 대해 알아보니 1993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까지 길이 포장되어 있어서 접근이 비교적 용이하고 외국 관광객뿐만 아니라 몽골인들도 즐겨 찾는 휴양지래. 그러나 공원이 대부분 개발되지 않아서 관광 캠프에서 상류로 80km 떨어진 20m 깊이의 빙하 호수인 하긴하르 호수와 상류로 18km 떨어진 천연 온천인 예스티 온천은 방문이 쉽지는 않아. 하긴하르의 뜻이 ‘높은 곳에 있는 검은 호수’라고 해. 방문하려면 헬리콥터를 이용하기도 하고 사륜 차량이 짝을 이루어서 견인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움직이거나 말을 타고 캠핑하며 며칠에 걸쳐 이동한대.
친구야 테를지 국립공원에 대해 미련이 남아서 너에게 권하고 싶은 장소가 되었을까? 실패하더라도 경험한 일은 미련이 별로 없는데 시도조차 하지 않은 일은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고 미련이 남잖아. 툴강을 만나면서부터 테를지가 멋진 곳이구나 알아차렸어. 툴강을 지나 거북바위(Melkhii Khad)에 도착할 때까지 펼쳐진 풍광이 그림 자체였어. 나중에 알아보니 그 부분은 테를지의 극히 일부일 뿐이고 라마 불교 사원인 아리야발 사원(새벽사원)과 독서하는 노인(Praying Lama Rock)이라는 암석도 있더라. 아리야발 사원은 코끼리를 형상화했는데 108 계단을 올라가서 보는 풍경이 편안하대. 말을 타고 사흘 동안 캠핑하며 가야 하는 호수는 못 보더라도 테를지를 좀 더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쉬워. 휴양지라서인지 게르는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한 것 같더라. 내가 처음 잠을 잔 게르는 벌레가 많았어. 천장에서 벌레 떨어질까 봐 손수건을 얼굴에 올려두고 잤어. 그런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테를지의 유리창이나 발코니, 욕실 있는 게르에서 잠을 자면 시설이 어떤 면에서 좋은지 알기 어려울 텐데 내가 너에게 과도하게 추천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친구야 마음이 시끄러워서 환경에 변화가 필요할 때 내가 훌쩍 몽골 가는 비행기를 타고 싶어. 몸 힘들지 않도록 3시간여 만에 공항에 도착해서 테를지로 이동할래. 눈앞에 막혀있던 시선을 들어서 넓은 초원을 응시하고 싶어. 다닥다닥 붙어있는 성냥갑 같은 숙소가 아니라 게르 독채에서 잠자는 게 지겨울 때까지 잘래. 실컷 자고 일어나서 수테차 한 잔 마시고 호쇼르든 뭐든 요기를 하고 초원을 무심하게 걷고 싶어. 걷다가 지치면 숙소로 돌아와 먹고 자고. 일어나서 또 걷고. 소음은 꺼지고 내면과 묵직하게 만나면 좋겠다. 그렇게 머물다가 공항 가는 길에 있는 고비 아웃렛에 들러 따뜻한 캐시미어 스웨터 하나 사 입을래. 일상으로 돌아오는 몸과 마음이 따뜻해서 기분 좋게.
나에게 쉼이 필요한 날 테를지에서 머물고 싶어. 혹시 너에게 쉼이 필요한 날에도 몽골의 테를지를 추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