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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몽골, 쉼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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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Apr 09. 2024

제대로 쉬고 간다

몽골 여행을 마치며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기를 의도하는 내 삶의 방향에 길이 나고 있나?     


돌아갈 곳은, 몸과 마음의 안전지대야. 

친구야 황홀한 일출로 시작한 날 아쉬워하며 울란바토르로 출발했는데 인적 드문 길에서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 난 뒤 내가 돌아갈 때라는 것을 깨달아. 

 

여행자의 특권이랄까.

집 주변은 익숙해서 편안하게 오락가락하고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갔을 때는 낯설어서 집중해. 집중한 만큼 새롭고 즐거워. 이번 몽골 여행처럼 보고 있어도 그리운 홉스골 호수를 만나기도 해. 낯섦에서 오는 행운을 만끽하는 게 여행자의 특권 같아.

     

아침 일찍 통나무집 근처를 산책하다가 약수터를 지나는 양 떼를 만나. 양들이 풀을 뜯어먹으며 약수터 주변도 훑어. 사람 몸에 좋은 약수는 양이나 염소에게도 좋은가 봐. 친구야 물은 생명 가진 어떤 존재에게도 공평하게 필요한 거지? 양들이 약수터 지나는 모습을 보다가 저 약수가 효험이 있나 하는 마음이 올라오다 멈춘다. 양도 살고 사람도 살아야 공평하지. 

 


몽골 여행이 만족스러워.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서 긴장하지 않고 매 순간과 인연 지으려던 나의 몽골 여행이 꽤 괜찮다.

     

확인하고 싶었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기를 의도하는 내 삶의 방향에 길이 나고 있는지. 

  

걸으니까 길이 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고, 미끈한 길이 있으면 울퉁불퉁한 길이 있고, 더운 날이 있으면 추운 날도 있고, 비 내리는 날이 있으면 해 뜨는 날이 있고, 먹구름 가득한 날이 있으면 눈부시게 푸른 날도 있어.

     


몽골 여행하며 비가 와서 자동차가 뒤로 밀리며 갈라진 땅에 바퀴가 끼기도 하고, 타이어가 펑크 나서 길바닥에서 기다리기도 하고, 마부에게 팁 안 주고 마음 끄달리기도 하고, 발가락 나무판에 끼는 사고로 통증에 눈물 나기도 했어. 홉스골에 가고 싶은데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시간도 있어. 막상 도착한 홉스골 호수의 아름다움은 아련하다.

     

예상하지 못한 일과 부딪쳐도 해결돼. 

예상하지 못했던 만큼 예상하지 못한 도움의 손길이 있어. 갈라진 땅에 빠진 차를 끄집어내 준 푸르공 운전자가 있고, 타이어를 수리할 수 있는 곳까지 왕복 운전해 준 사람도 있어. 그런 순간마다 내가 할 일은 상황을 이해하고 수용하기였어. 계획 세울 부분도 없고 그저 내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받아들이면 되더라.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기보다 모양 변하는 하늘의 구름을 보거나 바람결을 느끼며 그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고 있으면 될 뿐이더라. 사건이 발생해도 행복할 자유가 있더라. 

    

친구야 몽골을 떠날 때가 다가와.

똑같은 일상은 없는데 반복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여행을 통해 집중하는 순간과 마주해야 하나 봐. 몸과 마음이 박자를 맞춰서 하나 되어 집중하고 편안해. 악보에는 쉼표가 있어. 적당한 쉼표가 연주의 완성도를 높여.

    

돌아갈 곳이 있어서 여행이야.

익숙한 환경에서 잠시 놓쳤을 뿐 우리는 매일 박자 맞추기를 해. 평생 여행만 하며 산다면 어떤 풍경, 공기, 냄새, 사람을 만나도 생활로 받아들이게 될 거야. 여행도 삶의 일부지만 내내 손님으로 살기는 힘들어. 내 손때가 묻어서 익숙한 곳이 필요해. 안전지대에서 때로는 집중하고 때로는 흔들리며 내 몸과 마음이 삶이라는 이름으로 펼치는 박자의 리듬을 타야지.

     

들뜸이 아니라 충만하던 몽골 여행.

평소와 다른 양 냄새를 수용하고 탁 트인 자연경관에 마음이 열리고 크고 작은 사건을 기꺼이 만났어. 새로운 환경, 낯선 사람들과 만나는 내 몸과 마음의 감각이 어떨지 궁금했던 몽골 여행에 평화의 순간이 많아.

      

평화로 물들어 행복한 기억이 내가 돌아가는 일상을 더 빛나게 할 것 같아. 보름 동안 함께 움직이며 가까워진 사람들과의 인연이 이어지니까. 빠른 박자로 살든 느린 박자로 살든 쉼표가 있어야 해. 몽골에서 제대로 쉬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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