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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몽골, 쉼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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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Mar 12. 2024

황홀한 일출로 시작하는 날

몽골 홉스골 호수에서의 일출

친구야 해가 뜨기 전 이른 새벽이 어둡다. 찬란한 해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하는 어둠. 조용히 자기 스스로와 만나라고 어둠이 알려주는 것 같아.


이란 친구가 알려준 일출 사진 찍기 좋은 장소에 가기 위해 살금살금 준비하는데 나의 여행 동지들도 일어나. 운전하느라 지쳤는지 잘 자는 가이드 막내가 깨지 않게 불도 켜지 않고 주섬주섬 옷을 껴입어. 

     

어제 오후에 산책할 때처럼 우리는 말없이 자신의 속도대로 어둠 속에서 걸어. 머플러와 담요까지 둘둘 싸매고 한기를 수용하고 어둠을 받아들여. 호수의 파도 소리를 의지해서 걸으며 잡념도 사라진다. 빗방울이 얼굴에 부딪히고 어둠이 옅어지고 있어.  

   

비가 내려도 해가 떠. 어둠이 옅어지며 하늘에 붉은 기운이 퍼지고 있어. 이 황홀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보기도 하고, 가만히 서서 마주보기도 하고, 아예 눈을 감고 일체감에 머물기도 해. 눈물이 빗물과 섞여.  

   

친구야 홉스골 호수의 새벽은 말이 필요 없어. 주변 사람과의 말뿐만 아니라 내 속에서 올라오는 온갖 소리도 멈춰. 내 몸의 호흡에 의도적으로 집중하지 않아도 자연이 나를 조용히 머물게 해. 이 순간이 충만하다.

     

하늘이 서서히 당차게 붉은 기운을 뿜어내고 호수는 거울처럼 그 모습을 품어. 이심전심하는 오래된 친구 같아. 어둠을 붉은색으로 물들이며 몽골 하늘의 구름도 드러나고 호수 근처 나무도 자기의 색깔을 드러내. 호수는 놀이터에 놀러 나온 친구들을 맞이하듯이 모두를 수용해. 하늘이 주변을 다 품어내는 호수를 만나 황홀한 풍광을 선사해.     

홉스골에서 일출을 맞으며 몽골의 불편한 화장실과 어색한 잠자리, 장거리 이동, 제대로 짜이지 않은 여행 일정 등 모든 것을 잘 수용했다고 하늘이 나에게 보상해 주는 느낌이야. 이 멋진 풍광 속에 내가 머물고 있다니 눈물 나게 감사해.     

 

일출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알려준 이란 친구도 어느새 우리 주변에 머물고 있어. 그녀는 오늘 홉스골 호수의 북쪽으로 이동한대. 홉스골 호수의 남서쪽 끝부분에 머물다 울란바토르를 향해 떠나는 우리와 달리 순록을 만날 수 있는 홉스골 북쪽으로 이동하는 그녀가 부럽다.   

  

해가 떠서 날이 환해. 딱 하루만이라도 홉스골에 더 머물며 자연 속에 오롯이 섞여 있고 싶은데 떠날 준비를 해야 해.     

 

짐 싸고 아침을 챙겨 먹고 홉스골 북쪽으로 떠나는 이란 친구를 배웅하고 보트를 기다려. 홉스골 호수에 있는 소망의 섬에 가기로 했어. 60 즈음의 남자 한 명, 20대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보트를 끌고 왔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구명조끼를 입으라는데 안전이 우선이라 싫은 내색 안 하고 입어. 보트가 출발하자 찜찜한 느낌은 사라지고 맑은 하늘과 짙푸른 호수와 멀리 보이는 숲이 어쩜 이리도 아름다운지 탄성이 나. 인공적인 부분 없이 자연으로만 드러내는 모습을 경외할 수밖에.   

  

소망의 섬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우리밖에 없어. 당연히 가게도 없고 전선도 없어. 쓰러진 나무나 이름 모를 꽃들에 시선이 가. 바위 많은 산을 올라서 사진도 찍고 딱 한 번 근처를 지나가던 보트에 손도 흔들어.   

  

채워서 멋지기도 하지만 비워서 아름답기도 해. 홉스골은 주변에 인공적인 부분이 별로 없어.  하늘과 호수와 숲이 날것으로 조화를 이루어 경외감이 드는 곳이야. 몽골에서 겨울 관광 활성화를 위해 얼음 축제를 홉스골에서 한다고 하니까 추후에 변할 가능성이 있어. 하늘과 숲과 호수가 만들어내는 자연의 조화를 해치지 않으면서 사람의 편리성을 고려하면 좋겠다.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 좋은 친구 같은 느낌이 드는 곳으로 홉스골이 남아주기를.    

 

소망의 섬에서 어젯밤 잠을 잔 숙소 근처의 선착장으로 돌아가며 보트 앞쪽에 서 있어. 몽골 전통 가옥 게르가 숲과 호수 사이에 적절하게 섞여 있어. 구름까지 걸쳐지면서 포근해 보여. 게르가 보이는데 호수는 끝날 기미가 없어. 최대 길이가 136km, 최대 너비는 36.5km라는 사실이 떠올라. 황홀하게 넓고 아름다운 호수야.  

   

친구야 황홀한 일출로 시작한 날 울란바토르로 출발해. 돌아가는 길이 무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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