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을 떠날 준비
떠날 때를 아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답다지?
친구야 홉스골 호수를 떠나기가 아쉽다. 하루만 더 머물다 가고 싶은 홉스골 호수가 멀어져. 나의 뒷모습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물들었을까.
사는 동안 몽골의 홉스골 호수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홉스골 호수를 다시 찾지 못해도 내가 자연 속에, 자연이 내 속에 거하는 충만함이 기억 속에 남아서 두고두고 행복할 것 같아.
홉스골과 멀어지고 멀어져.
비포장도로에서 포장도로로, 생선 훈제를 팔던 곳과 이르트노이를 만났던 곳을 지나, 홉스골 갈 때 잠을 잤던 볼강주 에르데네트의 테소로 호텔(Tesoro Hotel and Restaurant)에 도착했어. 가이드 겸 운전사인 막내가 이번에도 잠시 지인을 만나고 온대.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맥주 한 잔 마시며 기다리기로 해.
레스토랑에 차림새가 연예인으로 보이는 단체 손님과 여행객으로 보이는 외국인도 많이 있어. 영어 가능한 직원 한 명이 테이블마다 주문받고 응대하느라 바빠. 다른 직원도 여럿 있는데 그들은 관광객 응대를 안 하네.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나?
레스토랑에서 주문하느라 기다리고 맥주 나오는 걸 기다리고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너무 기다리려니 조금 답답해. 감자튀김은 주문하지 말 걸 그랬어. 지인을 만나러 갔던 막내가 돌아와도 감자튀김이 나오지 않아. 주문을 취소하겠다고 했더니 기다리래. 밭에 가서 감자 캐다가 손질한 후 튀기더라도 다섯 번은 나와야 할 정도로 시간이 흘러. 끝내 감자튀김을 포장해서 들고 나와.
늦게 나온 감자튀김이 한낮 뜨거운 햇살로 더운 차 안에서 기름 냄새를 풍긴다.
막내가 볼강주의 제법 큰 마을을 지나다 식사할지 묻는데 맥주와 안주를 먹어서 좀 더 가서 먹기로 했어.
막내가 갑자기 자동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 감자튀김은 눅눅해지고 우리는 차 안에서 졸다가 두리번거려.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 났다며 우리의 가방을 내려야 한다고 해.
친구야 우리는 라면 먹겠다고 코펠에 물을 끓이기 시작해.
막내는 차 밑으로도 들어가고 손이 시꺼멓게 돼. 가방을 내리고 돗자리를 깔고 먹을 것을 챙기면서 펑크 난 타이어 고치고 라면 먹으려던 우리도 얼굴에 시름이 올라와. 끓는 물에 라면 넣지 않고 깔았던 돗자리도 정리해. 70대로 보이는 여자분이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 차로 다가와서 막내와 이야기 나눠.
우리가 멈춘 곳 근처에 사는 분이 차를 끌고 오면 타이어를 들고 차량 정비하는 곳에 다녀온다고 막내가 설명해 줘. 한 시간은 차로 가야 한대.
한낮의 햇살이 뜨겁다.
친구야 그늘 없는 사막에서 낙타의 그림자 속에서 쉬듯이 우리는 자동차 그늘에 기대. 몽골 여행하며 자동차 타이어 펑크로 길에 서 있는 차를 몇 번 봤는데 이런 일 겪게 됐네. 쳉헤르 온천에서 어기 호수 가는 길에 비 내려서 미끄러지며 자동차 바퀴가 갈라진 땅에 꼈을 때, 다른 차량의 도움을 받아 잘 해결한 적도 있으니 이번에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길거리에서 멈춘 김에 낭만적으로 라면 끓여 먹으려고 했으니 말이야. 울란바토르에 사는 지인은 몽골에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오프로드에서 12시간 동안 도와줄 차량을 기다렸대.
울란바토르 지인의 집에 가고 싶어.
친구야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기다리기가 만만치 않아. 타이어를 수리할 수 있을지 걱정돼. 마음 처지지 않으려 함께 몽골 여행하다가 우리보다 먼저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에게 자동차 타이어 펑크 났다고 메시지 보내.
하늘 아래 타이어 하나 고장 난 차량 근처에서 나이 들어가는 여인 셋이 쇼를 해.
도로변에 서서 팔을 뻗고 엄지손가락을 들고 히치하이킹 해, 도로에 앉거나 누워서도 사진 찍어, 춤도 추고 체조도 해. 지나가는 차량이 없을 때. 멀리서 차가 보이면 차량 그늘 속으로 들어가 얌전히 서 있어.
더디게 흐르던 오후 햇살을 뚫고 타이어를 고치러 갔던 막내가 돌아와. 타이어를 고치려는 사람이 많아 기다려야 했던 이야기를 들려줘. 막내는 숨 가쁜 시간을 보내고 나는 홉스골 호수와의 이별을 애도하느라 시간이 필요했나 싶어. 3시간 넘게 도로에서 기다리다 보니 한국에 있는 내 집에 가서 쉬고 싶어. 김밥도 먹고 싶고.
오후 5시가 넘어서 점심 겸 저녁을 먹으러 낡은 식당에 들어가. 밥도 못 먹고 바쁘게 뛰어다닌 막내에게 고마워. 식당이 낡은 거는 아무 문제도 안 돼. 오늘 잠을 잘 숙소에 도착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뻐.
홉스골 호수에서 만난 이란 친구가 알려준 통나무집 숙소 근처에는 몽골에서 유명한 약수가 있어. 첫 번째 약수는 배 아픈 경우, 두 번째 약수는 간이 안 좋은 경우, 세 번째 약수는 당뇨병, 네 번째에 있는 약수는 눈과 머리에 좋대.
몽골 국내 여행자가 많은 숙소야. 통나무집이 깨끗하고 난로도 없어. 경찰인데 휴직 중이라는 주인 말에 의하면 난로가 필요 없다고 해.
자동차 타이어가 완전히 찢어지지 않아서, 수리하는 곳까지 도와준 손길이 있어서, 타이어를 수리할 수 있어서, 안전하게 숙소에 도착해서, 깨끗한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어서 감사해.
친구야 나 몽골을 떠날 준비가 된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