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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몽골, 쉼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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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Feb 27. 2024

파도 소리 살랑대는 호수

몽골 홉스골 호수에서


핫갈에 있는 라오카네 집 마당에서 브런치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홉스골 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출발했어.

어제 잠을 잤던 숙소 근처의 홉스골 호수는 남쪽 끝에 조그맣게 삐져나온 부분이라 폭이 좁았어. 오늘 포장되지 않은 길을 먼지 날리며 가다 보니 호수의 폭이 점점 넓어져. 친구야 내가 곧 바다처럼 넓은 호수와 마주할 것 같아 두근거린다.   


3월 초에는 홉스골 호수에서 파란 진주(Blue Pearl) 얼음 축제가 열린대. 축제에는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10여 개 마차 팀이 참가하는 대회가 열리고 전통문화 공연, 블루컵 시인대회, 겨울 전통의상 패션쇼, 아이스 스케이트 대회, 얼음 위 줄다리기 등의 행사가 있대. 몽골은 8월 말에도 수시로 패딩 점퍼를 입는데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겨울에는 어느 정도일까. 최대 깊이가 250m가 넘는 호수가 꽁꽁 얼어붙은 상태에서 축제할 정도면 진짜 추울 것 같아. 추위에 대비해서 잘 싸매고 행사에 참여하면 추운 겨울 꿈같은 추억을 쌓을 수 있을까.


홉스골 호수 안에 많은 차량과 장비가 침몰되어 있대. 거기에는 연료를 실은 차량도 많다고 해. 홉스골 호수를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록하려고 하는 몽골에서는 호수에 침몰한 기계들을 인양하려고 노력하고 있대. 가이드에게 이야기를 듣는데 군인들이 차량을 세워. 비가 내려서 길이 유실되어 호수를 한눈에 전망하는 곳에 갈 수 없다고 하네.

     

산책하려고 자동차에서 내리며 찍은 인양한 배 사진


아쉬워서 차에서 내려 잠시 산책했어. 얼마 전 인양한 배가 녹슨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사진을 찍으려고 했더니 군인이 제재해. 군인이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몽골어로 단호하게 말하는데 괜히 움찔해. 총을 들고 있어서 더 그랬어. 그래도 잠깐 산책하는 건 봐줘서 고마웠고.

     

우리는 다른 길로 돌아서 호수 위쪽으로 가기로 했어. 포장하려는지 길의 형태는 갖췄는데 돌과 자갈이 가득해서 덜컹거리고 먼지가 뽀얗게 날리는 길을 가. 호수 주변일 텐데 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아. 가끔 마주 오는 차량을 보는데 먼지가 7cm쯤 쌓인 것 같아. 내가 타고 있는 차도 만만치 않아서 사이드미러가 흙색이야. 한참을 달리다 보니 차량이 한 대 멈춰 있어. 타이어 하나가 완전히 찢어졌어. 우리 차도 멈춰서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묻지만 여분의 타이어가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만 남기고 지나와.

    

남 일 같지 않아. 길이 너무 울퉁불퉁해. 친구야 여행하면서 생각이 단순해지는 것 같아. 길이 포장되어 있지 않아 불편하다는 마음이 올라오는 게 아니라 내내 운전하고 있는 막내에게 고맙고 우리가 타고 있는 차가 잘 달려줘서 고마워. 먼지가 날리면 차의 창문을 닫으면 돼. 길거리에서 먼지가 일면 입을 다물면 되고. 배가 고픈데 식당이 보이지 않으면 맛있는 몽골 초콜릿을 먹으면 돼. 녹아서 형태가 좀 뭉개졌어도 맛은 좋아.

    

홉스골 주변이라서인지 양보다 야크가 더 보여. 얘네들은 차를 만나면 양보다 더 오래 가만히 서 있어. 차를 마주 보고 ‘누구지’ 하고 지켜봐. 서두를 일 하나 없는 인생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아. 천천히 느긋하게 갈 길 가면 그뿐이라고…    

 

친구야 야크를 만나면 야크를 보고, 차가 지나가면 차를 보고, 숲을 만나면 숲을 보다가 멀리 호수가 보여. 어제 잠을 잔 숙소 앞 호수는 한적한 북한강이 연상되었다면 오늘 만나는 호수는 훨씬 넓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서 점프하는 사진을 찍어. 생각보다 높이 점프하지 못하고 순간 포착은 느려서 멋진 점프 사진을 남기지 못하면서도 한바탕 웃는다.     


   

홉스골 호수와 구름


호수가 보이는데 가까이 가기까지 시간이 소요돼. 몽골에서는 이상하게 저 앞에 보이는 곳이 차로는 한참을 움직여. 눈으로 인식한 것보다 거리가 멀어. 내가 주변의 건물을 인식해서 거리를 계산하는 습관이 있나 봐. 몽골의 자연 속에서는 거리가 잘 계산되지 않아. 몽골에서 내 눈이 거리감을 좀 잊어도 지내는데 불편하지는 않아.     


숙소가 보이기 시작해. 차가 호수와 숙소 사이의 길을 달려. 벌써 여름 영업을 마무리한 곳도 많네. 차로 천천히 가면서 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숙소에 전화해서 가격을 물어봐. 어젯밤 묵은 숙소의 1/3 가격에 카페도 있는 곳에서 자기로 했어. 길을 건너면 드넓은 호수가 펼쳐지는 곳이야.    

 

카페에서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고 숙소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 마시는데 한 여성이 우리더러 한국에서 왔냐고 물어. 자기는 이란 출신으로 한국의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대. 그 숙소에서 며칠째 묵고 있다면서 산책하기 좋은 곳을 우리에게 알려줘. 울란바토르로 돌아갈 때 중간에 묵기 좋은 숙소도 알려줘. 내일 아침 해돋이 볼 장소까지. 커피 한 잔 함께 마시면서 유쾌해. 몽골을 여행하는 사람으로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며 기분 좋아. 한국에서도 여행을 많이 해서 내가 모르는 장소의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어. 친구야 앞으로는 나도 캠핑을 좀 해야 할까 싶어. 캠핑하며 찍은 사진이 멋지더라고.   

   

우리도 느긋하게 산책을 시작했어. 햇볕은 따뜻하고 호수는 잔잔하고 우리는 각자의 속도대로 마음껏 걸어. 호수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잠이 들기도 하고 앉아서 명상도 해.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 평화가 온몸으로 퍼져.     



선선한 기운이 들 때 일어나서 숙소로 가기 시작해. 숙소에 도착하니 어둠이 스멀스멀 덮이고 있어. 씻고 나니 어둠이 가득하다. 밥 먹을 시간이야. 식당에 미리 주문했던 식사와 우리의 김치와 김 등을 곁들여 먹어. 아까 만난 이란 친구도 함께. 이란 친구가 영국 친구도 소개해줘서 우리 테이블이 잔칫집처럼 왁자해. 이 친구들이 호수에 캠프파이어를 준비해 주겠대. 가지고 있는 옷을 다 껴입고 비도 조금 내리고 있어서 우비도 입고 동석해. 간간이 비는 내리는데 별은 떠 있어. 영국에서 온 친구의 별 사진이 너무 멋져서 오늘 밤 나도 열심히 카메라를 누르지만 내 눈에 보이는 별이 사진으로 잘 담기지 않네.   

  

사진 찍기를 멈추고 가만히 머물러. 모닥불이 꺼지고 깜깜한 어둠이 덮인 호수 가까이에서는 파도 소리가 들려. 아름다운 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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