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는 모든 것이 보석 같아
기다림은 종종 보석 같아.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5일 후에 타야 해. 울란바토르에서 홉스골까지 900km가 넘어. 도로 사정이 열악해서 가는 데 이틀이 걸려. 홉스골 가다가 중간에 잠을 자야 해. 홉스골에서 울란바토르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
여행경비가 몽골로 오기 전날에 안내되고 홉스골에 대한 일정표는 아예 나오지 않아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여행을 하고 있어. 진행되는 대로 따르겠다고 마음을 모으지만 가끔은 조급해지는 순간도 있어.
몽골에서 지내며 지도를 보니 쳉헤르나 어기 호수에서 그냥 홉스골로 떠나는 것이 최상이었어. 아니면 울란바토르에서 무릉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해서 움직였어야 해. 하지만 함께 여행하는 사람마다 각자의 사정상 몽골에 들어가는 날과 나오는 날이 제각각이라 울란바토르에 사는 지인이나 여행사에서 일정을 잡기가 곤란했대. 엘승타사르해, 하라호름(에르덴조 사원), 쳉헤르, 어기 호수는 여행사의 안내를 받고 테를지는 울란바토르에 사는 지인을 통해 몽골 현지인의 안내를 받았어.
몽골에서는 요즘 관광객 안내하는 아르바이트가 인기 있대. 며칠 활동하면 자신의 한 달 월급보다 수입이 많다고 해. 몽골은 땅이 넓고 도로 사정이 나빠서 한 번 움직이면 일주일씩 움직이곤 하는 데 수입이 좋으니까 무단결근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도 있대.
나와 일행에게 테를지와 홉스골 안내를 해준 사람은 사업을 하는 30대야. 예전에 리조트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그는 영어로 우리와 소통해. 나의 일행 중에 영어를 매우 능숙하게 하는 사람이 있어서 불편하지는 않아. 우리는 그를 ‘막내’라고 불러. 몽골어로 이름을 알려주는데 ‘막내’와 비슷하게 들려서 함께하는 내내 그렇게 부르고 있어. 그는 수시로 직원과 통화하고 노트북을 켜고 작업하곤 해.
여행이 제대로 진행 안 돼서 답답하냐고?
솔직하게 말하면 때로는….
그런데,
느림에서 오는 평화가 있어. 뭔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길거리에서 만나는 하늘과 땅의 조화로움을 바라보는 평화, 새로운 인연을 짓게 될 때의 즐거움. 기다림이 주는 보석이라고 할까.
울란바토르에서 홉스골로 출발하기를 5일 동안 기다리며 현지 여행사와 합류할 방법도 찾아봤지만 여의치가 않더라. 웬만한 여행지는 앱을 통해서 예약할 수 있는데 몽골은 그런 서비스가 적용이 잘 안 되더라고. 울란바토르에 사는 지인도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기다리는 사람이나 홉스골로 떠나려는 우리의 일정을 계속 신경 쓰는 눈치야. 무턱대고 홉스골만 고집하기보다 순간마다 지어지는 인연과 즐겁게 지내려고 마음 모으게 돼.
홉스골에 가려고 기다리던 우리는 오늘 출발 못 하면 포기하기로 했었어. 어제 출발할 줄 알았는데 숙소 예약이 안 되어 못 간다는 연락을 받고 인연이 되면 가고 안 되면 못 가겠거니 했어.
오늘이 홉스골에 갈 수 있는 마지막 날이야. 기반 시설이 열악한 몽골에서 중간에 어떤 돌발상황이 닥칠지 몰라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날에 울란바토르에서 지내려고 해.
오늘, 홉스골로 출발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 안내를 맡은 막내가 약속보다 늦게 오고 차량 정비하느라 기다리는 시간도 불편하지 않아. 교통체증으로 울란바토르를 벗어나는데 시간이 지체돼도 여유로워. 울란바토르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코가 아팠는데 시내를 벗어나니까 공기도 맑고 하늘의 구름은 어쩌면 그리 아름다운지 몸도 마음도 나긋나긋해.
홉스골로 가며 슈퍼에서 물과 간식 등을 사고 화장실도 들러. 주유소에서 기름은 넉넉하게 채워. 길을 가다 도로를 점령하고 있는 양, 소, 말 등을 만나면 웃음이 나. 새끼가 어쭙잖게 따라가는 모습은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까지 바라보게 돼. 홉스골로 떠나는 여행을 즐겨. 맛있는 몽골 초콜릿을 먹으며 달달하게. 기다린 만큼 행복할 자격이 있다는 듯이.
셀렝게주에서 CU편의점 입점한 건물의 2층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어. 우리 뒤쪽 테이블에도 한국인 몇 명이 있는데 말 한마디 없이 식사하고 일어나네. 다들 지쳐 보여. 20대로 보이는 사람들인데 피곤해 보여서 우리는 말을 붙이지 못했어. 점심을 먹고 CU에 들렀는데 한국 매장과 비슷해. 김밥 등 먹을 게 많아서 편의점에서 식사했어도 괜찮았겠다 싶어. 매장에 한국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도 많아. 청소해 주는 분도 있어서 매장과 화장실이 쾌적해. 편의점이 장사가 잘되는 것 같아. 계산할 때 줄 서서 기다려.
홉스골을 향해 가면서 가끔 가로수를 만나. 한글로 ‘수원의 숲’이라는 푯말을 보기도 했어. 길을 가다가 생선을 걸어두고 판매하는 곳을 발견해. 초원을 지나다가 생선을 훈제해서 판매하는 모습이 신기해 보여. 우리는 배가 부르지만 생선 한 마리 구매하고 근처의 게르 앞에 테이블이 세팅되어 있어서 닭꼬치와 음료수도 주문해. 말과 돼지가 번갈아 지나가고 현지인들은 우리가 신기한지 흘끔거리고 아이들은 우리 앞에 와서 쳐다봐. 꼬치를 구워주는 사람이 어린 남학생이야. 고등학교 1학년 정도의 착해 보이는 학생. 몽골인들은 우리를 보고 우리는 그 학생이 일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예뻐 보여서 쳐다보게 돼. 이름이 이르트노이래. 이 친구도 방학이라 일하고 있다고 하더라. 숯불에 구운 꼬치를 식빵이랑 야채와 함께 접시에 담아줘서 챙겨간 비닐장갑을 끼고 생선과 함께 먹어. 훈제가 짭짤해서 식빵이랑 야채와 잘 어울리더라. 꼬치는 배가 불러서 남겼어. 점심을 먹기 전에 만났으면 한 끼 식사로 좋았을 것 같아.
초원을 달리는 말들을 지나고 숲이 어우러진 자연경관을 지나며 종종 비도 만나. 저 앞쪽에 해가 떠 있는데 비가 내려. 내가 지나는 곳이 먹구름이다가 하얀 구름이 근사하게 떠 있기도 해. 무지개가 보였다 사라지고 광산이 보이더니 제법 큰 도시에 접어들어. 우리가 하룻밤 자고 갈 볼강주 에르데네트의 테소로 호텔(Tesoro Hotel and Restaurant)에 도착했어. 해가 지고 있어. 가이드 겸 운전사인 막내는 지인을 만나고 내일 아침에 온대. 룸에 들어가니까 컵라면이 보여서 웃음이 나.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는 증거인지 몽골의 어디를 가나 익숙한 먹거리가 있네.
우리가 잠시 호텔 주변을 산책하는데 여기저기 조그만 슈퍼가 많아. 연립주택이라고 해야 할지 아파트라고 해야 할지 주택 사이를 걷기도 했는데 입구가 열쇠로 열어야 하는 것 같아. 궁금하지만 가까이 가서 확인하기는 부담스러워서 그냥 지나치는데 주차장은 자동차로 빼곡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럴듯한 차림새야. 근처에 큰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 경제적으로 풍족한가 싶어. 길을 걷다가 좀 헷갈려서 어머니와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십 대에게 길을 물었는데 영어로 친절하게 설명해 줘.
친구야 나 오늘 혼자 자. 우리가 예약한 호텔 방이 두 개야. 얼마 만에 혼자 있는 거지? 내일부터는 게르 하나에 현지 안내인 막내까지 포함해서 넷이 자야 하니까 오늘 밤 혼자 있는 시간도 즐거워. 홉스골 가는 길이 참 좋다. 만나는 모든 것이 보석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